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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 고생해서 그런지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특히 밤에 더 날카로워지는 D의 감각이 큰 도움이 되어 낮 풍경을 뒤집어 놓은 듯한 요지경을 지나면서도 길 한번 헤매지 않고 몽콕 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람은 여전히 많았다. 퇴근 시간은 피한 것 같지만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거나 시내로 나가는 인파가 엉켜있는 모양이었다. 이 많은 사람이 낮에 보았던 아파트에 포개져 들어가는 상상을 하자 인간 피라미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현기증이 일었다.

  제대로 된 열차를 타는 것은 제대로 된 출구를 찾는 것보단 훨씬 쉬었다. 몽콕도 두 가지 노선이 겹치는 환승역이지만, 각 노선이 한국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위아래 층으로 나누어져 있어 헷갈릴 일이 없었다. 이처럼 홍콩 지하철을 몇 번 이용하다 보면 무척 편리한 구조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몇몇 역에서 보았던, 다른 노선이 같은 플랫폼을 공유하는 체계가 인상적이었다. 노선이 직선으로 이어지고 서로 복잡하게 얽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였다. 예를 들어, 홍콩섬에서 주룽 반도로 올라온 승객이라면 환승을 해서도 계속 주룽 반도 안쪽으로 올라갈 확률이 높다. 그래서 비슷한 방향의 두 노선을 같은 층에 정차하게 해서 반대편 승차장에서 바로 갈아탈 수 있게끔 하는 식이다. 덕분에 동선이 굉장히 짧아져 많이 걷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배차 간격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좀 길긴 했지만, 여행자가 선호하는 역들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이동 시간도 짧았다.

  플랫폼에서 침사추이로 떠날 열차를 기다렸다. 금요일 밤답게 젊은이들이 많았다. 이게 바로 홍콩 지하철의 또 다른 특징이다. 밤이 되면 지하철 승객의 평균 연령이 확 낮아진다는 것. 홍콩인들은 금요일 밤을 어떻게 보낼까? 궁금증은 곧 기대감으로 발전하며 침사추이로 향하는 우리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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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사추이까진 금방이었다. 칠팔 분이나 걸렸을까? (호텔을 찾을 때 개고생 한 기억은 낮술과 함께 까맣게 잊고) 새삼 호텔을 잘 잡았다는 생각에 뿌듯해 졌다. 지상으로 올라오자 몽콕과 비슷하면서도 그보단 깨끗한 건물, 그 못지않게 화려한 조명이 우리를 반겼다. 낮에 몽콕 역에서 올라와 처음으로 보았던 나단 로드가 여기 침사추이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Dsrmemoppra


  나단 로드는 주룽 반도의 중추 도로로 북경조약이 맺어진 다음 해인 1861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19세기, 중국과 벌인 두 번의 전쟁(1, 2차 아편전쟁)에서 연달아 승리한 영국이 본격적으로 홍콩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건설한 기반시설이었던 셈이다. 물론 처음엔 지금처럼 길이가 길지도 않았고 이름도 달랐다. 현재의 규모가 된 건 1920년대 이후이며, 원래 명칭은 홍콩의 다섯 번째 총독이었던 허큘리스 로빈슨의 성을 따로빈슨 로드였다. 그런데 아직도 홍콩섬에 남아있는 다른 로빈슨 로드와 헷갈려 열세 번째 총독인 매튜 나단의 이름으로 (그의 임기가 끝난 후에) 바꿨다고 한다. 그 당시에 매튜 나단은 알았을까? 자신의 이름이 붙은 도로가 세기가 바뀌어도 홍콩에서 제일 유명한 곳으로 남으리라는 걸? 그것도 크고 작은 쇼핑몰과 마사지 샵과 식당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휘황찬란한 명소로 말이다. 만약 그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임기가 끝난 총독의 이름으로 주도로의 명칭을 바꾸자고 제의한 사람을 찾아 밤새 입이라도 맞췄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핵심적인 도로답게 차도 위든 인도 위든 소통량이 어마어마했다. 그 한복판에 서서 촌스러울 정도로 자극적인 빛을 계속 받고 있자 점점 현실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랬다. 해가 지고 난 뒤, 도시가 불을 밝히며 뜨거운 숨을 쉬려 할 때 생겨나는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렇게 들뜬 사람으로 가득한 거리를 걸으면 덩달아 즐거워지기 마련이다. 나는 타인의 관객이 되고 타인은 나의 관객이 된다. 그리고 도시 전체를 무대 삼아 '오늘 밤'을 공연하는 것이다. 우리는 피차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이 밤을 유쾌하게 보내고 싶다는 공통점만 확신할 뿐이다.



  D와 나도 상당히 들떠서 거의 춤에 가까운 가벼운 발걸음으로 침사추이 동쪽을 떠돌아다녔다. 젊은이들을 따라가면 뭔가 나와도 제대로 나올 거라는 믿음과 함께. 얼마 걷지 않아 침사추이와 몽콕은 확연히 다른 느낌이라는 걸 알게 됐다. 홍콩의 주요 지역을 의인화한다면, 침사추이는 몽콕보다 젊고 멋 내기를 좋아하는 친구였다. 이런 경향은 침사추이를 지나 홍콩섬으로 내려갈수록 심해진다.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불과 이십 킬로미터 안에 생활 방식조차 다를 것 같은 극과 극의 공간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홍콩이며, 그것이 우리가 이 특별행정구역에 사로잡힌 가장 큰 이유였다.

