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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갔는데 에펠탑을 못 보고 왔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이 좁은 도시 안에선 어디를 가든 기어코 고개를 내밀어 자신을 드러낸 에펠탑을 볼 수 있으니까.

사실 한국에서도 너무 쉽게 에펠탑의 모형이나 사진, 그림을 볼 수 있으니

이만큼 친숙한 파리의 상징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파리를 다녀온 여행담에서 에펠탑은 그리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일단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봤을 게 분명한데다가

가까이 가면 너무 커서 제대로 보이지 않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전경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으며,

매 정각 깜빡이는 조명도 몇 번 보다 보면 질리게 마련이니까.

"에펠탑 진짜 크고 예쁘더라."

그 이상의 감상을 우리는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인정해야겠다.

사진만큼은 정말 많이 찍게 된다고.

굳이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인다고 소문난 장소를 찾아가

찍었던 걸 찍고 또 찍고 하니까.


이럴 때 에펠탑이 피사체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하는 힘은

날씨, 하늘, 그리고 탑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선생님과 함께 소풍을 나온 아이들은

우리가 서울대공원에 가서 김밥 도시락을 흔들며 동물을 구경할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야호, 내가 파리에 있다네!"

에펠탑은 이렇게 한껏 들뜨게 하는 역할보단

샌드위치를 씹으며 하나의 배경으로 보고 있기에 좋은,

초점 없이 그냥 눈을 두기에 좋은,

그런 친근한 구조물이 될 때가 더 많다.


내가 샤요 궁 앞에서 본 것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컷은

동양에서, 아니, 한국에서 온 게 분명한 젊은 여자가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뚫어지게 에펠탑을 바라보던 장면이다.

누가 봐도 그녀가 애써 무언가를 떠올리거나 반대로 잊으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파리에서 오래 산 외국인들에게도 에펠탑은 특별한 의미가 되어주곤 한다.

십오 년 동안 파리에서 지낸 누군가는 언젠가부터(1999년 12월 31일 처음으로 조명쇼가 펼쳐졌다.) 에펠탑이 반짝이는 걸 보면서

그 아름다움이 이 도시에 사는 유일한 이유라는 걸 깨달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수천 번을 본 지금도 정각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나 역시 파리에 처음 갔을 때, 진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에 오긴 온 건가 얼떨떨하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기분을 정리해 준 게 바로 에펠탑의 조명쇼였다.

나는 깜빡이는 전등을 보며 비로소 내가 파리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자, 리프트를 타고 오르자.

가방은 조심하고, 시선은 호기심을 가득 채워 이곳저곳으로.



에펠탑에 올라도 딱히 진풍경이 펼쳐지는 건 아니다.

고개를 들면 철로 만들어진 사다리나, 시냅스나, 미로나 여튼 그런 형상의 복잡한 구조물이 아득하고,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오는 바깥으로는 둥글게 테두리가 쳐진 시내의 조용한 파노라마가 펼쳐질 뿐이다.


그럼에도 여기에 올라야 하는 이유는

보기만 해서는 온전히 가슴에 품을 수 없을 만큼 에펠탑이 거대하기 때문일까?

어쩌면 꼭 자기 발로 밟아 봐야만 어떤 장소를 진정으로 방문한 것이고, 나아가 이해했다고까지 생각돼서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에베레스트 산을 보기만 하고 그것을 정복했다고 말한 적이 없듯이.



아직 겨울의 관할권에 있는 바람은 차고 매섭다.

그래도 두툼한 모자를 눌러쓰고 난간에 서야 한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바로 이것, 이 장면을 위해서.

나처럼 미숙한 여행자의 입장에서

에펠탑은 여전히 파리와 동의어다.



Leica Minilux

portra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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