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포틀랜드에서의 첫 식사는 로컬 브루어리에서 하기로 했다.

로컬 브루어리라는 말이 거시기하긴 하다.

그러니까 동네 맥줏집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맥주를 직접 만든다는 게 평범한 동네 맥줏집과 다르겠지만.


이곳은 이날 만났던 사진 작가님께 추천 받은 곳 중 하나였다.

맥주가 맛있겠지,

순전히 그런 기대로만 이곳을 찾았다.

앨버타 스트리트에 있다고 하여 그 유명한 거리도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그런데 웬걸.





일단 나무 좀 벨 줄 아시고 맥주도 마실 줄 아시는 분이 로고로 등장하신다.

맥주와 나무꾼이라.

일단 로고의 나무는 침엽수이고,

자연스레 꽤 추운 곳이겠구나 싶은 마음이 드는데,

커피도 아니고 맥주라니 정말 확실하게 몸을 덮힐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간판을 보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 그레이트 노션 브루잉 바로 옆에는

세상 처음 보는 '마사지 카트'가 있었다.

푸트 트레일러를 생각하면 되는데,

거기서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다.


아마 예약제로 손님이 있으면 슬렁슬렁 와서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모양이었다.

커피를 팔든 브런치를 팔든 직접 만든 잼을 팔든

뭘 해도 어울릴 저런 트레일러 안에서.


기발한 생각이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이런 건 보지 못했다.





사진은 밝게 보정을 했지만,

해가 진 후였고 실내도 아주 어두웠다.


분위기는 아주 실용적이었다.

꽤 많은 나라의 많은 도시에서 '포틀랜드 스타일'을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요즘.

포틀랜드에 있는 이곳은 그냥 내키는 대로 꾸며놓고 나니까 자연스레 '포틀랜드 스타일'이 되었다.


그래도 좀 더 밝았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사진을 찍을 땐 몰랐는데,

바에 앉은 분이 다른 브루어리 직원이신가 보다.

한국의 수제 맥줏집도 그렇지만, 다른 브루어리의 맥주를 '손님'으로 받아들여 파는 곳이 많았다.

어쨌든 누군가는 계속 맥주를 마실 것이고,

이런 소규모 매장 간에는 경쟁 관계보다는 협력 또는 상생 관계가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그나마 이쪽 창가 쪽이 밝아보였다.

종업원들이 굉장히 친근하게 대해 줘서 무슨 메뉴인지 물어보고 주문을 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드디어 맥주.

알코올 도수가 좀 높았던 IPA였다.

맛있었다. 맛있었는데, 맛있다는 사실을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잠깐 숨을 돌리고,





이 핫 윙이 아주 맛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어둡게 찍히고 ISO도 높았기 때문에 이 정도 개선이 최선인 게 아쉬울 뿐이다.

닭날개인데, 그냥 닭날개인데, 정말 맛있었다.

함께 나오는 채소도 좋았다.

핫윙과 샐러리는 궁합이 잘 맞는다.

그런데 이게 맛있다는 사실도 곧 잊고 말았으니,





이 치즈 버거 때문이다.

흔히 수제 햄버거라고 불리는 패티 두툼하고 요리 같은 햄버거도 이곳저곳에서 먹어봤지만,

그중에서 이 치즈 버거가 최고였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내가 평생 먹은 햄버거 중 가장 맛있었다.

나보다 더 맛있는 걸 먹은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에겐 이 치즈 버거가 최고였다.


아내도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소고기를 다져서 뭉쳤을 텐데

식감이며 육즙이며 불에 그을린 정도까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물론 패티만큼 중요한 번 역시 훌륭했다.


다시 말하지만, 평생 내가 먹은 햄버거 중 최고였고,

누군가 이 이상의 햄버거를 어디서 파는지 알려줬으면 좋겠다.

가까우면 찾아가게.





이 사진을 보니 뒤늦게 맥주 이름이 떠오른다.

첫 잔은 쥬스 주니어였고, 두 번째 잔은 만델라(with 넬슨)이었다.





동화 속 오두막 같은 브루어리의 외벽에 짙은 어둠이 내렸다.

쌀쌀하긴 했지만, 이 느낌만으로 보자면 거의 크리스마스다.

내 기분이 크리스마스였다.


Great Notion Brewery





해가 지는 속도도 느린 포틀랜드.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고 누군가 차도를 미끄러지고,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으며 행인은 인도를 건넌다.


어떻게 보면 특기할 만한 점이 다른 유명한 도시에 비해 적은 것도 같지만,

취기와 함께 밤거리를 걸으며 포틀랜드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젖어든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면 좋으리라.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아빠는 거의 쓰러졌는데,

아들은 힘이 넘쳤다.


그렇게 포틀랜드에서의 첫날이 흘러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