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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같은 해변에 앞다투어 모인 특급 호텔들이 가장 좋은 경치를 독점한다.

해변으로 나가려면 호텔과 호텔 사이에 난 골목길을 걸어야 했다.

에어컨디셔너의 실외기가 윙윙거리고 반쯤 열린 창문에선 저녁 준비하는 냄새가 풍긴다.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주방장과 벨보이들은 로비나 식당보다 이곳에서 더 마음 편해 보였다.

골목 끝은 눈부시게 빛났다
.

백사장을 밟는 순간, 빛과 소리의 파도가 등 뒤 골목 안으로 쓸려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석양, 바다, 모래, 몸매를 솔직히 드러낸 단벌 팬츠와 비키니.

지도를 보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실제로 와이키키 해변에 모여있었다.

강렬한 빛의 이미지는 시간과 생각의 흐름을 걸쭉한 소스처럼 느려지게 만들었다.

그러다 지평선 부근에 드리워진 구름의 그림자가 천천히 미끄러지고 있음이 눈에 뜨이면

그제야 걸음을 옮길 수 있는 것이다.

이곳에 앉아 뭔가를 불안해하거나 고민할 수 있다면

그는 참으로 삶에 대한 애착이 대단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나 묵지 못하는 특급 호텔이 아무리 바닷가에 병풍을 친다 해도,

우리의 걸음은 항상 그들보다 더 해변 가까이 있다.



canon A-1 + 24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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