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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int-Michel 역 앞에 다시 섰을 때 나는 차라리 울고 싶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오르내리느라 배가 무지막지하게 고팠고, 비에 젖어 축 가라앉은 옷 때문에 몸은 으슬으슬했기 때문이다. 일단 뭣 좀 먹자는 심정으로 정처 없이 남서쪽으로 걸었다. Saint-Michel 역에서 Saint Germain des prés 역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좁은 골목길엔 정말 수 없이 많은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곳도 많았는데 한쪽 테라스에 앉은 사람이 반대편 테라스의 손님에게 말을 걸 수도 있을 정도였다. 카페의 조명은 습기에 찬 대기 속에서 차분하고 농도가 짙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을 오랫동안 쬐며 걷고 있자니 점점 현실감각이 떨어졌다. 그 외에도 서점, 꽃집, 식재료를 파는 상점들이 있었지만 몽롱한 분위기는 매한가지였다. 우리가 지금 어느께에 와있는지 모호해진 건 오래전 일이었고, 파리는 우리를 완전히 집어 삼켰다.
  우연히 '카르푸'를 찾아 1.3유로짜리 냉장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한국에선 완전히 철수한 곳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시간은 오후 3시 정도. 사실 샌드위치는 요깃거리였는데, 그걸 먹고 나자 갑자기 식욕이 사라졌다. 이렇게 식비를 아끼는 여행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쳤던 Odeon 역으로 되돌아와 다른 의미로 '꿈' 같았던 도보 탐사를 마치고 지하철을 탔다. 파리 여행에서 가장 고대하던 몽마르트 언덕으로 갈 시간이었다.

비오는 거리

  마르트 언덕과 가까운 지하철역은 여러 군데가 있지만 우리가 선택한 곳은 메트로 12호선 Abbesses 역이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자, 노트르담 대성당 나선형 계단의 악몽이 되살아나면서도 벽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청승맞은 날씨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킨 채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이젠 날씨 이야기도 지겨우니 여기서 접기로 하고, 일단 몽마르트 언덕을 올랐다. Abbesses 역에서 출발하면 좌측으로 우회하긴 하지만 그 유명한 '흑인 팔찌단'도 안 마주치고 조용하게 오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표지판이 없어 부실한 방향감각에 몸을 맡겨야 했으나 무사히 테르트르 광장에 닿았다. 사람이 별로 없어 그럴까. 그날의 예술(?)을 접을까 말까 고민하는 화가들을 볼 수 있다는 것 말고는 솔직히 별다른 게 없었다. 전날 마레 지구보단 마들렌 거리에서 파리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몇 시간 전에 헤맸던 시테섬 남부의 거리가 더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몽마르트 언덕을 오르며

  광장을 지나 드디어, 꿈에 그리던(?) 사크레 쾨르 대성당을 만났다. 아찔한 계단 언덕도, 모스크 같이 생긴 돔 형태의 성당도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여기 이 자리에 있었다.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기 전에 일단 대성당에 들렀다. 습도가 높은 내부엔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불케 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관리인이라고 불러야 어울릴 것 같은 몇몇 이들이 끊임없이 방문객들에게 주의를 줄 정도였다. 특히 한 남자는 굉장히 단호한 몸짓으로 사람들의 만행을 저지시켰는데 모든 제스처에 어찌나 절도가 넘치던지 연극하는 후배들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을 정도였다. 모자 벗으세요(이 말은 내가 들었고, 후드를 내리는데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사진 찍지 마세요, 제발 조용히 하세요. 그는 단 한 마디의 불어도 입에 올리지 않고 가장 강력하게 이런 말들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번잡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아 잠시 자리에 앉아 내부를 감상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솔직히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며 우리와 장난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비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제대로 담아주지 못해 미안해.

  이리저리 대성당을 카메라에 담고 언덕 위에 서서 경치를 감상했다. 지대가 높고 건물들과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라 그런지 여기서 바라보는 파리 시내는 훨씬 광활해 보였다. 가슴이 탁 트이며 비가 온다 어쩐다 궁시렁 거리느라 아까운 시간과 감정을 낭비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비가 오든 햇살이 내려 쬐든 나는 몽마르트 언덕에 와있지 않은가. 언덕에 앉거나 드러누워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볼 수 없었던 건 아쉬운 일이었지만 언젠가 또 오면 그 때 보면 되는 것. 게다가 우산을 쓰고 종종 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내리는 이들이 있으니, 여유로운 풍경화 대신 운치 있는 영화를 보았다고 생각하면 좋을 일이었다.

