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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가 어딜까?

  여행의 둘째 날 아침엔 곧잘 그런 의문과 함께 눈을 뜨곤 한다. 깨어나기 직전까진 분명 내 방 침대 위에서 이 괴상망측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떴을 때 보이는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그래, 난 지금 홍콩이지. 이 좁아터진 방은 우리가 술을 마시다 쓰러진 호텔방이고. 에어컨을 그대로 켜놓고 잤구나, 목이 칼칼하고 몸이 으슬으슬하군. 그런데, 난 언제부터 자고 있었던 거지? 의식을 찾으며 하나씩 상황을 이해해 가는 과정은 수여 개의 전등을 차례대로 켜는 느낌과 비슷하다.

  상황이 좀 정리가 되자 머리가 무겁고 입안에 술 냄새가 가득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지만, 얇은 천조각은 자비 없는 햇살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저건 아침 햇살이 아니다 싶어 시계를 보니 아니나다를까 벌써 열 한시였다. , 신이시여.

  벌떡 일어나 어떻게 이렇게 오래 잠들었을까를 고민하는데 문득 어제 마시던 술병에 시선이 간다. 푸르스름한 봄베이 사파이어 병 안엔 술이 밖에 차 있지 않았다. . 반이라고? 게다가 이건 일 리터짜리다. 알코올 함유량이 47도에 이르는 술을 - 아무리 희석해서 마셨다 해도 - 하룻밤 사이에 오백 밀리리터나 마셨다니 정오가 되기 전에 깨어난 게 오히려 기적이었다. 도대체 여행 첫날에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마셨느냐고 묻는다면 어제는 내가 아니오, 그저 술 취한 나부랭이가 여기 대신 있었다 대답하리라.




  다행히 두통은 금세 사그라졌고 속도 뒤틀리지 않았다. 그저 밤사이에 누가 날 자루에 넣고 끌고 다닌듯 온몸이 뻐근한 게 괴로울 뿐이었다.

  여기서 다시 누웠다간 하루가 몽땅 날아가겠다 싶어 D를 깨웠다. 사실 D도 나와 비슷하게 일어났지만, 이게 지금 무슨 일인가 파악하는데 좀 더 오래 걸렸던 거라고 한다. D에게 술병을 보여주자 홍콩섬 어딘가에서 부유하던 정신이 단숨에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계량해서 따라낸 듯 딱 반만 차있는 술병을 보며 우린 하도 어이가 없어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창문을 열자 뜨거운 공기가 밀려들어 왔다. 우린 이미 몹시 덥고 평범한 일요일 한복판에 도달해 있었다. 간결한 차림으로 도로를 오가는 사람들, 학교 운동장에서 열리는 친선 축구 경기,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공사장의 소음이 작고 한가한 동네의 하루 전체를 상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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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물로 몸을 지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밖으로 나섰다. 한낮의 열기는 생각보다 더 뜨거웠다. 일단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에 몽콕 역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아직 앞으로 어디서 뭘 하겠다고 결정하질 못했다. 그냥 걸었고, 먹을 만한 곳에서 먹을 만한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최우선 과제였다.

  운이 좋게도 몽콕 역 주변에서 알맞은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랑함 플레이스라는 이름의 거대한 쇼핑몰이었다. 어제 이 앞을 왔다갔다할 땐 정신이 없어서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몽콕에서 가장 세련되어 보이는 건물인 만큼 여기라면 뭐라도 먹을 게 있을 것 같았다.


 


  랑함 플레이스는 안으로 들어가야 그 진정한 규모를 알 수 있다. 일 층부터 삼 층까진 일반적인 쇼핑몰의 공식을 따르지만, 사 층으로 올라가면 머리 위로 십 층 높이에 이르는 뻥 뚫린 공간이 나타나 감탄을 자아낸다. 공중엔 장식용임을 의심할 수 없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매달려 있고, 최상층으로 이어진 에스컬레이터는 클라이맥스로 올라가는 롤러코스터의 레일처럼 길고 가팔랐다. 그리고 그 주변에 꽉 들어찬 크고 작은 매장들! 뭐랄까, 흔히 하는 말로 대륙의 기상이 느껴진달까? 이렇게 무지막지한 공간을 그저 채광창과 상징적인 철골 장식을 위해 사용해 버리는 대범함은 우리로선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이들만의 기질일 것이다.




  홀처럼 넓게 개방된 사 층엔 스타벅스와 모스버거, 토스트 박스는 물론 다양한 나라의 요리를 주문할 수 있는 푸드코트가 있었다. 당장 급경사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싶었지만 일단 주린 배는 채워야 했다. 현지의 특색이 드러난다기보단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확보할 수 있는 표준화된 음식에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며, 여행안내서가 안내하는 체인 식당을 찾아갔다. 한국식으론 닭과 돼지고기 덮밥이라 표현하면 좋을 메뉴가 저렴한 가격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항상 이놈의 고기가 문제다. 살짝 양념도 된 돼지고기가 너무 콤콤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D가 가방에서 뭔갈 꺼낸다. 고추장이었다. 소스도 느끼해서 넌더리가 나려던 찰나였는데 덕분에 개운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여행 둘째 날에 한국 음식을 곁들여야 한다니 촌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스스로 양해를 구한다. 알다시피, 우린 이틀 연속 술을 퍼먹었으니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카레 덮밥을 시킬 걸 그랬다고 투덜대며,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까탈스러움은 우리가 민감해서인가 우리가 들이킨 술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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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식으로든 배를 채우고 나자 기운이 솟았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랑함 플레이스를 최하층부터 최상층까지 쭉 둘러보려 했는데 웬걸, 한 층을 보는 것만도 힘겨웠다. 매장을 몇 군데 들락날락하다가 이대론 바닥에 들러붙겠다 싶어 계획을 수정했다. 마침 퍼시픽 커피라는 홍콩산 커피전문점이 보인다. 커피를 주문하고 최대한 푹신한 의자를 찾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랑함 플레이스의 퍼시픽 커피는 콘셉트는 스타벅스에 가깝지만, 알고 보면 특유의 헤어스타일로 멋을 낸 남자 바리스타 여러 명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커피를 내리는 정겨운 곳이었다. 흔쾌히 사진을 찍게 해 주는 관대함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었고(촬영을 허락한 남자는 내가 카메라를 들자 장난스럽게 뒤로 물러났는데, 손님 상대하느라 정신없는 동료들을 마음껏 찍어가라는 뜻이었다), 명도가 낮은 원색의 원두 포장지가 마음에 들었으며, 커피 맛도 좋았다(사실 술을 마신 후엔 모든 커피가 맛있어지긴 한다).



