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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날드는 많은 배낭 여행자들에게 있어 일종의 성지다. 빠듯한 예산과 일정 안에서 돈과 시간을 아끼기엔 이보다 안성맞춤인 곳이 없다. 탄수화물, 단백질, 약간의 비타민과 다량의 나트륨, 그리고 풍부한 지방이 함유되어 있으니 일단 인간은 햄버거만으로도 움직일 순 있는 셈이다. 그저 영양소의 비율이 문제일 뿐이지.

  맥도날드가 들어선 지역을 붉게 표시한 '맥도날드 지도'를 보면 이 패스트푸드 공장이 세계 곳곳에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비만과 성인병, 거대 자본에 의해 변질된 인간의 식습관 같은 문제들을 잠시 뒤로 밀쳐놓으면 재미있는 사실이 보인다. 이런 전 세계적인 매장에 발을 들임으로써 여행지에서 느끼는 고립감을 이겨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익숙한 무언가는 낯선 풍경과 낯선 언어, 낯선 인물들 가운데서 돋보기를 댄 것 마냥 크게 다가온다. 안도감과 반가움이 닫혀 있던 마음을 두드리고, 나도 여기선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는 자신감에 움츠려든 어깨엔 모처럼 힘이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프랜차이즈 기업의 씨앗들은 지구상 어디에서라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환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동네에서 보는 것을 여행지에서조차 보고 싶어 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가끔 감정의 피하에 환상을 주사하여 외로움을 면역하는 일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Countries with McDonald's[각주:1]

  프라하 성을 내려와 유럽에서 처음으로 맥도날드를 찾은 이유도 반은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M'은 지나치게 서구적이어서 향수를 달래기엔 부족하지만, 최소한 낯익은 환경만은 경험케 해 준다. 팔천 킬로미터란 거리가 무색할 만큼 실내장식은 한국과 다를 게 없고 달착지근한 기름과 소스 냄새도 그대로다. 무서울 정도로 획일적인 체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고국에서 길들여진 편안함에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까지 겹치자 금세 이곳이 마음에 들고 말았다.

  매장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대부분 여행자로 보였다. 빅맥을 먹을까 하다가 이왕이면 한국에 없는 메뉴를 먹기로 했다. 체코어라 이름을 기억할 순 없는, 칠리소스와 할라피뇨가 들어간 햄버거였다. Menu(우리나라로 보자면 세트)에는 햄버거, 음료수, 감자튀김은 물론 머핀까지 포함되어 있어 한결 푸짐했다. 그런데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렇게 걸직하게 먹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체로 한국 사람들이 접시 한 가득 나오는 샐러드나 세트메뉴를 시키는 편이었다. (이건 습관인 것 같다.) 우리 옆에 앉아 있던 한 젊은 외국인 남성은 음료도 없이 작은 햄버거 하나만으로 한 끼를 때우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그에게 충분한 양은 아니었다. 갑자기 그가 혼자라는 사실이 부각되며 맥도날드에 숨어있던 진짜 '낯익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패스트푸드는 태생 자체가 외로운 순간을 위한 음식이다. 세상 이곳저곳에 돈과 시간에 쫓기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동질감'이 이곳엔 존재한다. 그런데 동병상련이랄까. 그런 연대가 오히려 낯선 땅에서 외로움을 줄여주는 셈이다. 맞은편엔 여행의 동반자가 앉아 있고 테이블 위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지만, 햄버거를 한 입 깨물자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패스트푸드의 맛이었다. 그리고 그 외로움 덕분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외로운 순간을 위한 음식.

  패스트푸드의 정서야 어쨌든, 사족처럼 여기에 프라하 햄버거의 평을 쓰지 않을 순 없겠다. 할라피뇨 버거는 크기가 거의 와퍼 수준이었다. 먹느라 입 벌어지고 좋아서 입 벌어지고 입을 다물 새가 없었다. 원래 할라피뇨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편이지만 햄버거에 들어있으니 씹는 맛이 또 달랐다. 우리나라 맥도날드에서도 꼭 팔았으면 싶었는데 아직까지 소식은 없다. 홈 메이드 버거를 파는 매장에 가면 종종 할라피뇨를 넣는 햄버거들이 있어 그때를 추억할 뿐이다.

  점심을 먹고 기념품을 샀다. 카를교 모형과 거울, DVD 엽서 2. DVD 엽서는 말 그대로 DVD에 프라하의 사진과 체코 출신 음악가들의 음악, 동영상이 포함된 패키지로 둘 중 하나는 나를 위한 기념품이었다. 친척 동생은 계속 노래를 부르던 마리오네트 인형을 샀다. 황급히 먹고 황급히 사는 걸 보니 마지막 날이란 생각에 골몰한 건 확실한데, 손이 무겁고 몸이 지치는 덴 배길 수 없어 일단 호텔로 돌아왔다.


