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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평범한 갤러리인 줄 알고 걸음을 멈췄다. 하와이 미술계의 동향을 파악할 만한 감식안이나 취향은 없지만, 그냥 한번 기웃거려 보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오며 가며 보았던 하와이의 그림은 자연이나 원주민을 주제로 한 강렬한 색채의 작품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실내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작업실과 전시장을 겸하는 공간인가 했더니 캔버스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공동 작업인가? 그런데 정작 붓을 들고 있는 사람은 처음으로 아기 기저귀를 가는 부모처럼 어색해하고 당혹스러워하는 티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캔버스를 손으로 가리키며 뭔가를 얘기하고 있는 사람이 붓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작업실이자 전시장이며 동시에 미술 학원이었던 것이다.

  이 복합 공간이 더욱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한 여자가 입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도로 한복판에서 공연하는 거리의 음악가들과는 조금 달랐다. 매장 밖이 아니라 매장 안에서 노래하고 있는 그녀는 엄연히 갤러리에 소속된 사람이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행인 중 그녀의 노래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마이크 앞에 선 그녀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밝았다. 그건 이미 보수를 받았기 때문에 할당된 시간만 채우면 되는 피고용자의 얼굴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때, 갤러리가 단순하게 그녀를 고용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어쩌면 무명 가수에게 음악을 할 수 있는 공연장을 마련해 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 연주와 보컬 역시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작품인 셈이다. 이곳은 미술과 라이브 음악이라는, 교집합이 거의 없을 것 같은 두 분야의 조화를 시도하는 실험 무대였다.

  갑자기 (절대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는) 붓과 (항상 도화지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물감을 갖고 씨름을 했던 학창 시절의 미술 학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학원이 아니었다. 살면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생경해진 창작 활동을 해 볼 수 있는 장소, 뭔가를 표현하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장소였다. 여기선 그 누구도 목탄이나 붓을 든 사람에게 뛰어난 기술과 남다른 개성을 요구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청중이 없어도 무명 가수의 표정이 밝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 캔버스에 생채기를 내고 있을 나이 든 수강생의 표정도 그녀와 비슷했을 것이다.

 

  세상엔 누군가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 읽히지 않는 글, 보이지 않는 그림이 존재한다. 마음이 공허할 때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건 그런 습작들이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 기댈 수 있는 푹신한 여백을 제공해주는 것 역시 그런 습작들이다. 경쟁과 소비 같은 현대 사회의 우선순위들이 아직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지 못한 이유는 어딘가에 자신만의 습작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canon A-1 + 24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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