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았을 때,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그냥 그것들을 한꺼번에 묶어서 내놓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개별적으로 있을 땐 의미가 없지만, 모이면못다 한 이야기라는 기치 아래 하나가 된다. 불 꺼진 꽁초는 한 개비일 땐 쓰레기일 뿐이지만, 수북하게 쌓여있으면 그 어떤 곳이든 저 있는 곳을 재떨이로 만든다. 버려진 필터 조각들의 집합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들도불필요한 것들의 사전이 있다면 저마다 목차 하나씩을 차지하고 그 안에서 주인 행세를 할 테니, 과연 다수의 힘은 무시무시하다.

  나에게 남은 하와이 이야기, 정확히 말하면 아직 소개하지 못한 장소가 몇 된다. 오하우 섬에 있는 폴리네시안 문화센터, 돌 농장과 진주만이 그렇다. 부탁받은 일을 하느라 호텔 사진도 여러 장 찍었는데 그것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나는 내가 찍은 그 어떤 곳에서도 자 보질 못했고, 그저 외관만 보다가 등을 돌렸을 뿐이니, 실상 그 호텔들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선 오하우 섬의 어느 날 오후를 회상하는 걸로 충분할 것 같다.



 

  Dole 농장은 호놀룰루에서 노스 쇼어로 가는 길 중간에 있다. 마트나 편의점 과일 코너에서 제일 비싼 파인애플이나 바나나를 사고 싶다면, 바로 이 브랜드의 로고를 찾으면 된다. 돌은 신선하고 맛있으며 대규모로 재배되어 품질이 고른 걸로 유명하다. 최소한 그렇게 알려졌다. 하와이의 돌 농장에선 바로 수확한 신선한 과일이나 그 과일을 가공해 만든 상품을 판매했다. 그중에서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의 인기가 대단했는데, 한입 얻어 먹어본 결과 줄을 서면서까지 먹을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내 입맛이 까다롭다기보단 덜렁 혼자 있던 처지가 민망해 들뜬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받아먹을 자신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오하우 섬 일주는 다른 사람들하고 함께 진행했기 때문에 유난히 조용히, 유난히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를 썼었다. 신혼부부나 가족 사이에서 나는 없는 사람인 척하는 편이 낫겠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남자 혼자 하와이에 온 게 죄도 아닌데, 게다가 일 때문이었는데, 태연하지 못하는 건 농장에 쏟아지는 뜨거운 햇살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태연하지 못할 땐 태연한 척을 하는 게 제일이었고, 나는 여유롭고 느린 걸음과 미소로 평온한 상태를 연기했다. 아이스크림을 사려는 긴 줄에 서지 않음으로써 관조의 분위기를 풍기려 했음도 고백해야겠고.





  반면 폴리네시안 문화센터는 그런 연극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였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많아 절로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다. 이곳은 일곱 지역의 원주민과 그 나라를 재현해 놓은 테마파크다. 동물이나 식물도, 수영장이나 역사적 사건도 아니고 같은 인간을 보러 가는 유원지인 셈이다.



  안내를 맡은 건 하와이 소재의 대학에 다니는 한국 학생들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한 남자가 땡볕이 작렬하는 길로, 카누가 오가는 운하로 우리를 인도했다. 고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수도 없이 만났을 텐데 우리를 보는 그의 표정은 밝았다. 반가워한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 모습에 감동하여 열심히 귀를 기울였는데,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카누였다. 한국 학생은 뱃머리에 서서 좌우로 흘러가는 마을에 대해 설명했다. 뒤에선 한 원주민이 제 키보다 큰 노를 저어 배를 움직였다. 배에 탄 사람이 많아 제법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표정은 한국 학생과 대조적이었다. 물 위라 그늘도 없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육체적 고충에 나는 두 번째 감동을 느꼈다.



  직원들의 성심과 노력 덕분인지 전반적인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사실 그게 지나쳐 본래 이곳이 의도했던 바가 퇴색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아직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원주민과 그들의 생활상을 재현하여 원시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지만, 실상 그런 매력은 모두 거세당하고 마치 롯데월드의 이벤트에 온 것 같은 지나친 상냥함과 동질감이 지배적이었다. 저마다 전통 의상을 갖춘 원주민들은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에게 미소 짓고 손을 흔들며 환영의 춤을 췄다. 훌륭한 솜씨로 잘 조직된 민속 쇼를 펼쳤다. 바야흐로 그들은 그들 자신을, 그들의 민족을 연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태연한 척 꾸미며 은근슬쩍 노려보았던오늘의 연기상은 폴리네시안 문화센터의 친절한 원주민들 앞으로 돌려줘야 할 모양이다.

