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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 밤의 첫째 단계의 끝. 기사가 지나치게 의기양양해하지 않도록 그에게 동의해 준 그 입맞춤이 또 다른 입맞춤에 이어졌고, 입맞춤들이 "빨라졌고, 간간이 대화를 중단시켰고, 그것을 대체해 버렸다……." 한데 그녀가 몸을 일으키더니 길을 되돌아가기로 결심하지 않는가.

  참으로 기막힌 연출 예술 아닌가! 최초의 그 성적 욕구의 혼란을 맛본 뒤, 사랑의 쾌락은 아직 무르익지 않은 열매임을 보여 줘야 했던 것이요, 그 값을 올리고 좀 더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야 했던 것이요, 파란을, 긴장을, 긴박감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기사와 함께 성으로 되돌아가면서 T 부인은 공허 속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가장하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상황을 뒤엎고 데이트를 연장할 전권을 쥐리란 걸 잘 안다. 그야 문장 하나면, 해묵은 대화 예술이 수십여 개나 알고 있는 그런 상투어 하나면 족할 것이다. 한데 마치 뜻밖의 어떤 음모에 걸려든 듯, 미처 예상치 못한 영감의 결여 때문인 듯, 그녀는 단 하나의 상투어도 찾아내지 못한다. 그녀는 마치 갑자기 대사를 잊어버린 배우 같다. 사실 그녀는 대사를 알아야만 한다. 젊은 아가씨가, 너 하고 싶니? 나도 하고 싶어. 그럼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라고 말할 수 있는 요즘 같지 않은 까닭이다. 그들에게는 그런 대담함이, 방종에 대한 서로의 굳은 확신에도 불구하고 뛰어넘을 수 없는 방책 너머에 머무른다. 만약 둘 중 어느 쪽에도 늦기 전에 무슨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들이 산책을 계속할 어떤 구실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들이 고수하는 침묵의 논리에 따라 성 안으로 되돌아가 거기서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걸음을 멈출 어떤 구실을 찾는 일이 다급하다고 여기면 여길수록, 더욱더 그들의 입은 꿰맨 듯하기만 하다.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을 문장들이 절망적으로 원조를 호소하는 그들 앞에서 모두 몸을 사린다. 바로 그래서 성문 근처에 도착했을 때 "서로의 본능에 의해, 우리의 발걸음은 느려졌다."
  다행히 마지막 순간에 프롬프터가 마침내 잠에서 깨어난 듯, 그녀가 자신의 대사를 되찾는다. 그녀가 기사를 공격한다. "난 당신에게 불만이에요……." 결국, 결국! 모두 구제되었다! 그녀가 화를 터뜨린다! 그녀는 산책을 연장할 작은 거짓 분노에서 구실을 찾아낸 것이다.


- 밀란 쿤데라, '느림' 중.





느림 (양장)

저자
밀란 쿤데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2-01-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나’ 밀란쿠와 아내 베라는 호텔이 된 파리의 옛 성으로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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