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에스프레소나 따뜻한 카푸치노만 마시니까여름의 음료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찾은 별다방.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어쩜 이렇게 한국과 다를 게 없을까 감탄스럽기만 하다.세계적인 체인의 커피하우스는 마뜩찮은 방법으로전세계를 연대시키는 것 같다. 그러나 어쩌랴.이 더운 날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물보다 반갑더라. 이성과 욕구는 어찌 이리 따로 노는 것인지. @Frankfurt, Germany canon A-1kodak 100
:: D가 날 깨웠을 땐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나흘 내내, 결국 홍콩의 아침을 본 적이 없다. 잠들기 전, 오전에 짬을 내서 어딜 다녀오자고 계획했던 것 같은데 그게 어디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고, 이제 와선 시간도 없었다. 출국 시각까진 그럭저럭 여유가 있었지만 지체하진 않기로 했다. 대충 씻고 모자를 눌러쓴 후 짐부터 정리했다. 며칠 동안 신세를 졌던 호텔방엔 누군가 장기 체류를 하다가 막 떠난 현장처럼 질서와 어지러움이 공존했다. 수건은 매일 새로 (카트에서 우리 마음대로) 가져왔지만 룸 메이킹은 한 번도 받질 않았다. 방을 청소하는 시간 전에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인데, 사실 침대 시트 네 귀퉁이를 반듯하게 펴는 것 말곤 정리할 거리 자체가 없는 방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 침대마저도 반은 캐리어..
:: 휴일 낮의 센트럴과 월요일 저녁의 센트럴은 확연히 달랐다. 지금껏 별로 본 적 없는 정장 차림의 남녀가 빌딩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문득 홍콩을 묘사하는 많은 표현 중 '세상에서 가장 바쁜 도시'가 떠올랐다. 금융업이 발달한 도시는 왜 삶의 속도까지 빨라져야 하는 걸까? 오직 숫자로만 존재하는 실체 없는 이상을 잡기 위해 쉼 없이 뜀박질을 해야 하기 때문일까? 이 도시가 그나마 진취적으로 발을 구르는 곳이라고 한다면, 그저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각박하게 사는 한국은 얼마나 처참한 곳인 걸까? 아니다, 분위기를 바꾸자. 오늘은 밤을 새워 기념해도 부족할 여행의 마지막 날이니까.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홍콩 남자의 헤어 스타일을 두고 흉을 본 적이 있지만, 그들은 실로 정장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 홍콩, 런던, 밴쿠버, 두바이. 이런 주요 도시엔 오픈 탑 투어를 책임지는 빅 버스가 포진해 있다. 빅 버스에 탄다는 건 "저 관광객이에요."라 쓰인 커다란 전광판을 들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오히려 그게 초심자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여력만 된다면 누가 빨간색 이 층 버스에 올라 도시를 누빌 기회를 마다하겠는가. 언젠가 런던에서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빅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생판 모르는 보행자에게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고 환호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모형 자동차 같은 버스 안에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여기 홍콩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D가 빅 버스 티켓 두 장을 얻어 왔던 것이다. 홍콩의 빅 버스엔 총 세 개 노선이 있는데 그 중 ..
:: 내가 사겠다며 D를 끌고 간 곳은, 사실 무슨 대단한 곳이 아니라, 그냥 스타벅스였다. 스타의 거리로 들어서기 전에 이 층짜리 스타벅스가 하나 있었는데, 딱 봐도 야경이 끝내줄 것 같은 명당이었다. 주문을 하고 혹여나 앉을 자리가 없을까 전전긍긍하며 이 층으로 올라갔지만 의외로 빈자리가 많았다. 처음엔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금방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고스란히 몰려오는 더위와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절대 시원하진 않다.) 지칠 줄 모르는 모기떼 때문이었다. 온종일 카페인 섭취도 못 했고 갈증도 났다는 표면적인 동기를 떠나서, 내가 굳이 스타벅스를 찾은 이유는 외국에 가서 꼭 한 번은 맥도널드를 찾는 이유와 같다. 스타벅스와 맥도널드 같은 거대 프랜차이즈 기업의 매장들은 문명화된 ..
:: 몇 시간 전에 먹은 기내식만으론 피로를 감당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호텔로 오며 지나쳤던 현지 식당들을 떠올려 봤지만, 지금 당장 도전하긴 무리였다. 안전한, 보장된, 그러면서 우리가 좋아할 만한 메뉴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햄버거 같은. 방 크기에 적응을 좀 하고 나서 (다시 들어올 때 또 놀라면 안 되니까) 호텔을 나섰다. 로비엔 페인트 냄새와 분진이 떠돌고 있었다. 계단 한쪽은 막힌데다가 형편없이 좁아서 단체 두 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맞닥트려도 엉겨붙어 지나가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공사가 끝나면 최소한 호텔 외관보단 그럴싸하게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니 똑같이 뜨겁고 습한 거리라도 발걸음이 가볍다. 지도 없이 낯선 길을 따라 걸으며 여행의 즐거움 중에서도 ..
베네치아에선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구도로 산 조르지오 마조레 교회를 찍는다.보이진 않지만 내 양 옆으로 다양한 렌즈를 물린 다양한 기종의 카메라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전경, 중경, 후경이 다 갖춰져 있으니 확실히 아주 모범적인 피사체긴 하다. 남들 다 하는 거라고 따라하는 건 줏대가 없는 일이지만남들 다 하는 거라고 일부러 안 하는 것도 참 괴벽스러운 짓이다.최소한 여기선 그런 생각이 든다. @Venezia, Italy canon A-1 + 50mmkodak 100 via Photo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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