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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ro 선착장에서 LN선을 타고 부라노 섬으로 향했다. 부표와 아스라이 보이는 섬 마을의 기척을 느끼며 배 안에서 한숨을 돌렸다. 모터보트의 항해는 30분 남짓 이어졌다. 그 동안 앉아서 쉴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몸이 지쳐 감각과 마음을 좀먹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색채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 한 시간이라도 머물고 싶을 만한 곳, 알고 있는 색 이름이 몇 가지 안 되는 나 같은 사람이라도 똑같이 황홀해 질 수 있는 곳으로 가는 중이니까.

부라노로 가는 길.

  몇 년 전, 처음으로 부라노 섬을 찍은 사진을 보고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구나'며 감탄을 한 적이 있다. 그곳의 풍경은 너무나 매혹적인 나머지 오히려 현실감이 없을 정도였다. 멀고 먼 저편 어딘가에만 존재하는 곳처럼 느껴졌다(실제로 그랬지만). 평생 가볼 일 없는 딴 세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불과 몇 십 분 만에 환상은 현실이 되었다. 내가 동화 속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동화가 책 밖으로 튀어나오거나, 둘 중 뭔가가 벌어지긴 벌어진 모양이었다.


부라노의 건물들.

  무라노의 건물들은 네모난 상자 위에 색을 곱게 먹인 명주를 덮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섬 곳곳에 걸린 빨랫감처럼 파란 하늘 아래 나부낄 것만 같았다. 이곳의 건물들은 회색 콘크리트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 잊고 살았던 감수성을 이야기 했다. 크고 화려한 것을 좇는 마음에 고개를 젓고, 채도가 높지만 장난끼 어린 색깔로 소박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그들이 벽에 칠하는 페인트의 가격이 얼마이고, 그들이 손수 짠 레이스가 얼마나 비싸게 팔리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작은 땅덩어리 위에서 살아가는 방식엔, 그들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밤에 몸을 누이는 연두색, 파란색, 분홍색 주거공간엔 역사와 유머감각은 있을지언정 허영은 없었다. 겉멋들이기에 바쁜 우리의 도시가 한 번쯤 배웠음직한 미덕이었다.


다양한 색채 속에서도 소박해 보이는 풍경.

  물론 마냥 좋았다고만 할 순 없었다. 그건 좋은 기억은 남기고 나쁜 기억은 지우는 시간의 법칙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일일 터이다. 우리가 갔을 때, 섬 전체엔 공사가 한창이었다. 수로를 정비하는 모양이었다. 곳곳에 임시로 쳐진 철조망은 순수하게 풍경을 감상하고 싶은 우리의 눈이나 카메라 렌즈의 욕구에 자꾸만 훼방을 놓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사진은 각도를 조정하면 마치 이 섬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뗄 수 있다는 것과, 눈은 감동의 힘을 받아 파헤쳐진 흙더미나 철 기둥조차 아름답게 보이도록 현실을 보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부라노를 가로지르는 물줄기는 상처에서 회복 중이라 해도 색동 건물 사이사이의 골목은 서정적인 분위기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빨래가 익어가는 길목에는 마른 천이 풍기는 기분 좋은 향기가 감돌았다. 문득 남의 집 안방마님이나 귀여운 아이들의 새 이불에 파묻혀 촉감을 느끼고 싶다는 무례한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사람은 지켜야 할 덕목이 있는 법이므로, 그 대신 평범한 가정집 골목의 오후를 한껏 들이마셨다. 옅은 세재 냄새엔 노스탤지어가 묻어 있었다. 초여름, 침대 위나 옷장 안에 새로 놓인 침구를 발견하고 그 위에 쓰러져 낮잠을 자는 상상이 펼쳐졌다. 집에 돌아온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아이들에게 참 좋을 섬.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어딜 가나 청록, 노랑, 연보라가 우리를 따라다녔다. 햇볕을 쬐고 있는 고양이들도 만났다. (그러고 보니 여행 중 고양이는 처음 본 것 같았다.) 예쁜 색깔로 울 것처럼, 웅크리고 있었지만 한없이 태평해 보였다. 어느 골목엔 손에 잡힐 듯한 햇살이 내리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을 때 탄력 있게 부푼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질감이었다. 아름다운 건물을 제외하고 우리의 마음을 끄는 건 실상 사소한 장면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도 동네 어귀나 도시 어디선가 만날 수 있을, 참으로 사소한 장면. 그래서 더 고마웠다. 며칠 후의 귀향이 아쉽기만 한 건 아닐 테니 말이다.



