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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나도 광장으로



photo by D



photo by D


 

  이번엔 제대로 중심부로 온 모양이다. 카지노를 나와 선착장으로 돌아온 후, 다시 마카오 윈 호텔 행 셔틀 버스를 타고 호텔촌에 도착했다. 주변엔 어느 하나 크고 화려하지 않은 건물이 없었다. 윈 호텔만 해도 건물 전체가 황금색 유리로 도배되어 있었다. 마당엔 넓은 분수대와 한쪽으로 기운 부채꼴 모양의 구조물이 있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크고 화려하지만, 동시에 모든 게 낡았다. 어디에서도 음악 소리가 들려오지 않아 거리는 음소거 버튼이 눌린 듯 조용했다. 눈 부신 네온사인도 침묵 속에서 깜빡였다. 모든 게 시시각각 움직였지만, 모든 게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시각과 청각의 불균형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

  셋 모두 적응이 잘 안 되는 상태에서 마침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우린 지체없이 윈 호텔로 들어갔는데 들어가자 마자 바깥 소음을 모두 빼앗아 오기라도 한 것처럼 커다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음악의 근원인 둥근 홀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 위로 조명이 번뜩였다. 맙소사. 천장이 열려 있었다. 끝없이 형태가 변하는 빛은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거였다. 바닥엔 지구를 닮은 반구가 솟아 있었다. 천장은 하늘이요, 반구는 땅인 셈이다. 중간에 일단 화장실부터 다녀와야 했지만, 이것 역시 규모의 미학에 관한 끝없는 발견 중 하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세나도 광장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됐다. 나침반에 의지하여 방향만 잡고 좁은 골목길을 걸었다. 정작 마카오 시민들은 카지노엔 별 관심 없는 듯 호텔에서 멀어질수록 사람이 많아졌다. 흔히 마카오를 동양의 유럽이라 말하곤 한다. 유럽은, 그 수많은 나라로 쪼개진 대륙은, 모든 관광지의 표본이자 이상향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여행사는 아시아의 도시를 유럽이란 수식어로 포장하길 좋아한다. 도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했을 때, 관광지조차 가격 대 성능비라는 냉정한 저울 위로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올라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훨씬 짧은 시간 동안 유럽의 느낌적인 느낌을 만끽해 보세요.” 얼마나 매혹적인 속삭임인지. 얼마나 세계 각지를 획일화 해버리고, 특색 없는 곳마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치장하는 고도의 전술인지. 아니, 차라리 지나치게 성지화된 유럽의 아성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





  마카오가 오랫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건 맞다. 유럽풍 건축물이 남아있고, 그것이 주요 관광 자원인 것도 맞다. 품위 있게 늙은 골목을 걷다 보면 유럽까진 아니더라도 과연 유럽의 먼 식민지에 와 있음을 실감하기도 한다. 그런데 묘한 스산함, 부정할 수 없는 쓸쓸함이 이 거리엔 있었다. 그건 파리나 프라하의 골목에서 느끼는 적적함과는 달랐다. 바삐 걷는 시민들은 활기참과 동시에 그 활기참 때문에 지쳐 보인다. 좌절이 깁은 고단한 삶과는 질감이 다르다. 젊기 위해, 젊음을 빛내기 위해 피로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 맞다. 바로 우리처럼 그렇다. 우리 역시 지쳐있었고, 단순히 여독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제 사라지는지도 모른 채 사라지기 전에 젊음을 만끽해야 한다는 맹목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비단 낯선 땅을 걷고 있는 지금 뿐만 아니라 우리가 떠나 온 땅과 그 안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을 관통하면서 말이다.







  덕분에 자칫하면 세나도 광장도 못 보고 떠날 뻔 했다. 발이 무거운 탓에 광장을 보지 못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길은 이어지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제대로 코드를 꽂듯 빙 돌아 광장에 도착했다. 과정은 복잡했다.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도 않는다. 이곳에 기술할 수 있는 내용은 두 가지다. 어쩌다 보니 사진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광장이 나타났다는 것. 신년 맞이를 위해 홍등을 쭉 늘어놓아 거리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는 것. 해는 진지 오래다. 문득 우리의 여행이 이렇게 막바지로 치닫고 있음을 깨닫는다. 등불의 수만큼이나 엄청난 기대로 떠나왔는데 그걸 늘어뜨리기도 전에 여며야 하는 처지였다. 딱히 해소할 방법이 없는 상실감을 이기기 위해서 일까. 신기하게도 세 남자의 피로는 배고픔으로 치환됐다.






