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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요약 : 무거운 가방을 들고 루브르 박물관을 거쳐 퐁피두 센터까지 걸어가다가 결국 체력 고갈.

  지엄 패스의 또 다른 활용법을 발견했다. '화장실 이용권'이다. 파리의 많은 공중 화장실과 식당 화장실은 유료지만 미술관은대부분 무료다. 게다가 시설도 좋다. 퐁피두 센터에 오르며 파리의 전경을 보다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거울 있고물 나오고. 화장실 찾기가 쉽지 않은 만큼 반갑기 그지없는 만남이다. 화장실 찾기 어려우면 뮤지엄 패스를 적극 활용하자! 퐁피두센터가 화장실과 동의어가 된 것 같아 좀 미안하긴 하지만.

  쇼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감히 작품을 볼 엄두가 나지않았다. 동행자가 관람에 큰 뜻이 없고, 나 역시 한국에서 퐁피두 전을 이미 봤다는 이유도 있었다. 물론 현지에 와서 보는 건다르겠지만 지칠 만큼 지쳐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할 것 같았다. 폭신한 자리에 앉아 다리를 두드리고, 휴대폰으로 잠깐 인터넷도했다. 퐁피두 센터 전역에선 프리 와이파이에 접속할 수 있는데, 그 때문에 파리의 젊은이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한국에서 퐁피두 전을 관람할 땐 이곳이 단순히 미술관이겠거니 했지만 직접 와서 보니 커다란 문화 공간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같았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퐁피두 센터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지붕이 참 아름다웠다.

날씨만 맑았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취할 만큼 휴식을 취했다는 생각이 들 때쯤 퐁피두 센터와 작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의 두 번째 목적지였던 마레 지구에들어섰다. 정확히 어디서부터 마레 지구라 해야하는지 확실치 않았지만 옷과 소품, 가구를 파는 샵이 늘어나 길래 여기가 거긴가보다 했다. 그리곤 걸었다. 파리 유행의 현주소를 볼 수 있다는데 잔뜩 기대를 품고서.
  한참을 걷고 나자 절로 이런생각이 들었다. 아, 진짜 힘드네. 정말 공포(?)의 마레 지구였다. 길도 복잡하고 중간 중간 있는 각종 저택들도 쌩뚱맞게나타나곤 했다. 평소 길 찾는덴 자신이 있었는데 어느덧 같은 곳에 돌아와 있을 땐 좀 당황스러웠다. 가게나 카페엔 들어가지도않고 돌아다니기만 해서 그런가 이곳의 정취를 느낄 새도 없었다. 게다가 그 많다는 '젊은이'들은 다 어디 간 건지, 거리는전반적으로 한산했다. 싸늘한 바람이 연신 우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마레 지구인지 확실친 않지만 그쪽 거리 스케치. 기대하시는 카페 사진은 없습니다만, 전 이쪽이 좋군요. :D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재미있는 일을 하나 겪었다. 한풍채 좋은 흑인 할머니가 차 트렁크를 열더니 지나가던 우리를 불러 세운 것이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트렁크에서 무거운 짐을 꺼내 손수레로 옮겨 달라는 이야기였다. 할머닌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과장된 제스처로, 무게중심을 약간 뒤쪽으로 둔채 말씀을 하셨다. 부탁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멈춰 선 우리도 자연스럽게 그에 응했다. 친척 동생한테 가방을 맡기고 손을 빌려들었다. 아프리카 토착신앙에 어울릴 것 같은 인형과 접시들이었는데 어익후, 무게가 상당했다. 그래도 친절한 동양 청년의 모습을보여드리기 위해 내색 않고 짐 두개를 옮겨드렸다. 그러자 할머니가 고맙다 고맙다 하시더니 잠시 기다려 보란다. 핸드백을 뒤적거리길래 먹을 거라도 주시나 했는데 웬걸, 1유로 동전 두 개를 주신다. 거절할까 하다가 어차피 큰돈도 아니고 기념이 될 것 같아서"메르시" 하며 받았다. 파리까지 와서 아르바이트(?)를 할 줄은 몰랐다며 우리는 웃었다. 어쨌든 여행 경비에 값진 2유로 추가.

