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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찬

 

  홍콩의 구정인 춘절春節 맞아 랑함 플레이스의 푸드코트엔 분홍색 꽃과 조명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뱀이 장식되어 있었다. 홍콩은 포린 수도원이나 웡타이신 사원 같은 곳이 아니면 동양적인 특색을 느끼기 힘든 곳이다.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도시를 개발하고자 하는 방향이 서양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화는 유럽을, 경제는 북미를. 하긴 우리가 사는 도시 역시 홍콩 못지않은 해바라기 기질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불교와 도교, 유교 문화를 기반으로 하며 동북아시아라는 지리적 근접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문화권에선 찾아볼 수 없는 친근함을 느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간 미국인은 왜 뱀이 2013년을 상징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분홍색 동물도 그저오리엔탈한 장식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와 커다란 뱀 사이엔 문화적, 정서적 공백이 놓여 있다. 우리가 무엇이든 크게 만들고 보는 중화권의 씀씀이에 놀라기는 해도("역시 대륙 스케일!") 올해와 뱀을 연관 짓는 관습 정도는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말이다.

  매우 낯설거나 이국적이라고 여겨지는 경험만 여행의 즐거움에 속하지는 않는다. 단조로운 패턴의 벽지나 바닥 타일 위에서 유독 눈에 띄는 특정한 무늬를 발견하듯, 비슷한 삶의 양식 가운데 사소한 차이를 발견하는 우연 또한 여행의 기쁨이다. 홍콩은 화려함, 거대한 규모, 기술과 자본에 대한 강박관념들로 우리를 매료시켰지만, 동시에 편안하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는 분홍색 꽃뱀 앞에서 자연스레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게 서울 한복판에 있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랑함 플레이스를 나선 후 우리는 몽콕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적응의 시간을 가졌다. 천천히 해가 지고 있었고, 금요일 오후를 맞은 사람들의 열기가 거리 위로 어지럽게 파도쳤다. 야시장 골목으로 들어가 살 만한 게 없을까 두리번거렸다. 매대마다 높은 벽을 세우고 가방이나 옷, 전자제품을 주렁주렁 달아놓은 모양새가 흥미롭긴 했으나 적당한 품질의 상품도, 마땅한 가격의 상품도 보이질 않았다. 식당이나 쇼핑몰이 밀집한 거리에 비하면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공간 사이로 상인들의 저녁 식사 냄새가 가감 없이 풍겨왔다. 홍콩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야시장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북적거리는 소음 가운데 눈부신 전등이 줄다리기를 하고, 작고 흥미로운 액세서리에 코를 박은 채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 상상을 참 많이 했었다. , 그때의 기대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지금은 빨리 Y를 현지 분위기에 투입하기 위한 속성 코스를 밟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나나 D만큼이나 그의 표정도 무덤덤해 보였기에 야시장을 떠나 온갖 젊은이와 관광객으로 넘쳐 흐르는 네이선 로드로 빠져나왔다.




  태양이 잠들고 노랫말 그대로별들이 소곤거리는 홍콩의 밤거리가 도래한다. 사실 별이 아니라 화려한 네온사인이 고함을 질러대는 밤거리지만, 가사에 어폐가 있는 것 같진 않다. 한국 전쟁이 끝날 무렵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금사향 선생의홍콩 아가씨에서 홍콩은 아직 별이 보이는 도시였던 걸까. 실상 작사를 한 손로원 선생께서도 홍콩의 밤거리를 보지 못하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밤에도 만남은 계속되고 누군가는 물건을 사고팔며, 순정을 간직한 사랑의 가능성이 꺼지지 않는 거리를 노랫말로 쓰며 홍콩이란 도시를 암울했던 현실과 대비되는 세상으로 그리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실제로 5~60년대 한국인들에게 있어 홍콩은 부와 자유, 향락을 상징하는 별천지였다고 한다. 나 역시 홍콩에 처음 왔을 때 기원을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자유를 느끼지 않았던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한결같이 유지해 온 자유무역 정책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시 하나의 총생산량이 웬만한 나라보다 높다는 경제 지표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비논리적이고 정서적인 끌림이 홍콩엔 존재한다. 누구나 홍콩의 밤거리(특히 이곳, 몽콕의 밤거리)를 걷다 보면 이 도시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기저에 홍콩 영화와 스크린 속 음악, 화려한 조명에 대한 향수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photo by D