  침사추이엔 젊은 남녀로 가득한 보세 매장이 많았다. 비교하자면 서울의 명동과 굉장히 흡사한 분위기랄까. 그중 규모가 큰 곳 한 군데를 골라 들어가 본다. 최신 팝 음악과 키치스러운 소품과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참 싸다고 생각되는 (그러나 굳이 사고 싶진 않은) 의류 잡화가 한 데 뒤섞여 있는 매장이었다. 사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제일 만족스러웠지만, 패션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열정도 흥미로웠다. 남녀 가릴 것 없이 양팔에 옷 한 벌씩 걸치고 계산대 앞에 줄을 늘어선 광경을 보며 머릿속에서 홍콩과 쇼핑이라는 두 개념이 최초로 접점을 이뤘다. 물론 나중에 보니 이 정도 매장은 애교나 다름없는 셈이었지만, 홍콩이 쇼핑의 천국임을 실감하게 되는 첫걸음으로는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양말 한 짝도 사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억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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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정말로 스타의 거리를 찾아갈 시간이었다. 맞게 가고 있는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일단 편의점에 들러 하루짜리 와이파이 패스를 구매했다. 한 개의 아이디로 여러 사람이 접속할 수 있는 통 큰 서비스였다. 과연, 정확한 현재 위치와 여행 안내서에 달린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밀한 지도가 우리 손에 쥐어졌다. 와이파이를 켜는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메시지는 덤이었는데, 그걸 보자 마치 오랫동안 떠나왔던 세상과 연결된 기분이었다. 분명 스마트폰은 여행의 방식을 가장 혁신적으로 바꾼 가장 작은 도구일 것이다. 그러나 이후로 우리가 문명의 이기에 기대는 일은 많지 않았다. 지도가 필요할 정도로 뭔가를 몰두해 찾아갈 일이 거의 없었고, 사진 찍을 때 말고는 휴대전화를 볼 시간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거의 해변에 근접할 때까지 한 시간은 걸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걸음 빠르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남자들이지만 새 길을 정복하는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걷다가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멈추고, 걷다가 들어가 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들렀다. 길이 아니라고 생각돼도 가고 싶으면 갔다. 여행자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불 꺼진 빌딩의 아케이드도 우리에겐 흥밋거리였다. 나와 D가 여행 죽이 잘 맞는 비결이 여기에 있었다. 오래 고민하지 않고 오래 판단하지 않으며(한 마디로 별생각이 없으며), 기가 막히게 합의(포기)가 빨랐기 때문이다. 그저 바다에 가까워져도 가시지 않는 더위가 고될 뿐이었다.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나단 로드만 해도 화려한 간판과 조명이 득실거리는데 골목 안쪽으론 어두운 길이 많았다. 하긴 이 모든 건물이 휘황찬란한 빛을 쏘아대면 낮보단 밤에 더 선글라스가 필요할 것이다. 구역마다 발전소가 세워져야 하는 건 물론이고. 문을 닫은 쇼핑몰과 손님을 가득 빨아들인 저급, 고급 호텔을 지나자 시야 저편에 홍콩섬의 실루엣이 보였다. 바다와 면한 침사추이의 마지막 블록엔 손님으로 가득한 노천 식당과 펍이 줄지어 있었다. 이슬이 흐르는 맥주병, 커다란 접시에 가지런히 놓인 서구식 음식, 삼 분의 일 쯤 찬 와인잔과 필요한 만큼 몸을 기댈 수 있는 테이블. 동남아시아에서 온 라이브 가수들이 매장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만큼 큰 대화 소리가 거리까지 퍼져 나왔다. 당장 우리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시원하면서 독한 술을 - 나와 D는 맥주와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 주문하고 싶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해변으로, 좀 더 바다에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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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짝 안개가 껴있어서 시정은 맑지 않았다. 하지만 홍콩섬의 야경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사진으로만 보던 세상이 실존한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은 언제나 놀라운 감정을 동반한다. 어떻게 저렇게 높은 건물들이 저렇게 좁은 땅에 다닥다닥 붙어있을 수 있을까? 한쪽으로 무게가 쏠려 당장에라도 앞으로 쏟아질 것 같은, 인간이 만들어 냈으나 자연에 버금가는 경이로운 풍경이 제방을 따라 펼쳐있었다. 시야는 검은 물결을 타고 탁 트여나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건물 숲에 막혀버렸다. 도대체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철근과 콘크리트, 강화 유리의 집합체가 저마다 다른 몸짓으로 말을 걸어왔다.

  거기에 결정적인 장면은 섬과 대륙 사이를 한가하게 오가는 다양한 형태의 배들이 완성했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중이며, 인구 밀도가 세계 최고에 달하는 이 도시도 지금만큼은 여유 부릴 법을 안다는 증거가 여기에 있었다. 모든 게 자유로워 보였다. 제방에 나란히 앉아 사랑을 키우는 연인도, 커다란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 세 개의 눈으로 야경을 보는 사진사도, 웃고 떠들며 산책하는 가족과 친구의 무리도, 그리고 우리 같은 이방인들도 여기선 급할 게 없었다. 아마 딱히 계획하는 바도, 목표하는 바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빛을, 실루엣을, 그 수많은 진동과 깜빡임을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갑자기 목적을 잃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 여행이라면 으레 아까워지기 마련인 시간을 그냥 하수구로 흘려보내도 죄책감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 나와 D가 찾던 소박한 자유가 여기에 있었다. 홍콩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건 우리가 기대했던 심리적 상태를 이곳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불평과 불만, 걱정과 불안보단현재에 집중하며, 스스로 서랍 깊숙한 곳에 처박아 뒀던 자유로운 영혼이란 명찰을 달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음껏 마시고 필요한 만큼 피울 수 있다는 점도 포함해서 말이다.

  감격에 찬 나는 목적 없음의 법칙도 잊고 이 모든 여행의 자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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