부라노의 골목.

  서운했지만 부라노를 떠날 시간이었다. 햇살이 남아 있는 베네치아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착장으로 돌아가자 타임테이블은 배가 오기 전까지 여유가 좀 있다고 일러주었다. 섬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또 오세요.


  네치아로 가는 길. 엽서를 쓰고 여행 노트를 정리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텅 빈 앞자리에 다리를 올리고 잠시 눈을 붙였다. 바다 위에서 누리는 막간의 휴식이었다. 본섬 행 LN선은 40여분을 달려 Fondamente Nove 선착장에 닿았다. 첫날 가보지 않았던 루트로 산 마르코 광장에 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바포레토에서 내려 길 안쪽으로 접어들자 해질녘의 베네치아와는 사뭇 다른, 오후의 라 세레니시마(La serenissima - 베네치아의 별칭)를 만날 수 있었다. 쓸쓸한 느낌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한결 가벼운 무언가가 있었다. 누군가에 의해 물속에 던져졌을 때와 직접 발을 담갔을 때의 차이와 비슷했다. 우리는 가끔씩 외로워지려고 노력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카페나 도서관, 극장을 홀로 찾아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럴 땐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은 자신을 마주하고, 숨겨 두었던 생각이나 감정, 욕구를 솔직히 느끼게 된다. 비로소 내가 나를 이해하게 된다. 가끔은 사회 속에서 상처 받은 영혼이 치유 받기도 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원리가 오후의 라 세레니시마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잘 익은 벽돌집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아침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들이 비좁은 골목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와 그의 동행자 말고는 아무도 그들을 모르는 파티에 우리도 동참했다. 따스한 햇살이 적당히, 그러나 베네치아의 여행자들이라는 성긴 소속감은 가질 수 있을 만큼 모두를 분리해 놓았다.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자주 눈에 띄는 비둘기들도 그 빛에 파묻혀 있었다. 모든 게 느린 속도로 돌아가는 활동사진처럼 보였다.

물감, 물감.

  오후 4시의 햇볕은 광장도 방문하고 있었다. 노을이 되어 어둠에 자리를 내주기 전에 한낮의 영광을 뽐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회랑에 그늘이 진 것과는 달리 서쪽을 향해 선 산 마르코 대성당은 완전한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동서양의 건축 양식을 합친 역작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온전하게 표현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화려한 장식과 기둥과 돔의 총합은 어떤 면에선 어지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건축에 대한 지식의 부재가 크게 느껴졌다.
  그러나 산 마르코 광장마저 여지없이 침범한 보수 공사는 또 다른 아쉬움을 남겼다. 대성당 정면의 일부는 비계로 덮여 있었고 광장의 종루도 출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쯤 되면 왜 가는 곳마다 공사 중이냐는 원망을 한다 해도 용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산 마르코 광장과 대성당.

  4유로에 입장권을 사서 산 마르코 대성당을 방문했다. 커다란 돔 천장이 어슷하게 보이는 상층에 오르자 베네치아의 선조들이 열심히 긁어모은 장식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트리포리움을 통해 발코니로 나가 보았다. 종루를 대신하여 광장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내부의 유물보다 광장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드는 듯 많은 사람들이 회랑에 나와 있었다. 광장 한 편에 자리 잡은 공사용 천막이 거슬린다 하더라도, 역사의 유물이 훼손되는 걸 막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감내할 수 있었다. 그래, 공사 중이면 어떠랴. 저 햇살과 건물의 윤곽, 사람들은 그대로 있는데.

