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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이 카테고리의 2010년 유럽 여행기에 있던 글이지만, 네이버포스트에 올리며 글을 좀 수정하고 사진과 편집을 새로 만져보았다. 또 가고 싶다,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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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체는 작았다. 아담한 기내 분위기와 종종 작은 동체가 요동칠 때 느낄 수 있는 스릴은 마음에 들었으나 이런저런 불편한 점도 많았다. 우리는 기체의 맨 뒷자리(35E, 35F)였는데 하나뿐인 화장실을 가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28번 좌석까지 줄을 서고 있었다. 만약 이륙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저 앞까지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이상한 곤경에 처했을 것이다.

  콜라를 먹으려면 1유로인가 2유로를 더 내야 하는 야박한 인심은 사소한 불편에 속했다. 무엇보다 최악이었던 것은 기내식이었다. 비행기가 제 고도에 오르자마자 배가 고파진 나는, 단거리 항공기에서 기대도 하지 않은 푸드 카트가 등장했을 때 거의 감격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뚜껑을 열자 나타난 짙은 녹색의 음식은 이탈리아행 비행기의 기내식답게 숨겨진 레시피로 조리된 파스타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음식은 뭐랄까, 처음으로 입에 넣은 순간이나 당시를 회상하는 지금이나 형용하기 쉽지 않은 맛이었다. 단언컨대 파스타는 아니었다. 감자 비슷한 게 재료로 들어간 것 같긴 했지만, 아무래도 익힌 감자가 아니라 생감자인 게 확실했다. 나는 최종적으로, 큰 범주 내에서 이상하다, 세부적으로 묘사하여 비리다, 비유까지 곁들인다면 한여름 생선처럼 상한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소금, 후추, 어떤 걸 넣어도 맛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걸 다 먹으면 난생처음 비행기 멀미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엄습했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혔던 것은 꽤 먹을 만하다는 친척 동생의 반응이었다. 혹시 내 것만 쉰 것은 아닌가 했지만, 맛은 똑같았다. 난 아낌없이 내 몫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뒤처리를 하는 카트에 승객들이 깨끗하게 비운 그릇만 쌓여 있는 걸 보았을 때, 이제껏 한 번도 까다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내 입맛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은 공평하다. 혀가 울적해하는 사이, 눈은 예상치 못했던 행운을 접하고 있었다. 눈 덮인 산맥이 우리 발밑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대륙의 척추는 구름을 껴안고 흰색 구렁이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유럽에서 저런 광경이 펼쳐질 수 있는 곳은 바로 그곳이 아닐까? 지리에 약한 우리는 지도를 펼쳐 면밀히 검토한 끝에 지금 알프스 산맥 위를 날아가는 중이라고 결론 내렸다. 짧은 일정 때문에 준비 단계에서 포기해야 했던 그곳을 비행기에서나마 볼 수 있다니, 이 정도면 알프스까지 다녀왔다고 해도 충분할 정도였다. 굉장히 성급한 결론임을 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만큼 프랑스와 이탈리아 접경에 자리 잡은 산줄기는 숭고한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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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세기 유럽에 아시아를 소개하여 충격을 주었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훗날 많은 구라파 강대국들로 하여금 세계 이곳저곳을 침략할 꿈을 키우게 한 장본인 중 한 명이며, 한편으론 많은 여행자의 대선배나 다름없는 마르코 폴로. 어쩐지 실크로드 같은 육로(陸路)보단 해로(海路)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름이다. 우리가 처음으로 디딘 이탈리아 땅도 바로 그의 이름을 딴 공항의 도착 터미널이었다. '동방견문록'의 진위는 물론이거니와 마르코 폴로란 인물 자체가 그 존재를 의심받고 있는 현실이지만, 어쨌든 베네치아 공항의 타이틀로는 아주 그럴싸했다. 예전엔 유럽인이 마르코 폴로를 통해 아시아의 존재를 알게 됐었는데, 오늘날엔 아시아인이 동명의 장소를 통해 유럽의 존재를 체험하는 셈이다.

  탈리아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딱딱했다. 막 떠나온 파리가 말랑말랑한 존재의 천국이었다면 이탈리아에선 모두가 등을 빳빳하게 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전체적으로 누렇게 보이는 공항 터미널 때문일까? 아니면 이탈리아어의 발음 때문일까? 충분히 낯선 곳에서 왔음에도 낯섦의 두 배, 낯섦의 무한한 확장과 맞닥트렸다. 그나마 수하물 수취대의 위트가 있었기에 우리는 마음을 풀 수 있었다. 한 카지노에서(마르코 폴로 공항 맞은 편에 있다고 한다.) 빙빙 돌아가는 수하물 벨트를 룰렛으로 바꿔 놓았던 것이다. 블랙? 레드? 짝수? 홀수? 아니면 0? 우리의 짐은 어느 홈에 빠져나올까?





