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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와이에서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자동차 번호판이다. 그 네모난 금속판 위엔 항상 알록달록한 무지개가 떠있다. 시선을 이리 돌려도 보이고, 절로 돌려도 보인다. 어쩐지 귀여운 장난 같아서 속 안의 심각한 매듭 하나가 풀리는 기분이다. 물론 이곳이 꿈과 희망에 가득 찬 섬이라 그 상징으로써 그려놓은 건 아니다. 국지성 비가 자주 내리는 하와이에선, 하루에도 몇 번씩 무지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와이에서 무지개를 처음 본 건 도착한 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시내로 진입할 즈음 빗방울이 차창을 때렸다. 해가 멀쩡히 떠있어도 꿋꿋하게 내리는 여우비였다. 남국의 섬에선 흔히 있는 일이겠거니 하는데, 저 멀리 아치형의 프리즘이 반짝였다. . . . . . . . 일곱 가지 색이 모두 살아있는 선명한 무지개였다. 자세히 보려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무지개였다.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해 왔을 정도였다. 무지개는 그런 이미지다. 인생에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할 행운 같은 현상. 어쩐지 좋은 일을 불러올 것 같은 빛의 자취. 목에 걸어주는 꽃이나 조개 목걸이보다 더 기분 좋은 환영 인사였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인사를 너무 자주 한다는 인상을 받기는 한다. 연 강수량이 삼천 밀리미터가 넘는 빅 아일랜드의 힐로 같은 곳에선 세 개의 무지개를 연속해서 본 적도 있다. 그럼 반응이 달라진. , 저기 무지개 떴다, 저기도 무지개가 있네, 또 무지개다. 아무리 재미있는 동화라도 세 번을 연달아 읽으면 질리기 마련이듯 무지개를 향해 감탄하는 횟수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횟수도 점점 줄어든다. 는 이를 사로잡았던 마력이 차츰 힘을 잃어가는 것이다. 이럴 수가, 무지개가 평범해지다니.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이미 뭔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무지개는 그 시작과 끝을 궁금하게 만든다. 불쑥 나타났다가 불쑥 사라지는 등 퇴장엔 신비스러운 면이 있다. 어릴 땐 그 너머로 언젠가 실현될 꿈 같은 게 있다고 믿었고, 지금에 와서는 상실한 부분만큼 위로를 받았다. 무지개는 매번 보는 사람의 거친 심성을 와이퍼처럼 부드럽게 닦아냈다. 제 색깔을 덜어서 그 위에 덧칠을 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익숙해질지언정 지겨워지진 않았다. 자연스럽게 물이 들 뿐이었다.



 

  하와이에 와서 처음으로 무지개를 보았을 때, 사람들은 이 섬에 온 각자의 이유에 날개를 달았을 것이다. 신혼부부는 새로 시작하는 삶이 축복받았다고 여겼을 것이고, 레저를 즐기러 온 사람들은 바다에서 더 많은 진풍경을 보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번호판에 무지개를 그려 넣었을 정도면 거주민에게든 관광객에게든 보여주고 싶었던 섬의 정체성이 있었단 이야기다. , 환상, 희망, 흥분. 그 어떤 것이든 당신이 바라는 무언가가 이 섬엔 있을 거라는 예고. 그것도 마치 시도 때도 없이 뜨는 무지개처럼 당신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거란 확신에 찬 예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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