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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D


:: 전야제

 

  종로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전집에 오늘따라 사람이 없다. 언제나 일 층은 물론 지하까지 만석이었는데 원하는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나와 Y는 가운데쯤에 자리를 잡고 D를 기다렸다. 평소 야근은 내 앞에 앉은 Y의 몫이지만, 여행 전날엔 불운의 여신이 항상 D의 편이 된다. 언제 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D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D는 홍콩 여행은 비행기를 타는 순간이 아니라 떠나기 전날 오후, 여기 서울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라 정의하곤 했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나와 Y의 상황에 입력한다면, 우린 지금 여행의 동반자가 짧은 휴가를 가는 와중에도 일거리를 잔뜩 챙겨 나온 꼴을 지켜보고 있는 셈이었다.

  작년 9월에 홍콩으로 뜨기 전에도 셋이 술을 마셨다. 그땐 나와 D만 숙취를 안고 비행기에 올랐지만 이번엔 다르다. 우리에겐 홍콩행 티켓 세 장이 있다. 두 사람이 워낙 극찬을 해놨기 때문에 Y도 홍콩에 대한 나름의 기대가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는 최적의 컨디션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여행을 앞둔 어느 날, Y는 나와 D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저번처럼 데낄라 한 병을 마시진 말자.”

  몇 개월 전, 공항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근질근질하게 나를 괴롭혔던 숙취를 떠올리며 나도 동의했다. 반드시 흥을 돋우지 않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떠나든, 홍콩은 (우리에게) 최고의 도시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적당히 하자.”

  그래서 대체재로 고른 게 막걸리였고, 저녁과 안주를 겸하자며 여기 전집에 찾아온 것이다. D에게 계속 문자를 보내는 동안 막걸리 한 병이 우리 테이블로 배달됐다. 아르바이트생은 토속적인 실내 장식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새파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가 돌아다닐 때마다 주점 안에 네온사인이 켜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을 하기 위해 부르는 소리를 전혀 듣질 못하는 걸로 그는 더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일단 가볍게 한잔해야지.”

  Y가 막걸리를 흔든 다음 뚜껑을 가볍게 톡톡 치며 말했다. 곧 안주도 나왔고,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는 막걸리를 따라 건배를 했다.

 

 

  D와 연락이 된 건 막걸리 두 병을 비우고, 순대 안주를 추가했을 즈음이었다. 한창 회사에 대한 곱고 아름답고 찬란한 폭언을 쏟아내고 있던 와중이라 Y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건 불리한 게임이었다. 이미 이직이 결정된 Y는 홀가분한 마음으로결론을 내릴 수 있었겠지만, 나는 여행이 끝나도 모든 게진행 중이자미결 사건으로 남을 터였다. 물질과 소유에 대한 부러움이 욕망의 언저리를 간지럽히는 데 그친다면, 어떤 능력, 상태, 태도에 대한 부러움은 내면 깊은 곳부터 발길질하며 나를 흔들어 놓는다. 술이 절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직장인들의 술자리에서 으레 터져 나오기 마련인) 불만 토로의 끝장을 마주할 즈음, 야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D가 그냥 집에 가겠다고, 내일 공항에서 보자며 불참을 통보했다. 나와 Y는 깜짝 놀랐다. 결국 우리와 D 사이에 거친 문장과 통화가 오고 가면서 그게 일시적인 앙탈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D도 술자리에 합류했다. 모두가 모였으니 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막걸리 각 한 병에 취할 리 없는 우리지만 달아오른 열기에 최대한 빨리 D를 편승시키기 위해 연거푸 술잔을 뜨기 시작했다. 아무리 도수가 높지 않다고 하더라도 전통주의 위력을 무시해선 안 됐건만. 성급한 처사였음을 깨닫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탁자 위에 빈 병이 쌓이고 배가 불러서 막걸리가 더는 들어가지 않게 됐을 때 자리를 옮겨 2차를 갔다. 취하진 않았다. 그저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처럼 나는 들떴다. 대도시에서 태어나 계속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고향이란 단어는 굉장히 한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도시 전체를 고향이라 생각할 수도 없으며 그 비슷한 게 있다면 이십 년 가까이 산 동네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서울시 전체도 아니고 그 안에 있는 사백칠십이 개의 동 중 한 곳에 고향이란 딱지를 붙여야 한다니 꽤 손해 보는 기분이지만.