  D와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실내에선 에어컨 바람 때문에 체온을 많이 빼앗긴다.) 어제의 일을 이야기했다. 처음으로 보았던 홍콩의 야경, 수많은 상점, 야한 조명에 물든 거리와 호텔방에서 마신 술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제의 기억은 마치 오래전에 벌어진 사건처럼 희미하게 몸 안에 체류하고 있었다. 아마 술의 조화일 것이다. 목격하고, 느끼고, 술과 함께 잊는다. 그리고 좋았던 기분만 남은 채 새로 시작한다. 졸음이 밀려왔고 몸이 무거웠지만, 그로 인한 막연한 기대를 감출 길이 없었다.

  삼십 여분을 노닥거리며 카페인을 섭취하자 마침내 피로도 항복하고 우리에게 다시 일어나라 권했다. 거의 오후 세 시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 한 일이라고는 천천히 일어나 밥 먹고 옷 구경 좀 하다가 커피 마신 게 전부다. 삼박사일의 일정에서 반나절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다니. 그런데 안달이 난다거나 마음이 조급해지질 않았다. 무엇보다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이 제일 만족스러웠다.

 

  랑함 플레이스엔 지하철 역과 이어지는 대형 마트도 하나 있었다. 다시 무더운 밖으로 나갈 필요 없이 식료품을 구경하며 마트를 통로 삼아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어젯밤에 이어 다시 한 번 홍콩섬으로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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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트럴 역에서 내려 지하도를 따라 홍콩 역까지 걸어갔다. 지금까지 새로운 지역의 지하철역에서 나올 때마다 놀라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휴양지를 연상시키는 찬란한 하늘 아래 초고층 빌딩 숲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강철과 유리의 선은 얼마나 날카롭게 재단되어 있는지 공간이 잘려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신세계를 찾은 듯, 어떻게 이렇게 몽콕이나 침사추이와 느낌이 다를 수 있을까? 그저 지하철을 타고 몇 분 달려왔을 뿐인데 미래 도시에서 눈을 뜬 것 같았다.



  앞서 말했듯 홍콩은 그리 넓지 않은 면적 안에 다양한 분위기의 지역이 공존한다. 몽콕 역과 홍콩 역의 직선거리는 사 킬로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일직선으로 걸어간다면 한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1960년대에서 2000년대를 관통하는 것이다.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홍콩은 오래된 유적이나 뛰어난 예술 작품,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경관이 있는 도시는 아니다. 수십 여년 동안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을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살아있는 활동사진에 가깝다. 식민지 시대부터 경제 성장기를 걸쳐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가 남긴 흔적을 우리는 아주 낡거나 아주 새로 지어진 빌딩을 통해서 체감하는 것이다.

  공원에선 스피커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선거 기간이라 유세를 하는  모양이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그 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정장을 입고 바쁘게 오가는 사람은 보이질 않았고 관광객 몇 명을 스쳤을 뿐이다. 이렇게 웅장한 빌딩 촌이 텅 비어있으며 그곳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우리 둘뿐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우리가 거리를 지배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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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토리아 피크를 향해 언덕을 올랐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머리가 핑핑 돌았다. 중간쯤 올랐을 때 예배를 드리러 가는 동남아 지역 출신 가정부들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들 사이에서 마치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된 듯한 착각을 느꼈다.

  주말이 되면 길거리에 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가정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은 그리 높지 않은 임금을 받으며 맞벌이 가정에서 일을 하는데, 주말엔 고용자의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일터(가정)에 있을 수가 없어 거리로 나온다고 한다. 도시 전체가 빌딩 밭임에도 주택난이 심각한 곳이라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숙소는 희소하다. 그리하여 아열대 기후가 축복하는 길바닥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의 수는 무려 삼십만 명을 웃돈다고 한다.

  처음 지나칠 땐 표정이 밝은 그들을 보며 소풍이라도 나왔나 싶었지만, 실상을 알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 경제 논리가 최우선시되는 공간이 부족한 도시에서, 휴식조차 거리에서 취해야 하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가정을 내맡기면서 동시에 거리로 내몰아야 하는 사람들 중 누가 더 슬픈 처지에 있는 것일까.


 

  우리가 빅토리아 피크로 올라온 이유는 빅 버스의 정류장이 이곳에도 한군데 있기 때문이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했을 때 우리가 타려는 노선의 빅 버스가 막 들어서고 있었다. 화장실이 급했지만 지금 안 타면 삼십 분을 기다려야 한다길래 그냥 몸을 실었다. 나의 방광에 행운이 함께 하길. 한국인 관광객 몇 명을 마저 태운 빨간색 버스는 가벼운 소음과 함께 출발했다. 우리의 행선지는 주룽 반도와 더욱 대조되는 곳, 홍콩섬 남부의 휴양지 스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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