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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찍을 게 별로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는 한다. 멋진 풍경 사진은 그만한 장비를 갖추고 그만한 실력을 갖춘 사람에게 양보하기로 한다. 나에게 남은 건 그냥 스쳐 가기 일쑤인 장면뿐이다. 스냅 사진의 가치는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의 그 장면과 그 사람을 포착할 행운은 그 순간에 있던 사람만 누릴 수 있으니까. 게다가 스냅 사진을 즐겨 찍는 사람이라면 저마다 다른 시선이 있기 마련이고, 그 시선이 한 장의 사진에 특색을 부여하여 완성한다. 이때, 사진은 만들어가는 무엇이 아니다. 주어지는 무엇이다.
여행 중에는 깊든 얕든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때로 그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새에 렌즈 앞에 나타나 웃거나 손을 흔들거나 두 손가락을 브이자 모양으로 펼친다. 사진 찍히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판 모르는 사람의 필름이나 이미지 센서에 자신을 남기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다. 사진 속의 남자도 길 건너편 술집을 찍으려던 내 앞에 나타나 큰 소리로 인사하며 피스를 날렸다. 그의 부인은 그에게 뭘 하느냐고 물었고, 그는 저 남자가 사진을 찍길래 찍혀줬다고 웃었다. 나는 답례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잘 나오든 잘 나오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누군가의 사진첩 한 장을 채울 수 있는 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의 삶을 상상했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길을 가다가 서울에 놀러 온 타지인이 내 모습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셔터를 누를 때, 허물없이 웃고 평화의 제스처를 취할 수 있을까? 사실 그렇긴 하다. 진심으로 타자와 교감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나 역시 동의 없이 타인을 찍은 적이 얼마나 많던가. 도로 누군가의 피사체가 되기를 마다치 않는 이유는 어쩌면 그런 행위에 대해 속죄하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기분 좋게 취한 이 부부를 찍고 나서 생각을 바꾸고 싶었다. 나도 계산 따위는 집어치우고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다카하시 아유무의 전설적인 여행 노트엔 인생의 목표, 즉 라이프워크lifework가 ‘인류’라고 말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내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다니는 것도 우리네 종족의 다양성을 느끼고 이해하고 파헤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동기는 주로 이성적인 호기심과 내재된 불안을 이기려는 데 있었다. 순수하게 타자와의 얽힘을 즐겨서가 아닌 것이다. 사기를 당하고 주머니를 털리고 장난삼아 엉뚱한 길로 인도받는다 하더라도 기꺼이 그들을 사랑하고 싶다. 난 아직도 글쓰기는 이성의 영역에서 이뤄진다고 믿는다. 다만 그 동기의 일부는 감성의 영역에 있었으면 한다. 누구도 나의 우울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누구나 내가 만난 인연에는 관심을 보인다. 나는 고민한다. 이 중간 지점에서 나는 무엇을 표현해야 할 것인가.
Canon EOS-M + 5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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