  그런데 지금, 한 번밖에 가보지 않은 도시에 향수를 느낀다. 며칠 머물지도 않았고 아는 바도 거의 없는 곳이 그리워진다. 여행 전날의 기대와 흥분 때문이겠거니 했지만, 마침내 돌아간다는 성취감과 후련함은 분명 실재했다.

  술을 병째 시켜 마시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가는 바에 들러 진 토닉을 시켰다. 저번 여행을 장식했던 칵테일이 이번에도 우리를 북돋워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환호했다. 내일 아침 눈을 뜬 후 가야 할 곳이 사무실이 아니라 공항이라니! 여행은 떠나기 전이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는 주장에 우리 셋은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D는 이곳을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좋다고 했고, Y는 홍콩땅을 밟자마자 정신줄을 놓겠노라 호언장담했다. 나는, 앞서 말했듯이, 고향에 돌아가는 듯한 기쁨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주문하는 진 토닉의 잔 수가 늘어났다. 우리가 신청한 노래가 꽤 많이 스피커를 울렸다. 재떨이에 차곡차곡 꽁초가 쌓여갔다.

  “택시도 타지 않겠어. 딱 지하철 타고 가는 거야!”

  잔을 부딪치며 스스로 절제의 미를 발휘하고 있다는 자랑스러움을 맛봤다. 그렇다. 오늘의 전야제는 분명 내일의 여행을 위한 훌륭한 애피타이저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처음보다 더 완벽하게 진행될 것이다. 모든 것이.

 

 

:: 초죽음

 

  이루 말할 수 없이 강렬한 두통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제시간에 일어나긴 했지만 몸은 여전히 술독에 빠져있었다. , 도대체 이건 무슨 조화인가. 막걸리와 진 토닉의 화합이 이런 재앙을 부른단 말인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샤워를 한 후 남은 짐을 꾸렸다. 다들 잘 일어났나 문자를 보내니 역시나 제정신인 녀석이 없었다.

  "죽겠다."

  "뒈지겠어."

  대개 답이 이랬다.

  밖에는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었다. 공항 리무진과 거의 동시에 정류장에 도착해서 헐레벌떡 캐리어를 실었다. 몸은 축축하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버스는 거의 만원이었다.

  앉자마자 잠이 들었지만 숙취를 밀어내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주위가 부산스러워 눈을 떠보니 어느새 공항이었고, 비는 많이 그쳤으나 몸 상태는 그대로였다. 뺨을 비비는 차가운 새벽 공기도, 한 개비의 담배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흡연 구역에서 공항 안쪽을 바라봤다. 터미널은 벌써 혼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카트와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이들은 한결같이 활기차 보였다. 어떤 외국인들은 벤치에 누워 선잠을 자고 있었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관광객은 단체로 체크인을 하느라 법석을 떨고 있었다. 새벽의 공항을 떠올리면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또각또각 거리는 직원의 하이힐 소리가 들릴 만큼 인적이 드문, 찬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적막한 터미널이 연상되곤 한다. 그런데 실상은 지금껏 보아왔던 인천 공항 중 가장 낭만적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니, 어쩌면 숙취 때문에 모든 사물과 배경이 지옥에 속한 피조물처럼 보여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D와 Y에게 연락이 왔다. 나처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담배를 피우는 게 습관인 D를 마중 나가며 Y와 통화를 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들어오긴 들어왔다는데 출구나 카운터 번호를 알려줘도 찾질 못하고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 "게이트(?) 앞이야.", "가운데 쯤인 거 같아.", "죽을 것 같아." 등등 - 자기가 있는 곳을 설명했다. Y가 공항이 처음이라거나 익숙하지 않아서는 절대 아니다. 채 빠지지 않은 술기운이 그를 조종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전화를 끊고 동시에 D의 얼굴을 보니 알코올의 꼭두각시가 여기도 하나 있었다. 물론 그를 보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화장실에 갔다 나오겠다는 Y의 문자에 우선 D를 끌고 약국으로 향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약이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숙취 해소제 좀 주시겠어요? 세 개요.”