  그런데 내가 홍콩의 습한 바람에서 느낀 자유로움은 비단 경제 정책이나 거리를 돌아다니는 홍콩인들의 여유로운 모습(직장인들은 제외하자.)에만 뿌리를 둔 건 아니었다. 일상 속에서 천천히 나선형을 그리며 침몰하던 정신이 더는 안 되겠다고 소리를 지르던 기념비적인 순간을 바로 이곳에서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게 부산이나 런던 같은 다른 도시였다면 바로 그 도시가 이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이 홍콩을 대체 가능한 평범한 여행지로 바꿔 버릴까? 아니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해도 그는 나를 위한 단 하나의 존재, 마치내 이름과 같은 사람이 된다. 앞집, 옆집, 뒷집에 순자가 한 명씩 산다고 해도 내 이름 순자는 나와 그들을 구분 지어 주는, 나에게만 들어맞는 유일한 열쇠다. 하물며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도시 중 하나를 골라 사랑에 빠지는 일은 얼마나 쉬운 일이겠는가. 그저 가질 못해서 문제일 뿐이지.

  이 도시를 찾는 모두의 이유와 나만의 이유를 골고루 짚고 나자 부산스러움을 정리하고 첫날의 클라이맥스를 찍을 장소를 찾아가야 할 것 같았다. 별을 대신해 간판이 쏟아질 듯한 몽콕 한복판을 떠나 우린 스타의 거리를 향해 이동했다.

 

 

:: 스타의 거리

 

  네이선 로드를 따라 걷다가 침사추이 안쪽으로 들어선 우리. 나와 D는 이런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여기 거기 맞지?” 라든가,

  “? 이 길로 갔었잖아!” 라든가,

  “이야, 그때 생각나는데.” 라든가.

  물론 기쁨에 찬 말투다. 아니, ? 같은 곳을 또 걷는데 왜?

  공항에서부터 시작된, 좋았던 기억을 현재에 되살리려는 노력이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우린 작년에 스타의 거리로 가려다가 헤맸던 길을 일부러 찾아다녔다. 더 빠르고 편한 루트가 있는 걸 알지만, 꼭 답습을 해야 한다는 미신 같은 게 있었다. 처음 홍콩에 올 때만 해도 이곳을 관광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관광의 천국처럼 느껴졌다. 오 개월 전 두 남자가 남기고 간 그림자를 별 다섯 개짜리핫 스팟인 양 찾아다니는! 동기의 반은 그리움이오, 나머지 반은 Y도 이 기회에 홍콩과 사랑에 빠질 거란 기대였다.

  침사추이는 여전히 젊은이들의 무대다. 대신 호텔이나 바의 테라스 자리는 여행자들의 점령지다. 모퉁이 하나만 돌아도 인적이 끊기며 누아르 영화의 배경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골목을 빠져나오면 세상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도시로 돌아왔다. 술집 하나, 전자 제품 매장 하나 모든 게 기억 그대로였다.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점도 놀랍지만, 그걸 또 봐도 좋더라는 점도 놀라웠다.

  마침내 몸에 필름을 칭칭 감은 소녀상(스타의 거리의 상징물이다.)을 만나는 순간엔 우리의 코스가 Y에게도 먹혔으리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힘찬 파도를 타고 바다로 밀려 나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누구든지 스타의 거리에서 처음으로 홍콩섬의 야경을 볼 때 만끽하는, 바로 그 감동이었다.

  “이제야 속이 확 트인다.”

  Y도 분명 그렇게 말했다. 야경보다 그 말이 더 반가웠다. 나와 D가 홍콩에 빠지던 수순을 그대로 밟았으니 우리로선 정말 할 만큼 한 셈이었다. 이제 브리핑은 끝났다고, 셋 다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정신없이 밤을 지새워야 할 때라고 누군가 머리 위에서 꽹과리를 치며 노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잡음처럼 묘한 예감이 끼어들었다. 한창 절정으로 치달아야 할 이 순간이 실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편안케 하며 감정을 중화시키는, 마치 서사시의 마지막 장 같다는 자각이었다. 그건 아무 조작도 가해지지 않고 저 혼자 튀어나온 생각이었다.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이미 돌비석에 쓰여 버린 평범한 진리였다.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우린 바로 이곳에서 여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 가볍게 맥주나 마신 다음 잠들어야 했다. 이 이상은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 속편이자 어떻게든 피했어야 할 불리한 연장전이었다. 정말 죽도록 피곤했기 때문이다.



