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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만난 구안은 스패니쉬계 미국인이다. 그는 나를, 아니 내 여행용 가방을 보자마자 "그거 지갑이야? 너 게이냐?"고 물었다. 너의 성향은 존중하지만 열 시간 넘게 옆에 타고 가기엔 좀 그렇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덩치도 큰 게 가리는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친절하게 이건 지갑이 아니라 여행용으로 간편하게 들고 다니는 가방이라고, 나는 게이가 아니니 걱정 말라고 그를 안심시켰다. 정말 한숨을 돌렸는지(?) 그 때부터 그는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구안은 미군이다. 독일에서의 복무를 마치고 3년 간 한국으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한국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물으니까 이번이 처음이라고, 사실 한국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다고 털어놓았다. 동양의 작고 생소한 나라에 3년 씩이나 주둔하러 가면서 그는 흥분과 걱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내가 제일 걱정되는 건 말야. 한국 여자들이 날 좋아할까냐는 거야. 네가 보기엔 어때? 한국 여자들이 날 좋아할 거 같아?"

  난 웃음을 참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럴 거라고, 적응이 되면 이태원이나 홍대 앞에 가 보라고 일러주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힘을 얻은 것 같았다. 그는 정말로 그게 걱정인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생각해 봐. 3년이야, 친구. 3년이라구."

  정말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 3년 동안 한국은 그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게 될까?

  같은 비행기, 같은 좌석. 나의 짧은 여행은 여기에서 끝나고, 구안의 길고 긴 여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어떤 노선이든 이 거대한 날틀 안엔 수많은 사연이 반죽되어 있다. 그리고 하늘로 날아오르며 증폭될 기대, 한숨, 눈물, 피로, 기쁨과 권태가 색색의 스프링클처럼 그 위를 덮고 있다. 그 맛이 항상 달콤할 순 없을 것이다. 대체로 시큼하거나 쓰디 쓰거나 그도 아니면 눈물 나게 매울 것이다. 그래도 난 막 새로운 길로 들어선 그에게 행운을 빌어 주고 싶었다. 마치 바통처럼, 여행이란 작은 상자를 그에게 건네주는 기분으로.


  정신없이 자다 일어나니 벌써 고국의 하늘 위였다. 비행기가 지상에 착륙했을 때, 끝과 시작은 완벽하게 교차했다.

  "한국에 온 걸 환영해."

  "고마워. 행운을 빌어 줘."

  그는 나보다 두 배는 두터운 팔을 어린아이처럼 수줍게 들며 여행을 시작했다.


@Frankfurt, Germany / Seoul, Korea



canon A-1 + 50mm

portra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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