이렇게 내려다보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이야 어쨌든, 패딩 안쪽으로 비가 스며들며 특유의 냄새까지 피어오르는 상황이라 이젠 정말 우산을 사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려가기가 아쉬워 자꾸 걸음이 더뎌졌다. 내려가다 멈추고 내려가다 멈추고를 반복하다가 끝내 마지막 계단을 밟고 말았다. 중간에 '흑인 팔찌단'을 만났는데 인터넷의 많은 가르침대로 웃으며 그냥 지나치는 게 최고였다. 팔찌단에 붙잡힌 한 외국인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실팔찌를 매주는 수고에 비해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을 요구하리라는 걸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온통 Paris 라고 쓰여 있는 4유로짜리 우산을 하나 사고, 가이드북을 펼쳤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몽마르트 언덕을 떠나기로 했기 때문에 이후의 목적지를 그 자리에서 정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한 군데 중요한 곳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오르쉐 미술관'이었다. 오후 5시를 한참 넘긴 시각이었으며, 주변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고, 하도 비를 맞아 우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관람 시간이 딱 맞아!"하면서 지하철을 타러 갔다.


  비가 안 된 자의 최후가 거기에 있었다. 여섯 번의 종이 울릴 시간에 오르쉐 미술관에 도착한 우리는 로비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로 인해 당황한 상태였다. 그 누구도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없었다. 입구는 여러 곳인 것 같은데 막상 입장은 불가능해서 스태프 중 한 사람을 붙잡고 어디로 들어갈 수 있냐고 물었다.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관람 시간이 끝났다고 얘기했다. 뭐? 끝났다고? 급하게 가이드 북을 펼치니 중대한 착오가 하나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오르쉐 미술관은 월요일이 휴관이고 보통 오후 6시까지만 개장하며, 오로지 '목요일'에만 9시 45분까지 관람할 수 있었다. '목요일' 말이다. le jeudi 라고! 오늘은 토요일이잖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주말에 야간 관람을 할 수 있다고 읽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다음 날은 일찍 공항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오르쉐 미술관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그럼 나의 모네는? 유명한 작품들이 많지만 꼭 보고 싶었던 모네의 작품 몇 점이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안일한 계획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다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러니 여행은 여러모로 준비를 잘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칫솔이나 예쁜 모자를 집에 두고 비행기에 탔다면 그 정도는 애교라고 생각하자. 최소한 무엇을 언제 어디서 볼 수 있는지를 착각하는 것보단 훨씬 귀여운 실수니까 말이다. 하늘도 우리의 멍청함을 비웃는지 갑자기 폭우를 쏟고 있었다. 하루 중 가장 처절하게 내리는 비였다. 하지만 의외로 낙관적인 마인드를 가진 나는, 내가 참 바보 같다고 느끼면서도 괜찮다, 괜찮다 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비를 가릴 우산이 있었고, 정말 파리에 다시 와야 할 이유도 얻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서 누군가와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파리까지 가서 모네의 그림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림에 별로 관심이 없나 봅니다, 아뇨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특히 모네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럼 도대체 왜 거기까지 가서 그런 멍청한 짓을 했습니까, 나중에 또 파리에 가기 위해서지요! 그건 더 멍청한 생각이네요, 라며 상대방은 고개를 젓겠지만.

