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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럴까요. 그냥 올려다보았을 뿐인데요. 서 있는 땅이 다를 뿐 어차피 하늘은 한 배에서 자란 껍질처럼 우리를 덮고 있을 뿐인데요. 푸른 계통의 상석上席, 한두 방울의 농도가 더해졌을 따름인데 무심코 손을 뻗고 맙니다. 때로는 절묘하게 이웃색과 혼합해 버린 영롱한 붓질을 따라 걷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냥 우연히 겹쳤을 뿐인데요. 세월이 가면 언제나 그랬듯 가장 먼저 색이 바랠 열정일 뿐인데요. 참으로 정수만 골라 피운 붉은색입니다. 실은 빨강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눌러보라는 듯 봉곳이 도드라져 파랑을 더욱 파랗게 회색을 더욱 창백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풍경에 밑줄을 긋고, 일상에 굵은 테두리를 둘러 강조합니다. 턱없이 작아도 제 할 말은 다 해버립니다.
 눈이 오지 않는 삿포로의 겨울은 참으로 선명했습니다. 모든 것이 눈에 뒤덮여 구분이 되지 않는 시절이 있다면, 때로는 이렇게 작은 것 하나까지 눈에 들어오는 시절이 있습니다. 사실 난 회색 하늘과 흰 땅의 경계가 모호한 세상을 찾아 왔지만, 보고 간 풍경은 정반대의 것이었습니다. 눈에 파묻히기엔 너무 이른 셈이었던 게지요. 나의 그릇이 이 겨울의 헛헛함을 끌어안기에는 턱없이 작았던 탓이겠지요. 책을 읽다가 미분화라는 단어가 나오면 아득한 기분이 들고는 했습니다. 모든 것이 구분되지 않고 한 덩어리로 섞여 있는 상태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때 적을 두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삿포로의 겨울은 참으로 선명했습니다. 눈은 오지 않았고 나는 바람에 쓸려가는 낙엽 하나에도 마음이 아프곤 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모호함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던 것입니다. 다음에 다시 삿포로에 온다면 그때는 눈이 내릴 겁니다. 그럼에도 지금보다 썩 자라지 못했을 나는 경계가 사라진 입구 앞을 서성이다가 손바닥으로 눈을 쓸어보려 합니다. 그 아래 감춰진 파랑과 빨강을 찾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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