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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여행은 그 도시에 다시 갔을 때를 대비한 예행연습이라구요. 애인 몰래 바람을 피우는 기분이 바로 이런 걸까요? 가슴에 도장 쾅 찍은 도시를 발견하고는 그 안에서 다른 도시를 그리워하다니요. 욕심이 지나친 걸 수도 있어요. 못난 환상에 빠진 걸 수도 있구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샹젤리제 거리 기념품 가게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었을 것 같은 장식품 하나에도 그곳에서 보낸 시간, 그곳에서 걷던 거리가 떠오르는 걸요.

 사실 진짜 욕심은 그래요. 내 영혼의 일부를 숨도 못 쉬게 꽉 묶어버린 도시에서 펜으로 종이를 애태우고 각막에 인화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에요. 확신할 수 있어요. 전 그곳에 다시 갈 거예요. 그곳에 압도당하지 않고, 나를 지탱하고, 그곳을 내 방식대로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그곳에 다시 갈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가장 황홀한 연습인 셈이에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그게 느껴지세요? 마침내 그곳에 갔을 때, 거꾸로 이 모든 연습이 그리워질 거라는 예감 말이에요.



PS.

 삿포로에서 돌아와 한참 지난 어느 날, 파리에서 쓴 여행 노트를 뒤적이다가 세 줄로 짧게 쓴 문장에 시선이 멈췄다. 당시 아는 분의 소개로 홋카이도라는 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의 난 그곳이 퍽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동굴 같은 지하에서 자리가 부족해 한 테이블을 파리 사람 두 명과 나눠썼던 기억. 실제로 나온 요리는 일식이라기보단 중화요리에 가까웠지만 출신이야 어찌됐든 기가 막히게 맛있었던 기억. 언젠가 파리에서 살면 오페라 가르니에와 팔레 루아얄 사이의 거리에 숨어있다는 멋진 식당과 카페를 모조리 섭렵하겠다던 기억. 그리고 나는 말했다. “홋카이도 식당이 얼마나 좋았던지 다음 여행지는 홋카이도가 될 모양이다.” 나는 웃고 말았다. 빙빙 돌아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다시 온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다는 말을 실감했다.



Canon EOS-M + 22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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