  그러나 즐거웠다는 덴 이견이 없다. 훌륭한 연출은 양질의 반응을 이끌어 낸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나라는 남녀 모두 덩치가 산만한 통가였다. 짚 같은 걸로 물고기 모양 장난감도 만들어 보고, 요란한 민속 쇼도 보았다. 특히 관객을 불러 북을 쳐보게 하는 장면에선 한국인의 타악기 다루는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한국 남자가 지목되어 나갔는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원주민 사회자는 그의 국적을 듣자마자 북 하나는 잘 친다며 한국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둥둥둥. 묵직한 북소리와 사회자의 재치있는 멘트마다 터지는 웃음소리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이곳은 테마파크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테마파크에 흐르는 온갖 행복한 환상에 걸맞게 손뼉을 치고 환호를 했다.




 


  오하우 섬 일주의 마지막 코스는 진주만이었다. 1941 12 7. 비록 본토는 아니지만, 자국의 영토를 공격당한 미국은 본격적으로 세계 이차대전에 뛰어든다. 그 역사적인 순간의 시발이 바로 이곳, 진주만에서 이뤄졌다. 두 번째 세계대전은 수많은 국가에 상흔을 남겼다. 그러나 이곳에서만큼은 이기적으로 생각해 보자. 한국은 그런 커다란 전쟁이 있기 훨씬 전부터, 지금까지도 모두 치유하지 못한 고통에 허덕이고 있었다. 우리 민족에겐 복수나 전쟁에 참여하기 위한 명분 같은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참전은 미국의 의지이자 자유였지만, 우리에겐 자유가 없었다. 반대로 오직 자유에 대한 의지가 있었을 뿐이다. 고통은 상대적이며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진상을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계승은 존재한다. 비록 직접 겪어보진 못했지만, 핏줄을 통해 전승된 아픈 역사로 인해 한국인인 내가 진주만에서 벌어진 전쟁의 공포와 아픔에 열렬히 공감하지 못하는 건 비정해서도, 무감각해서도 아니다. 나는 그것이 감정의 자연스러운 행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진주만에 기습 폭격을 가한 일본군의 폭격기는 미국엔 치욕스러운 기억이다. 그러나 우린 그 폭격기를 공중으로 띄운 한 국가의 욕망, 제국주의의 망령이 남긴 잔재와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있다.



  그래서 진주만의 풍경에 목가적인 평온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게 무신경한 처사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공원처럼 잘 꾸며놓은 이곳은 전쟁의 승리와 현재의 평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테마파크였다. 해가 지는 풍경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는 세계대전 당시 바다 위를 가로질렀던 함선을 보았다. ,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는 외침은 얼마나 공허한가. 지금도 이 낡은 함선은 최신 기술에 의해 부활하여 어느 바다 위, 어느 사막 위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전쟁을 막고자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인물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무기가 지키고자 하는 자, 그리고 그 무기가 깔아뭉갠 자를 생각하는 역할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차에 실려 호텔로 돌아오면서 오늘 본 남국의 풍경을 머릿속에서 되살려 보았다. 블로홀과 샌디비치, 마카푸우 포인트와 중국인 모자섬(모두 이 글 이전의 시간, 오전에 돌아본 곳들이었다). 그리고 노스 쇼어와 돌 농장, 폴리네시안 문화센터와 진주만. 어쩌면 내가 오하우 섬에서 제대로 본 것이라고는 오늘의 방문지가 전부일 뿐이며, 남아있는 몇 개의 낮과 밤들엔 홀로 떨어진 채 무위로 보내게 될 것이란 예감이 슬금슬금 밀려왔다. 그러나 걱정은 없었다. 수백만 년 전 섬이 생성된 시기부터 현재의 산업에 이르기까지 콕콕 점을 찍으며 돌았던 이 날 하루는 앞으로의 사소한 일정과 양팔 저울 위에서 훌륭한 균형을 이룰 것이며, 쉽게 잊히지도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canon A-1 + 24m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