  다시 거리로 나왔다. 어두컴컴한 오르쉐 주변을 빙빙 도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해도 저물었는데 뭘 보러 가야하고, 뭘 해야 하는 걸까. 새하얀 침대와 소파, 아이들을 위한 폭신한 쿠션을 파는 커다란 가구점을 지났다. 쇼윈도 너머의 실내가 어찌나 따뜻하게 보이던지 그 안에 들어가 드러눕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십 여분 동안 빗속을 방황하다 밤에 할 만한 건 야경을 보는 것 밖에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 날 갔었지만 전망대에 오르진 않았던 개선문을 다시 방문하기로 한 것도 그 때였다.
  목적지가 생기자 갑자기 활력이 솟았다. 지하철에 올라 Concorde 역에 내려 개선문 쪽으로 걸었다. 첫날과 반대의 코스였는데 이러는 편이 경치가 훨씬 좋았다. 중간에 배가 고파 Quick 버거도 찾았다. 샹젤리제 거리에만 두 군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들어가 세트 메뉴를 하나 주문하고 인터넷에 본 아주 훌륭한 팁대로 국제 학생증을 제시했다. 그러자 같은 버거를 하나 더! 줬다. 이 얼마나 돈 없는 여행자에게 힘이 되는 친절인가! 우리 둘 다 그 배려를 느껴보겠다고 각자 버거 하나씩을 더 받고야 마는 미련을 보였지만 누릴 수 있는 건 누리는 게 좋은 법. 나는 소로 생각되는 고기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였고, 친척 동생은 치킨이 들어간 버거였다. 좀 느끼했고 크기도 어마어마해서 버거 하나랑 감자튀김을 겨우겨우 소화시키고 덤으로 받은 한 개는 챙겨 가기로 했다. 역시 햄버거는 맥도날드나 버거킹이 최고야, 하면서.

크다 크다 크다!

  포만감을 느껴서 그런가 갑자기 마음이 울렁거렸다. 하늘도 울다 울다 지쳤는지 날씨는 잠잠했다. 비에 젖은 거리엔 온통 노란 불빛이 아른거렸고, 물웅덩이 위로 샹젤리제 거리가 복사되어 모든 게 두 배로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땐 아쉬웠던 무언가가 지금은 가득 차 있었다. 그렇다. 비가 그치고 난 도시의 얼굴은 지극히 아름답다. 높은 건물이 가득 메운 서울 한복판도 이럴 때면 누구나 시를 짓고 싶어질 만큼 낭만적으로 변하는 법이다. 하물며 여기는 낭만의 도시라는 파리, 그곳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거리가 아닌가. 모든 사람이 노래를 부를 것 같고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것 같은, 마법 같은 밤이었다.

비에 젖은 샹젤리제 거리

  지하 통로를 지나 개선문 아래 섰다. 화각이 부족한 렌즈라 그 몸집을 모두 담지 못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또 한 번 뮤지엄 패스를 이용해 전망대로 향했다. 가장 효율적으로 공간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가장 지독하게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나선형 계단이 이곳에도 있었다. 중간에 전시장 같은 곳을 지나 마침내 옥상에 올랐다. 고된 하루를 모두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아찔하다

  샤를 드 골 광장에 있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도로가 방사형으로 뻗어있다. 그 모두를 두루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개선문 전망대다. 전날 에펠탑에 올라 보았던 야경이 썩 훌륭했던 건 아니었기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곳의 경치는 예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마치 나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 같은 파리의 열 두 개 도로는 지금까지 이 땅에서 만난 풍경 중 가장 매혹적인 모습으로 나를 사로잡았다(이 느낌은 매번 갱신되다가 여기서 종지부를 찍었다). 어떤 녀석은 작고 소박했고, 어떤 녀석은 크고 화려했다. 저마다 분위기가 달랐고 오고가는 차량의 수도 차이가 있어서 사방을 둘러 볼 때마다 다채로운 빛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보는 순간 누구나 이름을 맞힐 수 있는 길, 바로 샹젤리제 거리가 압권이었다. 저렇게 넓은 도로였던가 싶기도 하고, 저렇게 화려하게 빛나는 곳이었나 싶기도 했다. 점점이 움직이는 사람들, 끝없이 이어지는 자동차의 라이트, 휙 하고 뛰어들면 풍덩 소리를 낼 것 같은 비의 얼룩. 그리고 저 끝에 하얗게 고개를 내민 관람차까지.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은 더 강한 목소리로 생각했다. 정말, 이곳에 오길 잘했어. 내가 아는 모두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를 비롯해 지금 사랑에 빠져 있는 모두를, 아니 사랑에 빠지려는 모두를 여기로 옮겨 놓고 싶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파리의 야경에 그들 모두가 강렬한 색채를 내뿜을 테고, 다시 그 빛을 파리 어디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빛의 길

  또 나의 마음을 움직인 건 안개에 반쯤 가려진 에펠탑이었다. 에펠탑은 다락방에 올라가려는 아이처럼 구름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구름의 바다를 보고 싶었던 걸까? 밀도 높은 수증기 속에서 묵은 떼를 말끔히 씻어내는 중일까? 거기다가 정각이 되어 조명쇼까지 겹쳐졌을 때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사진으로 남겼지만 그것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당신은 직접 이 광경을 봤어야 한다. 영화 '콘택트'에서 베가성을 본 엘리가 이렇게 말했듯이.
  "시인이 왔어야 했어요."