 

  날씨가 흐린 건지 스모그가 낀 건지, 아니면 홍콩도 전기 절약을 위해 조명 조도를 좀 낮춘 건지 야경은 흐리멍덩하게 그려진 회화처럼 보였다. 너무나 광활한 풍경이라 압도되는 맛은 있는데 흥 내는 데 도움이 되진 못했다.

  “여기가 스타의 거리고, 저게 홍콩에서 제일 유명한 야경이야.” 나는 어느새 가이드 흉내를 내고 있다. “정말 좋지?”

  확실히 못 박아야 할 사실은 방금 한 말이 빈말은 아니었다는 거다.

  “좋네, 진짜.”

  Y도 돌하르방이 아닌 이상 진심이었을 거다.

  “이걸 딱 보고 캔톤 로드로 갈 거야. 그렇게 가는 게 죽이거든.”

  내 다리가 죽겠지.

  “난 우리 셋이 같이 왔다는 게 그냥 좋다.” D도 거들었다.

  밤 공기가 선선해서 제법 상쾌했지만, 등에 멘 가방과 어깨에 걸친 카메라가 점점 무거워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밤에만 왔더니 바닥에 새겨져 있는 홍콩 영화인들의 손바닥도 도찐개찐이었다.

  “이소룡이다.” 절반쯤 온 모양이다. “사진 찍자, 사진.”

  “저 곰은 뭐지? 만국기를 뒤집어썼는데?” (아직도 무슨 곰 모형인지 모르겠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사진 찍자, 사진.”

  “저 스타벅스 이 층에서 나랑 D가 커피를 마셨지.”

  “사진 찍자, 사진.”

  몸이 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니, 우린 인증 사진을 찍는 기계가 되었다. 이때 찍은 우리의 사진을 보면 눈이 풀려있고 입가의 미소는 인위적이며 어깨는 축 늘어져 있다. 그 안으로 쑥 들어가 힘을 내라고 등을 두들겨 주고 싶을 정도다. 사람도 많아 가만히 앉아 있을 자리도 없었다. 벤치는 누군가 다 차지한 상태였고, 사실 앉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추억이랍시고 무리해서 걸어 다닌 게 화근이었지만, 당시엔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게 최선이었다. 결국 우린 다음 코스로 옮겨 타자고 합의했다. 설마 이렇게 얼렁뚱땅 스타의 거리와 홍콩섬의 야경을 등질 줄은 몰랐다. 차근차근 계획대로 움직였다고 생각했건만, 오늘 밤은 예상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마지막 스퍼트

 

  육교를 건너 버스 터미널을 지나 지하도로를 통해 캔톤 로드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지하도로를 터벅터벅 걸어 다니고 있으니 되살아난 시체가 된 기분이었다. 아마 혼자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면 우리를 보고 두려웠을 것이다.

  지하도로를 걸으며 사진도 찍고 괜히 소리도 지르며 파이팅을 했다. 지하도로엔 왠지 모를 반가움이 있었다. 영어와 한자로 병기된 위치 안내판에서 익숙한 명소를 확인하는 게 그러했고, 옅은 곰팡내가 떠돌아다니는 습한 공기가 그러했다. 안내에 따라 방향만 잘 고르면 어떤 목적지든 문제없이 갈 수 있다는 이 믿음직함. , 인생에도 이런 표지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는지.