 

  마지막 날에 마치 화룡점정처럼 여정에 포함시킨 마카오였으나 사실 우리가 이곳에 와서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 헤아리긴 어려웠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후회를 줄여보겠다는 심정으로 마카오에서 유명하다는 포르투갈식 요리를 먹어보기로 했다. 딱히 식당을 조사해 오진 않았기 때문에 광장으로 이어진 작은 골목을 뒤졌다. 한 군데는 걸리지 않을까. 그리고 다시 한 번 D의 미식가적 레이더가 뭔가를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어느 샛언덕길 중간에 있는 오문(澳門Ou Mun)이란 이름의 식당 겸 카페였다. 아담했고, 주인과 점원 모두 서양인이었다. 포르투갈 사람일지도 몰랐다. 메뉴는 대체로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종종 포르투갈 전통식(?)이 보이긴 했고, 다른 메뉴도 그쪽 방식으로 요리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다양한 걸 먹어보기로 했다. 먹고 싶다는 느낌이 확 오는 요리들. 굶주림을 달랠 해결사 같은 메뉴들. 그래서 오믈렛 볶음밥, 크로켓, 문어 요리에 상그리아 일 리터가 우리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후식으론 에그 타르트와 (나 혼자) 에스프레소 한 잔까지 주문했다.

  음식은 문어 요리 빼고는 모두 맛있었다. 양이 꽤 많던 볶음밥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크로켓은 아껴서 먹을 정도로 맛있었다. 다만 역한 냄새가 났던 문어 요리가 처치 곤란이었는데, 상그리아와 함께 하니 그나마 먹을 만 했다. 마카오에서 꼭 먹어 봐야 한다는 에그 타르트도 차가웠지만 담백한 게 기대 이상이었다. 식당과 카페를 겸하는 곳은 이도저도 아닌 음식을 내놓을 여지가 있지만, 우연히 발견한 이곳은 그런 진부한 결론을 피해간 모양이다. 분위기도 퍽 좋았으니 말이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자 공허함이랄까, 허무하게 흘러간다고 느껴지던 시간이 농밀해 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할 땐, 식사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우리가 언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거리를 걸을 때? 길을 잃어 같은 곳을 헤맬 때? 취해서 지나치게 진심이거나 지나치게 진심과 거리가 먼 이야기를 나눌 때? 머리를 맞대고 접시 한 개를 공유할 때, 이야기가 보다 쉽게 풀린다는 걸 알았다. 카페 분위기를 칭찬하고, 문어를 제외한 빈 접시를 아쉬워 하며, 그러면서 중간 중간 지나간 삼 일의 기억을 되짚는다. 몸이 나른해 지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여기서 배를 타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마뜩잖았다. 잘 차려진 테이블 앞에 모여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부숴트려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갤럭시 호텔은 이곳에 있는 게 아니니까. 밤을 위한 안주로 육포를 사고, 다시 윈 호텔을 찾기 위해 거슬러 올라간다. 완연한 어둠 속에서 마카오의 거리는 거대한 카지노 간판에 짓눌려 보였다. 수많은 전구와 천박한 빛깔은 일부러 현실감을 지우기 위해 설치된 선전물처럼 보였다. 밤은 더 덥고 습했다. 페리 선착장으로 돌아가 늦은 배편을 기다리는 와중까지 마카오란 도시가 정확히 어떤 곳이라고 요약해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이곳이 홍콩과는 매우 다른 결의 도시이며, 그 반사작용으로 말미암아 홍콩으로 돌아가는 순간 집에 온 것처럼 반가울 거라는 걸 알 수 있었을 뿐이다.




 

 

:: 마지막 밤은 꼬치와 함께

 

  홍콩섬의 페리 터미널로 돌아오자 거의 밤 열 시가 다 되어 있었다. 얼마나 고단했던지 선착장으로 들어서는 것도 보질 못했고, 하선하려는 사람들로 배 안이 소란스러워지고 나서야 겨우 눈을 떴다. 뿌연 창밖으로 고층 건물의 실루엣이 보였다. 잠시 이곳이 어디인지 고민하다가 홍콩으로 돌아왔음을 확인했다. 정신이 없었다. D Y 역시 멀미조차 느끼지 못했을 만큼 곤히 잠들었다고 한다.

