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만난 구안은 스패니쉬계 미국인이다. 그는 나를, 아니 내 여행용 가방을 보자마자 "그거 지갑이야? 너 게이냐?"고 물었다. 너의 성향은 존중하지만 열 시간 넘게 옆에 타고 가기엔 좀 그렇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덩치도 큰 게 가리는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친절하게 이건 지갑이 아니라 여행용으로 간편하게 들고 다니는 가방이라고, 나는 게이가 아니니 걱정 말라고 그를 안심시켰다. 정말 한숨을 돌렸는지(?) 그 때부터 그는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구안은 미군이다. 독일에서의 복무를 마치고 3년 간 한국으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한국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물으니까 이번이 처음이라고, 사실 한국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다고 털어놓았다. 동양의 작고 생소한 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난생 처음 항공사 라운지를 이용해 봤다.내가 비즈니스 석에 앉는다거나 엄청난 마일리지를 쌓아 회원 등급이 높아져서는 아니다.그냥 운이 좋았다. 이곳은 별세계 같았다.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즐기거나 쇼파에 앉아 쉬는 건 물론 샤워도 할 수 있는 곳.맛있는 음식이 뷔페식으로 제공되고 술이나 음료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곳.마치 고급 호텔에 온 것만 같은데 그 모든 게 무료인 곳. 여행이나 출장을 이런 곳에서 시작하고 이런 곳에서 쉼표를 찍으며 이런 곳에서 마무리할 수 있다면어떤 기분일까?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여행은 피로하다는 것이다.장시간의 비행, 시차 적응, 이국에서 느끼는 긴장감.그 모든 게 사람을 지치게 만듦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런 곳이 존재할 거라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멋진 라..
며칠 째 에스프레소나 따뜻한 카푸치노만 마시니까여름의 음료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찾은 별다방.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어쩜 이렇게 한국과 다를 게 없을까 감탄스럽기만 하다.세계적인 체인의 커피하우스는 마뜩찮은 방법으로전세계를 연대시키는 것 같다. 그러나 어쩌랴.이 더운 날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물보다 반갑더라. 이성과 욕구는 어찌 이리 따로 노는 것인지. @Frankfurt, Germany canon A-1kodak 100
산 피에트로 광장은 긴 회랑으로 둘러쌓여 있다. 광장 어디에 서면 회랑의 여러 기둥이 하나로 겹쳐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땡볕에 잠깐 서서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나 기둥이 겹쳐보이는 신기한 자리보다 나에게 필요했던 건 더위를 피할 목 좋은 장소였다. 그래서 회랑 안으로 들어간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회랑 기둥의 주춧돌에 둘러앉아 더위를 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과연, 이곳은 태양에 노출되지 않고 종종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식히며 산 피에트로 광장의 모습을 지켜보기 좋은 곳이다. 몇 시간이고 앉아 식수대에서 뜬 물을 나눠 마시면서 이탈리아의 여름을 이겨내기. 이상하게 차분해지는 경건한 분위기는 덤. @Vatican City canon A-1 + 50mm superia 200
8월 중순의 로마는 덥다.고대의 시멘트는 햇살 아래서 창백한 베이지색으로 빛나 눈이 부시고현대의 아스팔트 위를 지날 땐 숨을 쉬기가 힘들다.그러니 식수대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안 그래도 비싼 물값, 바티칸 시국 주변에선 놀라울 정도까지 올라가니까. 아마 수백 년 전에도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아이들이 똑같이 물을 받아 똑같은 소리를 내며 머리에 끼얹었을 것이다.역사책에도 한 번쯤 언급됐을 배수로에 여전히 깨끗한 물이 흐른다니.로마를 걸을 땐 시계를 잘 봐야 한다.여름 날엔 특히 현실감을 잃기 좋은 도시니까. 그런데 이 더운 날에 이럴 수 있는 건 무슨 재주일까? @Roma, Italy canon A-1 + 50mmsuperia 200
안나 카프리의 정상을 오르내리기 위해 일인 곤돌라를 탄다.탈탈거리는 진동. 혼자 맞는 조용한 바람. 가끔 발밑이 서늘해지는 스릴.하지만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고민이 시작된다.그냥 웃어야 할지 무시해야 할지 손이라도 흔들어야 할지.그 때, 그가 먼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그리고 나는 카메라를 들어 화답을 했다.우리는 서로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Capri Island, Italy canon A-1 + 50mmsuperia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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