  공항 약국에서 상비약도 아니고 숙취 해소제를 요구하는 건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약사는 이런 손님이 한둘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약을 찾아 내어주었다.

  “술 드셨으니까 진통제는 못 드리고 드링크에 이 앰풀을 넣어서 드세요.”

  “얼마예요?

  “삼만 원입니다.”

  ? 삼만 원치 동전이 든 주머니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지만 일단 카드는 꺼냈다. 무지막지하게 비쌌으나 가격에 놀라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했다. 아무리 공항이라지만 드링크에 앰풀 한 세트가 만 원이라니.

  효과가 없기만 해보라며 벤치에 앉아 복용을 시작한다. 드링크 뚜껑을 따고 조그만 주황색 앰플을 꺾어 붓는다. 환각제를 타 마시는 모양새에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됐는데, 지금껏 본 모습 중 가장 초췌한 행색의 Y가 시야에 걸렸다. 캐리어를 질질 끌며 다가오는 그는 꼭두각시의 왕, 숙취의 프리마돈나였다. 그 와중에도 그의 손엔 어제 약속한 김밥 여섯 줄이 담긴 봉지가 들려있었다. 여태껏 보여주지 않았던 의지에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지만 나도 드링크와 앰풀을 건넬 힘밖에는 없었다.

 

 

  캐리어에 몸을 기댄 채로 체크인 줄을 기다리고, 기운 없는 몸짓으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여 마침내 면세구역으로 나왔다. 그 와중에도 우린 주류 매장에 들러 저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봄베이 사파이어를 두 병 샀다. 이걸 두 병이나 산 이유는 일행 한 명이 늘어서가 아니다.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주정뱅이 셋 모두가 각 병이 일 리터가 아닌 칠백오십 밀리리터짜리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계산대 앞에서이제 일 리터짜리는 안 파나 봐.”라는 헛소리마저 했으니, 계산하던 여자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런데 아무 말도 해주지 않다니!) 아니,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했기 때문에 그녀조차 이게 대자라는 생각을 못했을지 모른다. 가방에 알코올 도수 사십칠 도짜리 드라이 진을 이 리터나 채웠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이보다 한참 후, 호텔방에 들어가서다.

  여행에 대한 기대와 감흥이 발기부전 환자처럼 침묵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D Y는 딴 일을 보게 하고 난 부탁받은 면세품을 찾으러 면세품 인도장에 들렀는데 대기열이 팔십여 명에 이르렀다. 게다가 그중 대부분은 중국 관광객들이었다! 한국에 이렇게 살 게 많았단 말인가? 그들은 시내 면세점을 통째로 털어온 게 분명했다. 나로선 하나는커녕 반의반 개도 사기 어려운 브랜드의 쇼핑백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남자를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렁거림과 함께) 치밀어 오르는 혐오감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여러 면세점 중 유독 한 곳만 사람이 몰려있는 걸 보며 여행사에 어지간히 커미션을 뿌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탑승 마감 시간이 십 분도 채 남지 않았을 때야 나의 차례가 돌아왔으니(그것도 매니저에게 탑승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도움을 청해서), 내가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쇼핑백을 들고 뛰는 것밖에 없었다.

  헐레벌떡 기내로 들어와 숨을 골랐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약간 잠잠해지나 싶던 술기운이 다시 치밀어 오르는데 무엇보다 두통이 너무 심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막걸리와 진토닉은 나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던 것일까.




  D는 그나마 회복을 하는 모양이었지만 Y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눈을 뜨지도 못하고 잠들지도 못하는 고통의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만약 이것이 큰돈을 들여 계획한 여행만 아니었다면 당장 비행기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갈 거란 생각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있었다. 명석한 두뇌로 나와 D의 패턴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 전날 그렇게 술을 마시지 말자고 말렸던 것인데 결국 이런 꼬락서니가 돼 버렸다. 물론 나와 D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저번 홍콩 여행에 자신이 불참한 걸 너무나 아쉬워했었다. 얼마나 아쉬워하는지 다음엔 꼭 같이 가자는 말로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두 번째 여행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나와 D가 최고의 여행을 위한 최고의 가이드가 되어 최고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는 걸 안다.