  공항버스를 타고 베네치아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여정은 20분 남짓. 건축 양식이 다르다는 점만 빼곤 한국의 도시 근교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거리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하늘은 높쌘구름에 뒤덮여 있었다. 태양은 구름 사이로 팔을 뻗느라 분주했다. 넓은 밭과 작은 마을, 그리고 갑자기 머리 위를 헤집고 지나가는 커다란 고가도로가 소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했다. 하지만 바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 길 너머에 물의 도시가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베네치아를 떠올리면, 사오백 년 전에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가 그려진다. 어느 화가가 백 년마다 한 번씩 그곳을 스케치한다 해도 그 수여 장의 그림은 전부 똑같은 모습일 것만 같다. 그러나 창밖으로 미끄러지는 풍경은 현대적이면서 동시에 소박한 일상의 전형이었다. 공항에서 느꼈던 낯선 분위기가 완벽히 전복되었다. 나는 곧 일주일만 이 소도시의 근교에 머물러도 집에서와 똑같은 안정감과 무기력함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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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숙소는 베네치아에 들어가기 직전인 메스트레 역 부근에 있었으나 열심히 타고 온 버스가 알고 보니 잘못 고른 노선이었던 바람에 섬 안까지 들어가고 말았다. 황망히 섬을 나와 메스트레 역으로 향했고, 짐을 푼 후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베네치아의 로마 광장으로 돌아왔다. 해가 난 곧 저물 테니 알아서들 횃불을 켜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우리는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맹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로마 광장에서 다리를 건너 산타 루치아 역 앞으로 넘어가자 조바심이 눈 녹듯 사라졌다. 운하는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그 위에 몸을 띄운 작은 화물선이나 곤돌라 역시 느릿한 속도로 바다 속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사람들도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골목을 따라 섬 깊숙이 들어갈 때만 넓은 곳에서 좁은 곳으로 유입되는 물처럼 속도가 빨라질 뿐이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물과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우리도 그 힘을 거스를 순 없었다. 이미 한 폭의 그림 속으로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에선 모든 존재가 물 위에 떠 있다. 사람도 건물도 배는 물론이거니와 게으른 고양이까지 전부. 저 크고 낡은 건물들이 무엇에 의지하여 서 있는지, 118개의 작은 섬과 400여 개의 다리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의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물의 도시는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이며 오랫동안 견고함을 유지해 왔다는 역사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수면 위로 솟은 빛바랜 파스텔 풍 건물들은 바다 깊은 곳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보는 이가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도 그 안정감 덕분이다. 우리는 짙은 해초색의 바다를 따라 출렁일 필요가 없다. 딱딱한 지면을 밟고 서서 참으로 고요하게 흐르는 시간을 지켜보면 그만이다. 건물의 그림자가 가리지 않은 수면 위에 연한 자줏빛과 분홍빛이 감도는 하늘이 비쳤다. 멜론 조각 같은 곤돌라가 바다와 하늘을 동시에 건너는 중이었다. 수없이 많은 창문, 수없이 많은 정박선, 수없이 많은 투박한 선착장도 베네치아란 캔버스 안에선 혼란스럽지 않았다.




 

  우리도 사람들을 쫓아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 다섯 시가 가까워지는 시간, 햇살은 미로 안까지 닿지 않았다. 굳게 닫힌 창문 때문에 도시는 텅 빈 것 같았고, 몇몇 방랑자들만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배들은 오래전에 버려진 양 수로 난간에 매여 있었다. 섬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손님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주인은 부재중이었다. 맞이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외롭게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이 내렸다. 회색 벽은 명도를 잃고 몸을 숨겼다. 도로와 건물의 구분이 모호해지자 마치 밤바다를 걷는 것 같았다. 그럴 때,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간간이 문을 연 베네치아의 상점들이었다. 아담한 내부에서 새어나오는 오렌지빛 조명은 어둠 위에 둥둥 뜬 섬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조각배였다. 섬과 섬 사이를 오가다 이내 정적만 남기며 발걸음을 돌렸다. 상점은 눈을 끔뻑거렸고 저 멀리 어느 골목에선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베네치아가 이렇게 쓸쓸한 도시였던가. 내가 이곳에 꼭 오고 싶었던 건 사소한 동기에서다. 몇 개월 전 이병률의 『끌림』을 읽었기 때문이다(이번 여행에 들고 오기도 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베네치아를 향한 작가의 애정이 드러난 페이지였다. 다시 태어난다면 베네치아가 좋겠다는 그가 ", 유리, 레이스, 가면, 곤돌라, 광장. 베니스를 수식하는 이런 말들이 아무리 베니스 여행을 결심한 당신 가슴에 미리 떠다닌다 해도 정작 베니스의 아름다움은 베니스에 도착하는 그 순간에만 만날 수 있다."고 단언할 때, 나의 마음은 이미 이 섬을 향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의 말에 순순히 따른 내가 만난 건 아름다움 뒤에 숨은 적막함이었다.