  다시 네이선 로드로 빠져나와 캔톤 로드를 향해 길을 가로지르는데 우연히 청킹 맨션을 발견했다. 작년엔 찾을 생각도 못했던 곳이고 사실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그냥 지나칠 뻔했지만, 찾은 김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듣던 대로 음울한 기운이 감도는 청킹 맨션에서 홍콩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분위기, 즉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체로 어딜 가도 선의의 눈빛을 받았던 것과 달리 이곳에선 길을 잘못 든 이방인 신세였다. 우리와도 피부색이 다른, 인도나 동남아, 아랍 지역 사람들이 가득해서 그럴까? 아니다. 청킹 맨션의 공기 자체가 우리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먼지 때문에 한층 탁해진 형광등 불빛,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점의 물건들, 그리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공안의 뒷모습. 우리는 지상층을 돌아다니다가 십여 분만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좁은 골목길 매대 위엔 온갖 성인 잡지가 즐비했다. 그러나 헐벗은 여인들조차 공기를 짓누르는 답답함 때문에 누굴 유혹할 능력이 없어 보였다.


photo by D

 


  이제 위험 신호가 켜진다. 당분, 당분이 필요하다! (아직까진 술을 마실 엄두가 나진 않았다.)

  “맥도널드에 가야겠어.”

  굶주렸다기보단 힘이 없었던 우리에겐 절인 고기, 채소, 튀긴 감자와 달착지근한 소스, 그리고 탄산음료가 절실했다. 널리고 널린 게 맥도널드라 매장을 찾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Y, 넌 쇼군 버거를 먹어 봐.”

  “Y라면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근데 없는데?”

  작년에 홍콩 특산(?) 버거라는 이름 아래 나와 D를 좌절시켰던 메뉴를 떠올리며 Y에게 권해 보았지만, 홍콩 사람들도 별로 좋아하진 않았는지 메뉴판에서 보이질 않았다.

  “얘네도 그건 먹을 게 아니라고 생각했나 보지.”

  Y는 데리야키 소스가 들어간 신메뉴를 골랐고, 나는 절대 모험을 하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빅맥 세트를 시켰다. 앞뒤로 한국 사람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점거하고 장사 한 번 끝내주게 잘 되는 매장 안을 둘러본다. 미국에서 온 듯한 노부부가 커피와 치킨을 먹고 있었는데 맥도널드의 전 세계 공용 인테리어는 이들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듯했다. 단지 커피에 설탕을 다섯 봉지나 넣는 걸 보고 두 분의 동맥 경화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홍콩 젊은이들의 패션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밤에 란콰이퐁 같은 델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슬림한 정장 차림이나 몸에 딱 붙는 미니 원피스는 없었다. 이 동네의 유행은 고딕 아니면 힙합인 것 같았고, 평범한 캐주얼을 입었다 싶으면 한국인 아니면 중국인이었다(중국어를 할 줄 아는 Y가 본토 사람을 구별해 주었다). 일본 사람들이야 특유의 차림이 있는데 뭐라 표현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관광도시라 온갖 인종을 다 볼 수 있는 홍콩이지만, 그중에서도 에센스는 바로 맥도널드였다. 



photo by D



  햄버거를 먹고 나니 힘이 좀 난다. 우리는 곧바로 캔톤 로드로 가서 여전히 낮처럼 밝은 명품 매장의 간판 조명 아래 사진을 찍었다. 여행 전, 피로 때문에 터진 입술이 돋보이며 나는 며칠 밤을 새운 사람처럼 필름에 담겼다. 기억은 잊히지만, 기록은 이리도 적나라하다. 내친김에 DFS 갤러리아에도 들러 부티나는 소파에 앉아 보기도 한다. 와이파이에 접속해 모바일 게임도 하고 메시지도 보내는 휴지기를 가지자 문득 오늘 하루가 거의 다 흘러갔음을 느낀다. 전날부터 계속된 술자리를 이제야 접는 기분. 텅 빈 매장만큼이나 텅 빈 기분이다.

  “이제 뭘 할까?”

  게임에서 진 D가 물었다. 좀 더 상승세를 타고 있던 나는 액정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술이나 마시러 가지 뭐.”

  “바로?”

  Y는 소파와 일심동체가 되어있었다. 감미로운 음악이 뻐근한 온몸을 어루만졌다.

  “일단 씻고. 앗싸, 최고 점수!”

  “아씨, 붙어 붙어.”

  오히려 이 순간이 퍽 재미있었다는 사실을 알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냥 세 친구가 함께 고향을 떠나 무위를 즐기는 것으로도 충분한 여행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꼭 감정이 격해지고 환상에 사로잡히며 구름다리를 건너듯 밤을 지새우려 했을 필요는 없었을 텐데. 우리에게 정말 요구됐던 게 무엇인지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천천히 배워가게 된다.


photo by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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