  사실이 그랬다. 나와 D가 여행은 출발하기 전날부터 시작된다고 우겼던 이유는 잔뜩 흥이 올랐던 첫 전야제가 본 행사를 뜨겁게 달궈주는 역할을 제대로 해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일정의 반을 취해 있었고, 뜨거운 밤거리에서 흥청거리며 무한한 자유를 맛봤다. 공기에서 좌절이 씹힐 만큼 답답한 사무실과는 정반대 극에 있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첫 번째 여행의 장점을 살리고 아쉬움은 보완하여 더 완벽한(세상에 완벽한 여행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삼박사일을 만들고자 했다. 특히 좋았던 곳을 엄선해 여정의 큰 틀을 짜고, 호텔은 좀 더 찾기 쉬운 곳에 잡았으며(비용도 더 저렴해 졌다), 마카오라는 새로운 목적지도 추가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강렬한 숙취가 난입하여 우리 셋을 녹다운시켜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와 D는 여행 중엔 한없이 긍정적으로 변한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함께 하는 여행이 아닌가. 우리는 이 정도 숙취는 비행기 안에서 극복하여 곧 회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하여 귀 안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는 와중에도 만 원짜리 약이 플라시보 효과를 발휘하길 기대하며 눈을 감았다. 우린 다시 가고 싶었던 곳을 다시 갈 수 있게 만들었다. 시간과 돈과 의무를 떠나서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앞뒤 재지 않고 이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숙취 따위가 무슨 재간으로 우리를 방해할 수 있단 말인가. 



:: 도착



  커다란 유리 상자 같은 도착 터미널에 내렸다. 공항의 중앙 터미널로 가기 위해 중국 중학생 무리 사이에 껴 셔틀버스를 기다린다. 숙취는 우리와의 싸움에서 놀라울 정도로 선방하고 있었다. 알량한 재미를 주기 위해 승리의 의지를 다짐하자마자 다음 단락에서 바로 꼬리 내리는 문장을 써놓았지만, 이게 그저 기교에 불과한 건 아니다. 의지가 있으면 결국 몸은 따라갈 거라는 믿음과 달리 비행이 끝나고 나서도 술이 전혀 깨질 않았다. 쉬지 않고 이어지던 두통은 간헐적인 발작으로 바뀌었는데, 그 주기가 지나치게 짧아 오히려 더 짜증이 났다. 거기에 아이들의 수다 소리는 망치가 되어 뇌에 못질을 하고 있었다. 세련된 타일 바닥에 주저앉아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여정과 상황을 기록해야 할 화자가 이 모양이었으니 이야기도 드문드문 이어진다. 입국 심사대가 있는 터미널은 홍콩으로 들어가려는 사람과 비행기 환승을 기다리는 사람, 하는 일 없이 면세점을 구경하거나 점심을 챙겨 먹는 사람,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사람과 아예 바닥에 앉아 카드를 치고 있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저번 방문을 통해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줄이 상당히 길다는 걸 알고 있던 우리는 일부러 흡연실을 찾고 화장실을 이용한 후 물을 사 마시고 사진까지 찍으며 늑장을 부렸다. 그런데 막 외국에 도착한 사람은 으레 급하게 입국 심사를 받고 얼른 집을 챙겨 나갈 거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실제론 우리 같은 사람이 태반이었다. 입국 심사대의 줄은 여전히 길었는데, 심지어 같은 비행기를 탄 사람들이 바로 앞에 서 있거나 우리 뒤로 줄을 서기까지 했다. 도대체 다들 어딜 갔다 온 거야? 담배를 피웠나? 화장실이 급했나? 아니면 공항 패션이라도 완성하고 왔나?