대성당에서 바라 본 광장.

  다시 광장으로 내려왔다. 사람보다 더 많은 비둘기 떼는 먹이만 주면 온몸에 달라붙는 묘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비둘기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좋지 않은 나라에서 왔기에 선뜻 도전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여행을 이유로 마음을 열기엔, 한 때 평화의 상징이었던 그들의 명성이 너무 밑바닥까지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편견이 없는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동물을 직접 만지고 사랑을 받는(?) 교감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었다. 한 번 날개 짓을 할 때마다 수 억 마리의 세균이 떨어진다는 출처가 불분명한(하지만 그래도 신뢰가 가는) 정보가 조금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찍는 사람이야 즐겁겠지만.

  또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무려 1.5유로에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고 리알토 다리로 걸어갔다. 내친 김에 산타 루치아 역까지 걸어갈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바포레토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운하 위에서 베네치아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가방을 조심하라는 아트 사인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머리 너머, 석양을 배경으로 노를 젓는 곤돌라 한 척을 보았다. 아름다운 유화를 앞에 두고 오랫동안 서 있는 기분이었다. 베네치아를 단 한 순간으로 표현해야 한다면 나는 아마 그 장면을 고를 것이다. 승객이 너무 많아 카메라에 담을 순 없었다. 하지만 됐다.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 있으니 그걸로 됐다.


  제 들뜬 기분을 가라앉힐 때였다. 짐을 가지러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어제 눈여겨 두었던 셀프 레스토랑을 찾았다. Brek Ristorante란 이름의 이곳은 카페와 식당이 붙어 있는 곳이었는데 셀프인 덕분에 다른 곳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나는 파스타, 친척 동생은 라자냐를 주문하려니까 점원이 칠판에 써 있는 5.8유로짜리 메뉴를 가리켰다. 대충 파스타와 라자냐, 그리고 접시 하나를 뜻하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이었는데 정확히 어떻게 준다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점원이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는 점도 불통의 원인이었다. 처음엔 파스타와 라자냐를 하나씩 고르면 세트 메뉴처럼 저렴해진다는 건 줄 알았으나 손짓 발짓(?)을 해보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나중엔 매니저까지 와서 이탈라이어로 설명을 해줬는데 알아들을 턱이 있나. 결국 점원이 직접 보여주고 나서야 그것이 한 접시에 파스타와 라자냐를 반씩 담아주는 메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단순한 걸 쉽게 이해하지 못한 게 미안해지며 드디어 주문을 넣었다. 우리나 그들이나 진땀을 닦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내친 김에 250ml의 작은 로제 와인도 한 병 샀다. 비슷한 크기의 음료수와 별 차이가 없는 가격이었다. 뽀모도로 스파게티는 소스와 면이 엉켜 조금 퍽퍽했고, 라자냐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한 잔씩 나눠 마신 와인도 마음에 들었다. 포크를 돌리고 스푼을 뜨며 푸른 벽면이 인상적인 인테리어를 둘러보았다. 한산한 식당에서 나름 분위기를 냈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모호해졌다.

괜찮았습니다.