렌즈와 필름으로는 다 표현 못 할, 그런 장면이 있다.


  다시 올 테니 그 때 또 만나, 라는 말을 던지고 정말 아쉬운 발걸음을 뗐다. 감격한 우리는 내친 김에 바토 무슈를 타기로 했다. 파리의 마지막 밤을 유람선을 타며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착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10유로에 티켓을 사서 우리도 그 행렬에 꼈다. 외국인 단체 관광객도 여럿 보였는데 독일에서 온 사람들이 제일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 힘 있는 억양 속에서 밤 배를 기다리는 흥분이 느껴졌다.
  20여 분 정도 기다렸다가 강한 기름 냄새를 풍기며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유람선에 뛰어 올랐다. 연료의 향기가 밤공기를 매캐하게 적셨다. 어릴 적 교실에 있던 석유난로가 떠오르며 향수를 느꼈다. 유람선 1층은 두 개의 커다란 관람석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우린 사람이 많은 앞쪽을 피해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진동과 함께 드디어 배가 출발하자 사람들의 기대가 더욱 커졌다. 독일 관광객들은 와인을 꺼내 마시며 왁자지껄 출항을 기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에 속도가 붙었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느새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일까? 유리창 너머로도 센 강의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고 함께 온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 자체가 더 소중한 모양이었다. 비바람을 맞으며 훤히 트인 2층으로 올라가는 우리가 약간 처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누군가는 추위를 잊었다.

  주요 관광지를 지날 때마다 스피커에선 다양한 언어로 해설이 흘러나왔다. 우리말도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우선순위엔 끼지 못해 그 장소를 벗어나야만 들을 수 있다는 게 아쉬웠지만 말이다. 하지만 강 양쪽으로 우리가 지나온 여정을 돌아보는 건 무척 의미 있는 일이었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부르봉 궁전, 콩코르드 광장, 오르쉐, 루브르, 시테섬과 노트르담, 생 루이 섬, 시청사, 한 바퀴 돌아선 에펠탑까지. 우리의 발자취가 닿았던 곳에서 그렇지 못했던 곳까지, 강을 따라 파리라는 이름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중간 중간 강변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나 선상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클럽처럼 배 안에서 춤을 추며 파티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유람선이 지나갈 때마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리가 그에 답할 때마다 강 위에서의 시간이 더욱 농밀하게 완성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매끈한 정장을 차려입고 인사를 건네던 남자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손을 흔드는 대신 파티에서 들고 나온 와인잔을 유람선을 향해 들어 올렸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과의 짧은 만남 속에서 자유로움, 아늑함,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의 시간이 주는 편안함과 즐거움,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파리의 마지막 날에 어울리는, 꽤 훌륭한 마무리가 아닐까.

마지막 밤은 바토 무슈와 함께.


PS. 식으면, 햄버거는 더 이상 햄버거가 아니다. 대충 포개 놓은 빵과 패티와 야채와 소스에 불과할 뿐이다. 전날 사 둔 데스페라도란 술도 썩 흡족하지 못했다. 그래도 야식으로선, 데워지다만 햇반 보단 훨씬 먹을만했다.
  짐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이제 파리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아쉬웠다. 친척 동생도 마찬가진지 아직 여행의 반도 안 끝났는데 꼭 다시 와야겠다고 되풀이 했다. 그 짧은 새에 벌써 여기와 정든 것일까. 봉주르와 메르시, 익스큐제 무아가 이제 막 입에 붙은 것 같은데 내일은 또 완전히 다른 말을 쓰는 도시로 가야한다니. 힘들었지만 파리가 정말 좋았다고, 앞으로도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핑크색 캡션 사진은 F50fd으로
푸른색 캡션 사진은 Canon A-1 + superia 200으로 촬영했습니다.
F50fd 사진은 필름과 느낌을 맞추기 위해 크롭 및 보정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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