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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로 들어가는 길은

포틀랜드가 소도시라는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지방 도시에 입성하는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우리가 빌린 집이 있는 동네에 들렀다.

도시 북동쪽, 아담한 일이층 집들이 쭉 들어선 거리였다.

고목이 햇살을 가리고 거리는 어느 정도 지저분하며,

낡은 자동차와 낡은 담벼락과 낡은 문이며 낡은 지붕 따위가 계속되는 곳이었다.

포틀랜드에 오기 전까지 이 도시를 그리며 상상하던 모습과는 또 달랐다.

그 느낌이 얼마나 좋던지.

나중에 사진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짐도 풀지 않고 다시 내비게이션을 찍어 간 곳은

펄 디스트릭트의 티 바라는 카페였다.

이름 그대로 차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카페로

특히 타피오카가 들어간 밀크티가 인기였다.

특히 차이티가 어마어마하게 맛있었다.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로컬 유수의 커피 전문점을 넘어서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데

일단 매장 분위기부터 끝내줬다.


새하얀 벽, 아주 간소한 장식장과 테이블.

내 기질과는 좀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미니멀리즘'의 극치랄까,

뭐, 그랬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도 좋아했고,

한국에 있었다면 특히 여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것 같다.


들은 바에 의하면 티 바를 설립한 건 젊은 여성으로

홍콩인가 대만인가 어쨌든 아시아를 여행하다가 밀크티에 꽂혀

포틀랜드에서도 앞서나가는 감각을 가미해 사업화했다고.





그러고 보니 우리가 들어온 이후로 긴 줄이 생겨나긴 했다.

세 여성이 일하고 있었는데

주문을 받고, 시간을 들여 차를 우리고, 자리로 직접 가져다 주느라 바빠보였다.

에스프레소처럼 뚝딱 나오는 음료는 아니라 더 그럴 것이다.

나와 아내가 주문한 건 달큰한 차이티와 매콤한 차이 티였다.





세 시간 넘게 차를 타고,

그 시간의 반 이상을 아들이 우는 바람에

나와 아내는 많이 지쳐있었다.

하지만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이런 매장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천천히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도시로 들어오면서 본 포틀랜드의 일각,

앞으로 나흘 동안 살게 될 동네를 얼핏 본 인상,

그리고 세련된 도시의 면모를 보이는 여기 펄 디스트릭트의 새하얀 카페까지.

포틀랜드의 다채로운 면이 우리를 고무하고 있었다.


아들도 드디어 엄마 아빠에게 안기고 이런저런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언제 울었냐는 듯 활기찬 녀석으로 돌아와 있었다.





참, 생판 첨 오는 도시에서 우리가 만난 사람 이야기를 해야겠다.

여행 전에 포틀랜드에 관해 이것저것 찾아보던 아내가

이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 작가 한 분을 알게 되었다.

현지에서 고객들의 스냅 사진을 찍는 분이었는데,

사진이 워낙 마음에 들어 우리도 촬영을 요청한 것이었다.


촬영 전에 어떤 사람들인지 서로 알아갈 겸 사전 미팅을 하는데,

그 약속 장소가 바로 여기였다.


켈리 강이란 분으로 미국에서 산 진 10년 정도 되셨다 했다.

물론 한국 사람이다.


유쾌하고 친절했으며,

아들도 잘 따른 분이었다.


사실 촬영 콘셉트나 뭐 그런 이야기보단

포틀랜드에서 사는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던 것 같다.


자기를 이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굉장히 신이 나는 아들이

바 테이블 위를 질주하려다가 저지당하는 장면.


사실 이번 여행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미국 사람들이 이렇게 친절한가 싶을 정도로

아이를 이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아들은 애교도 늘었고 말도 더 잘 듣게 되었고 낯선 사람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자기가 애교를 부려도 사람들의 반응이 시원찮은 경우가 많아

자주 시무룩해 하지만.





포틀랜드에서 가 볼 만한 곳도 듣고,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포틀랜드 가이드 북도 작가님께 빌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티 바.





카페 앞에는 작은 공원도 하나 있었다.

날씨가 아주 좋아 공원에 놀러나온 사람도 많고

아이를 데리고 길을 걷는 사람도 많고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여유와 한가로움이 널려있었다.


불과 나흘.

포틀랜드에서 나흘을 보내고 그곳을 전부 음미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때의 기억 덕분에 왜 많은 사람들이 포틀랜드를 사랑하고 그곳에서 살고 싶어하는지

조금은 알게 된 느낌이다.


아무리 낭만적인 이국의 도시라 하더라도 삶은 이곳과 그곳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인데,

정말 포틀랜드에서라면 덜 각박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가 모두에게 그러길 권하기 때문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길거리 주차를 해두고 갑자기 기체조를 시작한 이분도

우리에게 그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 시간 넘게 켈리 강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도 자리를 떴다.

우선 그리 멀지 않은 다운타운 쪽으로 이동했다.

차를 세우고 보니 어느 식료품 점 앞이었다.


마트지만, 마트 같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포장된 초콜릿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World Foods, Cafe, Beer and Wine Bar.

830 NW Everett St, Portland, OR 97209, USA





사실 우리는 다운타운에 가겠다고 움직인건데

아직 펄 디스트릭트였던 모양이다.





우리가 가려는 곳은 명백했다.

사진에도 얼핏 보이는 파웰 서점이었다.

포틀랜드 여행을 이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래는 필름사진.





시애틀보다 더 높은 건물이 없는 포틀랜드.

주차비도 시애틀보다 저렴해서 좋았다.

세금도 없어서 그냥 가격표에 적힌 금액만 내면 되니까

더욱 좋았다.





필름으로 찍었던 티 바.

정말 간소하기 짝이 없는 구조다.

비우고 줄이고 삭제한다는 게 득이 되면 득이 됐지

독이 되진 않는다는 걸 이런 곳에서도 배운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너무 똑같은 구도인가.





그러나 이곳에서도 건물은 올라가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갈 때까지

이 도시가 너무 높아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지난 광고물 같지만,

3 Days in Portland라는 저 문구가 계속 눈에 박혔다.

우리는 4 Days라고 해야겠지만,

어쨌든 시간을 한정하는 것 같고

무슨 원고의 제목 같기도 해서,

이곳을 떠날 날이 미리 아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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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포틀랜드 여행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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