  입가심 삼아 카페에서 카페 라떼도 한 잔 마시고 이번엔 유리 공예품을 사러 갔다. 너무 비싼 건 감히 엄두도 못 내다가 목걸이와 귀고리 한 세트가 눈에 띄었다. 연보라색과 하늘색을 섞어놓은 오묘한 빛깔이 마음에 들었다. 가격은 10유로. 계산을 위해 20유로짜리 지폐를 건네자 점원이 한참이나 그걸 들여다보았다. 위조지폐인지 아닌지 감식하는 모양이었다. 그 때까지 한국의 은행에서 환전해 간 현금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별 신경 안 쓰는 척 미소만 띄우고 있었다. 하지만 속은 달랐다. 내가 그렇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얼굴인가 하는 한탄, 유로화는 역시 장난감 지폐 같다는 불만, 나의 주거래 은행에 위조 유로화가 유입된 사실이 밝혀져 지금쯤 난리가 났을지 모른다는 망상 등 갖가지 생각이 줄달음질 치고 있었다. 결국 이번에도 매니저가 등장하여 사태를 해결해 주었다. 다행히 지폐엔 별 문제가 없었다. 나와 점원도 방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잔돈과 감사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조그만 사건들을 엮다가 마지못해 시계를 보았다. 그랬다. 떠날 시간이었다.

노을과 함께 인사를

  네치아에 다시 밤이 내리고 있었다. 어제 우리가 갔던 길을 따라 사람들은 어두운 골목 속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중이었다. 버스를 타고 메스트레역으로 돌아가 호텔에서 짐을 찾았다. 어제는 그렇게 생경했던 버스도 네 번째 차례가 되자 동네 마을버스처럼 편해졌다. 그런데 짐을 찾아 돌아온 섬에는 그세 짙은 밤안개가 깔려 있었다. 안개가 어찌나 자욱하던지 다리 건너편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좁은 미로 속을 헤매고 있을 사람들을 그려 보았다. 그들은 진정 섬과 섬 사이를 떠도는 조각배였다. 새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모험심과 두려움을 반반씩 품에 안고 바다를 건너는 항해사였다. 중간 중간 서있는 가로등은 그들에게 등대가 되리라. 내가 저 안에 있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오고 싶었던 베네치아를 이제 떠나야 한다는 슬픔이 에둘러 치밀어 오르는 건지도 몰랐다. 캐리어를 질질 끌며 돌바닥을 걷자 바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행인은 많았지만 마치 나 혼자만 있는 것처럼 여겨질 만큼 아주 크고 요란한 소리였다.

안개.


PS.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오후 9시 5분 야간열차를 타야 했다. 짧은 일정이라 이동 수단에 대해선 별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심 걱정이 됐다. 미리 유레일 셀렉트 패스를 개시해 두고 쿠셋 예약도 한국에서 끝마쳐 놨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막연한 불안이랄까. 열차는 40분 정도 일찍 플랫폼에 나와 있었다. 객실을 찾아가니 미국인 여성 두 사람이 있었다. 짧은 인사. 우리는 6개의 침대칸 중 맨 위 두 칸을 배정 받았다. 짐을 놔두기엔 좋지만 천장이 낮아 관처럼 좁은 곳이었다.

  곧 열차의 길고 매끈한 몸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무원이 객실을 돌아다니며 여권을 수거했고, 아침에 커피와 차 중 무엇을 마시겠냐고 물어보았다. 커피, 티, 커피, 티. 네 명은 두 사람씩 취향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것이 서로에 대해 아는 전부이기도 했다. 열차에 속력이 붙었을 즈음 덜컹거리는 통로를 지나 졸졸 새는 세면대에서 가볍게 세수를 마쳤다. 돌아와 자리에 눕자 어느 객실에서 합창 소리가 들려왔다. 이후로 남겨진 생각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그 노랫소리에 맞춰 금방 잠이 든 듯하다. 하지만 새벽의 허리춤에 종종 눈이 떠질 때가 있었다. 한국에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물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에 빠졌다. 11시간 반. 한국에서 유럽으로 올 때와 비슷한 시간이었지만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짐을 다 꺼내놓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니 모든 게 내 세상 같았다. 춥고 건조하고 덜컹거리는, 아주 좁은 내 세상. 그렇게 베네치아를 떠나 빈으로 향했다.


핑크색 캡션 사진은 F50fd으로
푸른색 캡션 사진은 Canon A-1 + superia 200으로 촬영했습니다.
F50fd 사진은 필름과 느낌을 맞추기 위해 크롭 및 보정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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