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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누가 배웅을 나온 건 처음이었다. 공항철도 개찰구에서 친구 Y가 전날 과음으로 인한 수척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나는 그도 우리와 함께 떠나는 줄로만 알았다. 나와 나의 동행자 D는 친구의 등장에 감격한 나머지 진심으로 같이 떠나자고, 비행기 삯은 우리가 댈 테니까 당장 출국 준비를 하라고 부추겼다. 좀 더 강하고 달콤하게 밀어 붙였다면 거의(?) 설득할 수도 있었겠지만, 신혼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부인의 존재감을 넘어설 순 없었다. (아니, 넘어설 수 있었다고 해도 Y에겐 일단 여권부터 없었다.)
꼭 오지 않아도 될 배웅길을 한 시간 반 씩이나 걸려 와준 그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공항 내 바에서 파는 모히또와 퀘사디아를 대접했다. 남국의 정취가 그대로 담긴 대나뭇살 의자에 앉아 건배를 하자 바로 이곳이 방콕의 어느 바인 것 같았고, 한편으론 셋이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헤어지기 아쉬워 마지막 잔을 기울이는 것 같기도 했다. 당시에는 긴 여행을 떠난다는 실감이 나지 않아 현실을 혼동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셋이 함께 했던 여행들을 떠올리고, 나아가 언제 다시 그렇게 떠날 수 있을까 상상하다 보면 그날이 까마득하게 먼 날로 여겨졌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이제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리 모두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자매 둘이 부모에게 달려가느라 요란한 발소리를 내고, 주차장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 들어오며, 칸막이 건너편에선 두 외국 남자가 천천히 맥주를 비우고 있었다. 그 모든 조용한 소란 속에서, 멋들어지게 늘어진 모형 야자수 잎 아래 앉아있자니 우리가 함께 떠났던 시절의 일부를 다시 경험하는 듯한 기쁨이 느껴졌다. 이런 공항에서의 회합조차 까마득한 먼 날에야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상실감 역시 약간은 느꼈다. 우리가 마시고 있는 모히또에 들어간 알코올 도수처럼 있는 듯 마는 듯한 빈약한 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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