 내부 공사로 인해 2012년까지 문을 닫는다는 피카소 박물관에 좌절하고, 그렇게 마레지구에서 마지막 체력까지 다 쏟아 붓고,우리는 방향을 틀어 St. Paul 역 쪽으로 나왔다. 큰 길을 따라 계속 동쪽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쑥 솟아있는오래된 건물을 만날 수 있었다. 생 폴 생 루이 교회였다. 과거에서 헤매다가 길을 잘못 들어 현대로 들어온 것처럼 홀로 오랜세월을 뽐내는 그곳. 안으로 들어서면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절로 숙연해지는 곳이었다. 1627년에 착공에 들어가 1641년에완성된 곳으로서, 그해 5월 9일에 첫 미사가 있었다고 한다. 옅은 어둠 속에 떠있는 노란 불빛들, 탁하진 않지만 세월의 내음이묻어있는 듯한 공기. 잠시 기둥 뒤편에 놓인 작은 의자에 앉아 지친 몸을 달랬다. 비록 종교는 없지만 그 어떤 사람이라도이곳에서는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교회에서 가져 온 작은 안내지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We pray that all who come to this Church may feel in unity with each other - Christians, people from all religions and all nationalities."


 회를 나와 보주 광장으로 갔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아래 찬바람은 여전했다. 하지만 보주 광장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아이들,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 연인 또는 홀로 온 남자. 그곳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렇게흐리고 추운 저녁에도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낮 동안 함께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그 공백을 만회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우리는 그 한 가운데 그저 스쳐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고, 나그네는 또 떠나야 하는 법.

  마지막으로 바스티유광장까지 갔다가 지하철을 탔다. 바스티유 광장에 어려 있는 역사적 의미도 우리의 피로를 씻어주지는 못했다. Bastille역에서 Concorde를 거쳐 Invailides 역에 도착했다. 앵발리드는 멀리서 바라만 보고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는알렉상드로 3세 다리에 올랐다. 과연 명불허전. 우리는 알렉상드로 3세 다리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힘든 것도 잊고(지하철을타고 오며 몸을 좀 녹이고 다리를 쉬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필름과 메모리를 이 다리에 소비했다. 다리 한 가운데서바라보는 센 강과 강변도로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전날에도 느낀 바지만 파리의 야경은 화려하진 않다. 작년 초 여행했던상하이의 야경이 한 순간에 모든 걸 터트리는 빛의 폭발이었다면 이곳은 잔잔한 선율이 흐르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파리의 야경에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붙이는 건 관대한 평가가 아니다. 멋진 야경의 조건은 마천루와 총천연색 불빛만이 아니다.강물을 따라 흐르는 수수한 가로등 불빛을 보고 있으면 입 밖으로 나오는 감탄 대신 그저 침묵의 찬사만 마음 안에 가득 퍼진다.

알렉상드로 3세 다리.

  알렉상드로 3세 다리에서 받은 감동을 밑천 삼아 우리는 다시 센 강을 따라 걸었다. 한 때는 사라질 뻔 했지만 꿋꿋하게 시대를이겨내고 파리의 상징이자 명물이 된 그곳, 에펠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에펠탑은 등대 같은 서치라이트로붉은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생 폴 생 루이 교회가 아주 오래된 과거에서 현재로길을 잘못 든 거라면, 우리는 한 4~50년 정도 그 반대 방향으로 걸어온 것 같았다. 인적이 뜸한 강변과 높고 좁은 우리네와달리 낮지만 넓게 이어진 건물들 사이에서 그런 느낌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높아지던 고개가 한계를느낄 즈음, 처음부터 있었지만 마치 지금에야 무대 위에 얼굴을 드러냈다는 듯 에펠탑이 나타났다. 공원의 나뭇가지 사이로 에펠탑의전신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게 되었다. 그것은 도시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노랗게, 아니 노랗다 못해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수줍은 듯 고개를 하늘로 들었어.

