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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하나 웨스트 호텔 앞에 커다란 식료품 마트가 하나 있다. 이름도 푸드 팬트리(식품 저장실). 너무 솔직하게 자아를 드러내는 이름이다.
   
샌드위치를 먹을까 하다가 그만두고 마트 뒤편에서 담배를 태우는데 남자가 지게차에 오른다. 주차장 곳곳에 쌓인 커다란 박스가 그의 일거리다. 시동을 걸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스스럼없이 웃어 보였다.
   
"일본 사람이에요?"
   
"아뇨, 한국 사람인데요."
   
"그래요? 여긴 한국 사람도 많아요." 그는 운전대를 잡고 액셀을 밟았다. 기다란 손잡이를 움직이자 곤충의 집게 같은 쇳덩이가 아래로 미끄러졌다. "제가 재미있는 하나 보여 드릴게요."
   
능숙하게 박스 밑으로 받침을 집어넣은 남자는 푸드 팬트리 건물 가까이 차를 댔다. 그런데 층엔 벽뿐이었다. 재고를 집어넣을 만한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여긴 창고가 층이에요."
   
내가 어리둥절해한다는 눈치챘는지 남자가 소리쳤다. 눈을 들어보니 과연, 높이에 창고 문이 열려있었다.
   
"창고가 층에 있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게차는 선반 위에 놓인 과자 단지를 꺼내려고 발돋움하는 아이처럼 상자를 높이 들었다. 그는 정확하게 지게와 창고 바닥의 높이를 맞추고, 매끄럽게 상자를 안으로 집어넣었다. 지치지 않고 일하는 근육질의 남자를 보는 같았다.
   
"여긴 이런 식이에요."
   
도대체 누가 창고를 층에 만들 생각을 했을까. 아마 남자도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지게차 운전 솜씨를 보여줬을 것이다. 그런데 크고 무거운 상자가 차례차례 창고로 올라가는 보고 있자 ·출고 최적화의 원칙에 대한 고정관념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숙련자만 있다면 창고를 옥상에 지어 놓은들 무슨 문제가 되랴. 게다가 반대로 생각하면 창고가 층에 있기 때문에 지게차를 엘리베이터처럼 만들 있는 남자가 고용된 것일 수도 있다. 그의 운전 솜씨를 본다면 누구라도 그를 공중 적재의 최적임자라고 생각할 테니까.

  셀프서비스로 운영되는 하와이 식당에서 가장 생소했던 점은 주문하는 방법도 가격도 음식의 열량도 아니었다. 바로 분리수거를 전혀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 이유를 묻자 "아직은 필요를 느끼지 못하니까요. 그리고 그래야 분리수거를 하는 사람들이 돈을 있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슴이 싸해지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화려한 섬의 뒷골목에서 엄청난 소비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을 이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휴양지라는 환상은 정말 섬처럼 도시 위에 떠있고, 수면 아래에선 매립지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재질별로 분류하거나 지게차를 손발처럼 다루어 창고를 채우는 사람들이 환상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푸드 팬트리의 주차장이자 적하장에서 돌아설 즈음엔 남자는 완전히 작업에 몰두하여 내가 가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문득 시간쯤이면 누추한 호텔방에서 이름도 성별도 모를 룸메이드가 폭신하게 세탁된 침대 시트를 갈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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