  그렇다고 시인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 감사할 정도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외로움을 피해 외로움 속으로 뛰어든(전자와 후자는 다르다.) 그가 왜 이곳을 사랑했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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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알토 다리까지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노란색 표지판이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기 때문이다. 가끔 누군가가 손으로 그려 놓은 화살표가 보이기도 했다. 따라갔다간 전혀 엉뚱한 곳에 도착할 것 같은 장난기가 느껴졌다.





   일단 리알토 다리에 도착하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거의 모든 가게가 영업 중이었고 시장 주변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공중에 떠 있는 은하수 조명 장식도 활기를 더했다. 기념품이나 군것질거리를 사는 이들은 상점 앞에 옹기종기 모여 얼굴에 만연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다리 위에선 야경을 바라보는 연인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반은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반은 그들의 입술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유럽에서 꼭 한 가지만 가져오고 싶은 게 있다면 바로 어디서라도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연인들의 옆모습이다. 유럽에 발을 디뎌 처음으로 키스하는 연인과 마주치면 우리는 전혀 다른 문화에 놀라곤 한다. 하지만 민망함도 잠시뿐 어느새 그런 풍경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유럽은 역시 다르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이라기보단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호와도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순간을 공유할 땐, 좀 더 그 감정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는 카페테리아의 불빛,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포레토, 유심히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는 철썩거리는 물결의 노래. 이곳에선 밤의 여신도 곤돌라를 타고 다니며 어둠에 젖은 소매를 펼치리라. 리알토 다리에서 보는 야경은 연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만큼 우리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어떤 논리적인 인과관계도 없이, 야경에 사로잡힌 순간에, 정확히는 다리를 건너 좀더 남쪽으로 내려가는 순간에,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이후로는 식당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지금껏 가격표를 유심히 봐둔 덕분인지 산 마르코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음식값이 비싸지는 경향을 눈치챌 수 있었다. 가면, 캔디, 초콜릿, 인형 등 온갖 잡화를 두루 둘러보며 마음을 끄는 식당을 찾아 나섰다. 중간에 우리를 불러 세우는 한 여자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곧 요리 재료가 될 운명에 처한 게를 가리키며 저것이 살아있다고, 섬뜩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진지했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놀랍다는 말투로 동의해 주었다. 지금도 동네 횟집 앞에서 뻐금거리고 있을 도미나 참게를 본다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렇게 얼마 걷지 않아 갑자기 광활한 장소가 나왔다. 수많은 아치형 기둥으로 둘러싸인 공터였다. 잠시 어리둥절해 져 설마 여기가 산 마르코 광장이겠나 싶었지만, 진짜 산 마르코 광장이었다. 리알토 다리에서 10여 분 밖에 걷지 않았는데 벌써 여기까지 왔다니. 지도로 가늠해 본 거리보다 훨씬 짧았다. 이미 파리 시내를 헤매며 단련된 우리에겐 사소한 간격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예정에 없었던 곳을 얼떨결에 찾은 김에 잠시 주변을 돌아다녔다.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광장은 어두웠다. 모든 상점은 불을 끄고 있었고 항상 광장을 가득 메운다는 비둘기들도 잠자리를 찾아간 모양이었다. 결국, 다음 날 다시 찾아야겠다며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산타 루치아 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식당 하나를 찾아 허겁지겁 끼니를 때웠다. 배도 불렀고, 밤도 깊어졌다. 우리는 길을 잃은 사람처럼 역 주변을 방황했다. 역에서 산 제레미아 교회로 이어지는 넓은 길은 리알토 시장만큼이나 활발한 곳이었다. 특히 유리 공예품을 파는 상점이 많았다. 반지와 귀고리부터 목이 긴 술병과 술잔, 거기에 동물의 형상을 갖춘 커다란 화병까지 유리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이곳에 있었다. 집집이 반값 할인 중이라고 광고지를 붙여놓긴 했지만, 솜씨만큼이나 가격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쇼윈도 속에서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공예품을 보고 있으면 때때로 지갑을 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마치 영롱한 구슬 하나에 이 도시 전체를 넣어 영원히 간직할 수 있을 거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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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률의 문장대로 ", 유리, 레이스, 가면, 곤돌라, 광장"처럼 베네치아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는 수도 없이 많다.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인상으로 이곳을 기억할 것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목까지 나를 따라온 동행자는 거대한 땅과 이별하고 홀로 빛을 내는 작은 섬의 인상, 비좁은 골목에서 발끝에 채이던 외로움이었다. 축제 기간이나 여름에 베네치아를 다시 찾는다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까? 외로움은 불현듯 찾아오는 게 아니라 그 속으로 몸을 담그는 일이다. 아마 미래의 어느 날에도, 나는 베네치아란 섬에서 쓸쓸한 걸음을 옮길 터이다.





Canon A-1 + 50mm


Fujifilm F50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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