  에펠탑 주변엔 탑 모형 열쇠고리를 파는 잡상인들이 가득했다. 열쇠고리 뭉치를 흔들며 "원 유로!"를 외치는 남자들을 수도 없이지나쳐 우리는 제대로 에펠탑 앞에 섰다. 앙상한 철골 구조물일 뿐인데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매력적인 것일까. 시계를 보니 정각이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해가 지면 매 정시마다 에펠탑에선 조명쇼가 펼쳐진다. 그것을 보기 위해 이에나 다리를 건너 사요궁전으로 향했다. 기념품을 파는 잡상인은 어딜 가도 있었고, 곳곳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건지 아니면방해받고 싶지 않은 건지 같은 땅에서 온 것을 내색하지 않는 동향 사람들이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고, 지금 중요한 건에펠탑이다.
  사요 궁전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7시 정각이 되길 기다렸다. 저쪽에선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명당 벤치 자리에 앉아 술을 즐기며 떠들썩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시계가 정각을 가리키는 순간, 어제부터 몇 번이고봤지만 지금만큼 새로울 수 없는 조명쇼가 펼쳐졌다. 빠르게 점멸하는 하얀 불빛은 어떤 면에선 경박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벤치에모여 있던 외국인들은 크게 환호성을 질렀고, 우리 역시 같은 감동을 즐기고 있었다. 파리에서 할 수 있는 수많은 경험 중,지금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파리에 왔음을 실감하는 순간이 아닐까.

아주 오래 전의 에펠탑을 보는 것 같다.

  멀리서 에펠탑을 봤으니 이번엔 직접 올라 볼 차례였다. 다시 에펠탑으로 돌아와 전망대로 올라가는 표를 사기로 했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3층은 닫혀 있었고2층 전망대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다. 국제 학생증으로 6.4유로에 티켓을 산 후, 승강기를 타고 에펠탑에 올랐다. 겨울에서울타워를 오를 때 맞곤 하는 차가운 바람이 여기에도 있었다. 한 바퀴 쭉 돌아보았지만 에펠탑에서 보는 파리 시내 자체는 평범한느낌이었다. 알렉상드로 3세 다리나 사요 궁전에 모든 감흥을 다 놓고 와서 그랬을지 모른다. 그래도 사위를 돌아보며, 파리에온지 이틀 밖에 안됐으면서, 저기가 어디다 저기가 어디다 맞추는 놀이를 했다. 친척 동생과 서로 사진도 찍어줬는데 둘이라 같이찍지를 못하는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가족과 온 한 젊은 여성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나섰다. 먼저 부탁하지 않아도 친절을 베풀어주는 것에 조금 놀랐지만 에펠탑에 오르면 누구라도 호의를 갖게 될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흔들린 사진을 찍어줘서 좀안타깝긴 했지만.
  에펠탑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났는지 에펠탑은다시 조명을 반짝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웃음은 더 밝아 보였다. 다들 매서운 바람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돌아다닌 탓에 피곤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니 이 도시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여행의 추억은바로 이럴 때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에펠탑에선 모두가 웃는다. 누가 더 환한가 겨루듯이.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다 실수로 1층에 내려버려 고생을 좀 했다.한참을 기다려 지상에 도착, 내친 김에 1유로짜리 에펠탑 열쇠고리도 샀다. 아쉬웠지만 이제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귀환할시간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우리의 홈 Boucicaut 역(내리는 순간 정말 동네 지하철역에 도착한 기분이었다.)으로 돌아왔다.그러고 보니 오늘도 저녁을 안 먹었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이러니 체력이 남아나질 않지. 하지만 기분은 좀 내고 싶었기때문에 역 주변에 있던 Monoplex란 마트에서 1664란 맥주와 Desperado란 데낄라 베이스의 술을 사 왔다. 호텔로돌아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그날 하루 동안 만난 파리의 곳곳이 떠올랐다. 루브르, 파리의 거리와 교회들, 센 강과아름다운 다리. 마지막으로 에펠탑. 그리고 다짐했다. 천근처럼 느껴지는 이놈의 가방, 내일은 짐을 반으로 줄여버리겠다고.

 

PS.인터넷에서 어느 분이 추천하셨던 맥주 1664는 나쁘지 않았다. 배가 불러서 Desperado는 그 다음날 마셨는데 데낄라가들어갔다고 기대했건만 실망스러웠다. 오늘도 우리의 메뉴로 자리 잡은 설익은 밥과 라면에 맥주를 곁들이자 한결 맛이 좋았다.노곤한 몸이 쫙 펴지는 기분이었다. 파리에 왔으면 와인을 마셔야 하는 건데 웬 맥준가 싶었지만 좋은 건 좋은 거다. 게다가이날을 시작으로 우리는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다.


핑크색 캡션 사진은 F50fd으로
푸른색 캡션 사진은 Canon A-1 + superia 200으로 촬영했습니다.
F50fd 사진은 필름과 느낌을 맞추기 위해 크롭 및 보정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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