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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있는 미술관 중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할 곳을 꼽으라면 역시 오르세 미술관일 것이다.

인상파 화가를 향한 근원 모를 선호는 오르세를 기차역을 개조한 미술관 그 이상으로 만들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내린다. 2월의 눈이다.

파리에 있었던 육 일 중 유일하게 흐렸던 날이었으며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날이기도 했다.

"파리는 흐려야 제맛이죠."






건너편으로 루브르 궁전이 보인다.

잔뜩 낀 눈구름이 풍경을 몇 십 년 정도 뒤로 돌려놓았다.

평일이라 거리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사람 없는 풍경을 사진 찍기가 퍽 힘들지만,

마음 속에 남기기엔 텅 빈 화면이 더 낫다.






A는 개인 관람객을 위한 줄.

B는 단체 관람객을 위한 줄.

 C가 있었던가? 예약자를 위한 줄이었을까?






아주 발랄한 소녀가 거의 텅 비다시피한 대기열을 걸어왔다.

친구들, 가족들, 모두 그녀의 뒤를 따랐다.

파리에 산다면 이런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한다.

환한 표정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들어가는 사람들.

가볍게, 즐겁게, 촬영 금지 문구를 무시하고 마음 놓고 사진도 찍고.






안내 데스크에 있는 여자는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전시실을 둘러본다.

나는 상상한다.

세계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에 그녀는 큰 자부심을 느낀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화상은 그림을 팔고, 마음 넓은 콜렉터는 대중을 위해 작품을 기부한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기차역에 모여 구경 온 사람들을 인도한다.






작품에 대한 예의 삼 할.

미술관의 규정 존중 삼 할.

소심함 삼 할.

찍을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작품을 보는 게 낫다는 믿음 일 할.

그래서 이번 여행기엔 작품 사진이 없다.

대신 2층에서 열린 탄광이나 공장을 주로 찍은 어느 작가의 흑백 사진전을 보다가 '전시 안내문'은 찍었다.

나중에 읽어보려고.

사진을 올리는 지금도 다 읽어 보지 않았다.






미술관 안에도 카페는 있다.

계단참에서 내려다 보며 찍을 수 있었는데

구도가 퍽 마음에 들었다.

커피 한 잔도 못 마신 점은 좀 아쉽다.






예전엔 이곳에 디젤 연료를 태우며 나온 수증기와 연기가 닿았을 것이다.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작업은 환영받을 만 하다.

아, 그런데 난 서울역 미술관도 한 번 가보지 않았구나.






어찌 이리도 적절한 수로 모여 적절한 빈공간을 두고 서 있을 수 있을까.






오르세 미술관에서 작품 다음으로, 아니 어쩌면 작품 이상으로 매력적인 오브제다.






이 시계 뒤에는 레스토랑이 있다.

노출차가 커서 더 인상적인,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광경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식기가 달그락 거리 소리도 지금 울린 게 아니라 몇 분 전에 또는 몇 분 후에서 날아온 것 같다.






그래서 찍고, 찍고, 또 찍는다.

작품은 찍지 못하니까 이거라도 찍자는 심산이다.






홀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내부 발코니에 서 보았다.

양쪽 날개에 세워져 있는 석상도 찍으면 안 되지만,

이렇게 전체에 묻어서 가져올 수는 있다.


매끈한 바닥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실루엣은 언제 보아도 좋다.






작품 데셍에 빠져있는 미술학도도 많이 볼 수 있다.

많은 화가들이 이런 식으로 연습을 했을 것이다.

그림과는 너무 거리가 먼 나는 그저 신기하게 여겨질 뿐이고.






때로는 미술관 전경을 그리는 이들도 있다.

파리 사람들은 그림을 아주 잘 그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사물을 볼 때 진지해지는 푸른 눈을 향한 환상일까?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러고 보니 작품에 관한 이야기도 안 했구나.

내가 오르세 미술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피사로의 '에라니의 풍경, 교회와 에라니 목장(Paysage à Eragny, église et ferme d'Eragny)'이다.

이 작품은 눈높이보다 위에 걸려 있는데,

작품 속 태양이 실제로 하늘에 떠 있을 때의 각도와 흡사해서

보고 있으면 눈이 부신다.

그 목가적인 풍경에 의해 나는 평화로움, 한가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고흐, 모네, 르누아르의 그림도 좋지만, 난 그 그림을 제일 좋아한다.



Leica Minilux

Kodak 200




댓글
  • 프로필사진 토닥s 아 레스토랑을 지났는데 누군가의 꽁무니를 쫓으며 사진찍느라 정작 그곳이 시계 뒤인줄 몰랐어요.
    오르세는 말이죠.. 파리라는 프랑스라는 상징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곳이었어요.

    근데 내가 쫓았던 꽁무니가 뭐였는지 궁금하네요.
    2013.10.18 21:44 신고
  • 프로필사진 프린시아 어느 분의 꽁무니였을까요 ㅎㅎ

    루브르가 더 유명하긴 하지만
    좀 아담한 감이 있고 18~19세기 운치도 나는 오르세가
    지금의 파리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2013.10.21 12:5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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