카를교의 새.

  텔에서 재정비를 하고 나오자 해가 지고 있었다. 현대와의 조우를 하자는 의미에서 춤추는 빌딩을 후반 첫 목적지로 삼았다. 가까운 역에 내려 잠시 헤맨 끝에 발견했는데 큰 감흥은 없었다.

  너는 춤을 추지만 나는 너의 위트에 맞춰줄 힘이 없다.

  이런 심정이었다.


춤추는 빌딩.

  거기서 블타바 강을 따라 카를교로 향했다. 강변에 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옅은 안개를 뚫고 선명한 빛을 내는 프라하 성은 북극성이 되었다. 강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몇 번씩이나 몸을 움츠리다가도 마음이 동하면 난간 위에 카메라를 얹어놓고 야경을 담았다. 중간에 트램을 타고 유대인 지구도 가보았지만 밤이라 볼 만 한 건 없었다. 하여 하릴없이 걸었다. 명품 매장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 구시가 광장으로, 다시 신시가지로, 그리고 또 프라하 성으로 나아갔다. 걷는 건 외엔 달리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스쳐지나가는 모든 것들.

  '마침내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 생각이 바람보다 차가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까지 여행으로 칠 순 없다는 투정은 아니었다. 출발과 도착에서 여행의 몸뚱아리만은 따로 간직하고 싶었을 뿐이다. 우린 도착의 내리막길을 코앞에 두고, 가파르던 여행의 언덕과 이별할 찰나였다. 도시도 바뀌고, 날씨도 바뀌었으며,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졌는데 밤이 깊을수록 그 모든 걸 포함하는 크고 뭉뚱그려한 하나의 대상이 그리워졌다. 그건 열흘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일 수도 있고 시간 안에 축적된 감정의 층층일 수도 있었다. 어느 작가가 슬쩍 흘려 표현한 대로, '초점이 맞지 않는 노스탤지어'에 젖어들었다.


쓸쓸한 풍경.

  인적이 드문 길을 지나 프라하 성의 후문으로 올랐다. 시내의 야경을 대표로 삼아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좋은 시간을 끝낼 때 마음은 물에 젖은 종이마냥 얼마나 약해지는지.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를 회의하고, 정리되지 않은 지난 며칠을 벌써부터 추억한다. 조금이라도 강렬한 기억을 남기기 위한 모든 시도들은 다 가슴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다. 우리는 성벽에 기대 담배를 물음으로써 이별의 의식을 대신했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3분여 동안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흐라트차니 언덕을 내려가야 한다는 우리의 입장만 더 분명해졌을 뿐이다. 발걸음이 떨어질 리 없는 상황이었지만 가파른 언덕에서 중력과 관성의 힘을 받아 우리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이별의 속도도 그만큼 빨라지고 있었다.


안녕, 프라하.


PS 1.

  이날의 저녁은 중국요리였다. 신시가지에 있는 꽤 큰 중국집(?)이었는데 주인이나 요리사 모두 중국인이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요리 두 개랑 콜라를 시키자 밥이 한 접시에 수북이 쌓여 나왔다. 얼마 만에 먹는 제대로 된(?) 쌀밥인지. 고기 요리도 맛이 그만이라 이게 진정한 행복이다 싶었다. 이렇게 먹는 것까진 좋았다. 값을 치르고 식당을 나섰는데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계산을 할 땐 경황이 없어서 몰랐는데 나와서 메뉴판을 다시 보니 우리가 낸 돈이 요리 값에 서비스 차지를 합한 것보다 훨씬 많았던 것이다. ! 바가지를 썼구나! 같은 아시아인을 등 처먹다니. 워낙 밥을 맛있게 먹었으니, 그리고 큰돈은 아니었으니(100kc 정도였다.) 그냥 넘어가자고 했지만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PS 2.

  팔라디움에서 어제부터 눈여겨 두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 술을 샀다. 좀 걸쭉해 보이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호기심을 이길 순 없었다. 짐 정리를 위해 마지막 식량을 털고 노란 술을 반주로 삼았다. 그런데, 이건 거의 시럽이었다. 물을 타고 또 타도 깔끔하게 넘어가지 않는 독한 알코올 때문에, 결국 반이나 남기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이야기.



핑크색 캡션 사진은 fujifilm F50fd으로
푸른색 캡션 사진은 Canon A-1 + superia 200으로 촬영했습니다.
F50fd 사진은 필름과 느낌을 맞추기 위해 크롭 및 보정을 했습니다.
초록색 캡션은 제가 찍지 않은 기타 사진들입니다.




  1. 출처 : http://www.bme.eu.com/news/mcdonalds-across-the-worl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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