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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실제로 눈앞에서 볼 때가 제일 좋지만

사진에 담아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 가지 각도로 고정되고 색온도에 따라 색감이 틀어져

원본과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림을 잘 못 그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그림을 찍음으로써

위안을 삼자는 심산이기도 하지만.


안 루이 지로데 드 루시 트리오종,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18세기, 캔버스에 유채.


피그말리온 효과까진 아니어도

가까이에서 찍은 그림은 그 자체로 한 장의 사진을 그림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액자 주변의 실사조차도 누군가 붓으로 그려낸 듯한 결과물로 바뀐다.

그 비현실적인 느낌이 좋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노력에 비하면 셔터를 누르는 건 턱없이 쉬운 일이라

무임승차를 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몽마르트 언덕에선 건물의 벽이 유화 물감을 바른듯 진득한 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거리 전체가 거대한 회화로 보이기도 했다.

그림 속을 걷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드는 순간,

현재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이미지로 강렬하게 새겨진다.


궁금하다.

이 길에서 전지적인 제 삼자의 눈에 포착된 난

어떤 인상을 주는 소재일까?



모사가들은 모작을 그리고,

우리는 그 모작을 사고,

모작을 사는 우리는 세상이란 이름의 캔버스 위에 매분 매초 새로이 그려진다.

누군가 화상의 가게에서 액자를 향해 셔터를 누르고 있는 나를 사진으로 찍어줬다면

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 어떤지 조금은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창문 안을 들여다 보면 전혀 다른 세계가 보일 것 같다.

이곳의 화가와 화상들은 그렇게 기막힌 솜씨를 발휘해서 그림을 전시했다.


"비가 오면 어쩌려구?"

"괜찮아, 또 그리면 되잖아."

그런 대답이 들려온다.



그림 속 보도 블록의 색과

그림을 세워 놓은 현실의 보도 블록 색이 하나로 이어진다.

이곳과 저곳, 이 시대와 저 시대, 이 사람과 저 사람으로 연결된 통로가

길 위에, 아무렇게나 열려 있었다.


Leica Minilux

portra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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