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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삿포로에 오기 전에 영화 「러브레터」를 다시 보려고 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게 스무 살 때였으니 십 년도 넘게 흘렀다. 좋아하는 영화는 반드시 몇 번이고 다시 보기 때문에 그 영화가 그다지 인상 깊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난 오타루에 관해 아는 것도 그곳에 기대하는 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배경이 된 영화라도 보지 않으면 기차에 올라야 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숙제였고, 두 시간도 안 되는 시간을 투자하면 그만이었으나 난 끝까지 숙제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타루에 다녀온 몇 시간에 대해 쓰려면 작은 이미지 몇 개를 늘어놓는 문장으로 시작해야 한다. 오타루로 가는 열차에서 본 바다. 내 옆에 앉아 책을 읽던 여자. 한국어로 쓰인 책과 일본어로 쓰인 책의 나란한 움직임. 지정석이 아니면 지하철처럼 앉아야 하는 좌석 구조. 그래서 바다를 보기 위해 몸을 옆으로 틀었어야 했던 사소한 불편함. 삿포로와 느낌이 확연히 다른 작은 도시. 전혀 관광지처럼 보이지 않았던 미나미 오타루(南小樽)역에 내려 당황했던 순간 운운.















 관광안내책자에서 거듭 언급하는 거리는 온갖 오르골 음악으로 크리스마스 시즌 분위기를 내던 오타루 오르골당에서부터 만날 수 있었다. 그곳은 작고 눈부시고 값비싼 물건의 성지였다. 단순히 아름다움에 치중한 듯 보이지만, 시간을 좀 오래 죽이다 보면 감탄할 만한 전략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테이블마다 서로 다른 음악을 틀어놓아 소리가 겹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어디서든 한 곡은 반드시 듣게 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어느 구석에 처박혀도 음악은 사람을 따라왔다. 기분 좋은 스토킹이었다. 오르골 음악에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면, 그건 금속편의 울림이 마음의 울림과 비슷한 주파수를 가지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음악에 처연해질 때, 집에 돌아가서도 이 기분을 이어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고 마침내 지갑을 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과 장소를 기념하고 공을 들인 작품으로 나를 위로할 수 있다면, 아니 그러리라 믿을 수만 있다면, 매일 또 매일은 얼마나 더 견딜 만한 삶으로 거듭날까.





















 오르골 당을 나와 석조 건물이 이어지는 거리를 걷는다. 러시아와 교역하던 항구라 이국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단다. 온갖 기념품이나 디저트 가게가 즐비했다. 유리 공예품 전문점에 들어갔다가 가스 냄새에 취해 나왔고, 미술관처럼 생긴 석조건물에 들어선 제과점에선 한입에 반해 버린 쿠크다스 같은 과자를 잔뜩 사들였다. 운하 쪽으로 걷다 보면 어시장 여럿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가게마다 입구에서 가리비를 구워 팔았다. 한국인 커플이 기대에 부푼 눈으로 물기가 올라오는 조개를 보고 있었다. 나도 잠깐 그 옆에 서서 비슷한 눈빛을 보내다가 그들의 가리비가 다 구워지기 전에 자리를 떴다. 사실 과자를 사고 나서부터 힘이 쭉 빠진 상태였다.
 오타루 운하를 감상하기 위해 아사쿠사 다리(浅草橋)에 서도, 눈이 없으니까 감흥도 없었다. 어디가 영화의 배경이었는지, 아무래도 몇 곳이나 지나쳐 온 모양인데 기억할 도리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원래 오타루에서 늦게까지 있을 계획이었지만, 해가 빠른 속도로 지는 데 감사했다. 얼른 야경만 보고 떠나고 싶었다. 연어 알과 연어회가 올라간 덮밥을 맥주와 곁들여 먹고, 해 질 녘 사진을 찍고, 운하를 따라 산책하다가 삿포로로 돌아가기 위해 오타루 역으로 향했다.
































 사실 상점이 모여있는 사카이마치 거리(堺町通り)나 운하의 야경보다 더 마음을 끌었던 건 부두 쪽에 늘어선 거대한 냉동 창고들이었다. 외부인의 출입을 정중히 거절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석조건물들은 과거의 황금기를 노래하는 기념비나 다름없었다. 실체보다 그것이 지닌 허영의 가치가 더 큰 기념품과 무게와 크기에 따라 엄격히 분류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유통되는 얼어붙은 생선이 고작 두 블록 안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퇴색한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오타루는 퇴색함 그 자체를 관광 산업으로 박제하여 전시하는 데 성공했다.
 애초에 이번 여행에서 하코다테나 노보리베츠, 아니면 비에이를 다녀오려던 계획이 있었다. 짧은 일정 안에 그 모든 게 다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래도 한 번은 삿포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욕심이 나를 이곳으로 오게 했다. 누군가는 오타루를 춥고 어두운 도시로 기억한다 했다. 나도 크게 다른 의견은 아니었다. 더 많은 준비를 하지 못한 게으름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어딘가에 다녀왔다는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던 안일함을 탓해야 할까. 밤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깊어졌다. 어찌됐든 삿포로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난 집에 돌아가는 사람처럼 안도하며 의자 깊숙히 몸을 맡겼다.





















Canon EOS-M + 22mm / 5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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