  줄을 오래서지 않으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다행히 짐은 모두 나와 있었다. 역시 아무도 우릴 반겨주지 않는 도착장 로비로 나오니 불과 몇 개월 전에도 보았던 첵랍콕 공항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시감이 느껴질 만큼 변한 게 없었다. 인천 공항을 연상케 하는 격자형 창도, 아무렇지 않게 반소매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한자와 영어가 병기된 전광판도 모두 그대로였다. D와 나는 감격의 시선을 교환했지만 Y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마 그의 정신은 아직 비행기 안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었다.

  그를 일깨우기 위해 홍콩의 만능 교통카드인 옥토퍼스 카드를 사러 보내고 나와 D는 맥도널드로 향했다. 들뜨려고 애쓰는 마음과 달리 여전히 심연에서 헤엄치고 있는 몸을 위해 달착지근한 음료가 필요했다.

  나와 D는 지난 여행 때 아주 효율적인 여행 경비 결제 시스템을 운영했었다. 돈은 각자 가지고 있되, 필요할 때마다 내가 지갑을 열며 일이백 홍콩달러씩 충전을 요구하면 D가 바로 지폐를 꽂아줘서 내가 한꺼번에 결제하는 것이다. 이러면 한 사람이 전체 회비를 들고 다니느라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고, 반대로 건건이 갹출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일도 없어진다. 그리고 여행 중 먹고 마시는 모든 비용은 똑같이 낸다는 규칙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누가 조금 비싼 걸 먹고 누가 조금 싼 걸 먹는지 따질 필요가 없다. 최대한 알뜰하게 다니긴 해야겠지만 매번 환율을 계산하며 메뉴판의 모든 음식을 한국 돈으로 환산하는 구두쇠 정신까진 가지 말자는 의도였다. 우리에게 식당과 술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우리 모두에게 비싼 곳과 우리 모두에게 저렴한 곳. 어디에 들어갈지는 그때의 기분에 따라 달라졌다.

  어쨌든 회비 충전 시스템을 재가동시켜 석 잔의 아이스 초콜릿 음료를 산 우리는 Y에게 돌아왔다. 그도 막 카드를 받아 돌아선 순간이었다. 그가 지금 구매했고, 나와 D는 저번에 사뒀던 옥토퍼스 카드는 한국의 교통 카드처럼 충전식이다. 이 한 장의 카드엔 홍콩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즉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그들의 정신이 담겨있다. 그래서 이름도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팔달통八達通이다. 사실 난 지하철이나 버스비를 지불하는 용도 외엔 사용해 보지 않았지만 뭐 어떠랴, 홍콩의 정신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앞으로 진격하자. 그러나 잠깐. 시내로 입성하기 전 흡연으로써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는 의식을 치러야 했다.



  , 홍콩이여. 너에게도 이런 계절이 있었단 말인가. 나와 D는 작년과 똑같은 장소에서 담뱃불을 붙이고 똑같은 재떨이에 재를 털고 있었지만(Y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불어오는 바람은 생소하기만 했다. 가을을 연상케 하는 선선한 날씨는 우리가 최적의 시기에 홍콩에 왔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이월 초. 한국은 죽을 만큼 추워서 나돌아다니기도 두려운 계절인 반면 이곳은 야외 활동을 하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을 구축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구월의 홍콩은 너무 더웠다. 한국의 여름보다 훨씬 더 끈적거리고 훨씬 더 집요했던 더위를 떠올려 보면 이번 일정은 후회하려야 후회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도시의 열기에 데여 기진맥진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라! 우리는 지치지 않고 달리는 증기 기관차처럼 정해지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돌진할 것이다. 이미 홍콩을 한 번 왔다간 경험자로서 허무한 실수는 줄이고 기쁨은 두 배로 키울 것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진 그늘에서 난 기대했던 대로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함을 만끽했다. 반대편 거리엔 시내로 가는 버스 정류장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머리 위로는 야자수가 흔들린다. 잠시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훅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금세 사라졌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조건이 성공적인 여행을 예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또 무슨 말이 필요하랴. 잘했다. 이렇게 다시 오길 잘했다.

  그러나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여전히 주기적인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으며 숙취는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가장 강한 적은 자기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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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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