  입국 절차를 받고 건물 밖으로 나오자 홍콩섬 지하철의 끄트머리에 있는 셩완 역이었다. 불이 꺼지고 인적 없는 고층 건물이 쭉 늘어선 거리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처음과 이번 여행 모두 홍콩섬에서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또한 새로운 장면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종착점은 바다 건너 주룽반도에 있다. 홍콩섬을 탐험하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자.

  일단 우린 병력을 나누기로 했다. 피로를 느낀 D Y는 마사지를 하러 간다고 한다. 반면 마사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혼자 침사추이에 가서 뭐라도 살 게 있는지 보기로 한다. 그러고 보면 이번엔 뭘 사겠다고 애쓴 적이 없다. 쇼핑의 도시라는 별명을 잊은 게 미안해 쇼핑하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다. 우리는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한 시간 후에 호텔에서 보기로 하고 침사추이 역에서 헤어졌다.

 

  일요일 밤이라는 절망적인 시간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거리엔 희극의 에너지가 넘쳤다. 홍콩의 거리를 혼자 걷는 건 처음이다. 묘하게 들뜬다. 하긴 여행은 원래 혼자 돌아다니는 게 제맛이지 않은가. 그저 이곳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즐거운 도시로 보여서 그래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줄지 않는 인파와는 대조적으로 상점이 문을 닫는 시간은 여전히 이른 편이었다. 구경할 곳이 거의 없었고, 살 만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옷 한 벌을 두고 잠깐 망설이다가 그냥 침사추이나 여러 바퀴 돌기로 했다. 작년 여행 중 새벽에 뛰쳐나와 D와 함께 걸었던 길을 되짚기도 하고, 유난히 북적이는 분식집 앞에서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다. 누군가 그러더라. 홍콩 사람도 한국 사람처럼 좌판이나 분식집 앞에 서서 먹는 걸 좋아한다고. 나는 거기에 덧붙이겠다. 그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쪽 분식을 마음껏 먹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촌스럽지만 길거리 음식은 떡볶이나 어묵, 순대 같은 게 최고라고 말이다.







  혼자 다니다 보면 이곳으로 오며 세운 작은 계획도 실천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대로 가다간 올해도 작년, 재작년처럼 흘러갈 게 뻔하지 않은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면서 그걸 선뜻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계유지란 핑계로 올해도 방치한다면 이젠 너무 늦지 않은가?” 따위의 질문에 답을 찾는 일이었다. 그런데 단답형으로 족하지만 그걸 결정하기까지가 쉽지 않은 그런 질문들은 표피에만 머물 뿐 생각 깊숙이 파고들지 않았다. 정신없이 놀고 마시다 혼란스러운 밤거리로 나서면 불현듯 결론을 내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실상 질문에 대한 답은 이번 홍콩 여행이 아니라 몇 주 후에 가게 된 다른 여행에서 찾게 됐다. 언제든 찾았으니 다행인 일이지만, 당시엔 무기력함을 이길 수 없었다. 생각하기 좋은 환경에서 아무런 생각도 못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했다.

  그럼 친구들과 함께라면 어떨까. 약속했던 대로 한 시간 정도 후에 호텔로 돌아가 D Y와 합류했다. 둘은 마사지를 받으니 힘이 난다고 한다. 그렇다. 아직 우리에겐 가야 할 장소가 남아있다. 기대해 마지않던 곳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체력만 소진한 나조차도 채찍을 얻어맞은 말처럼 달려나갈 수 있었다.

 

  호텔을 나섰다. 걸어서 간다. 방향은 몽콕. 나와 D가 작년 여행 중 묵었던 브라이덜 티 하우스란 호텔을 찾아서다. 첫날, 몽콕의 랑함 플레이스까지 걸어 봤으니 거기서 십오 분 정도 떨어진 옛 호텔까지도 걷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랑함 플레이스를 지나 몽콕의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가자 오 개월 전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혼잡하고 더럽고 낡은 건물과 주렁주렁 매달린 부산물들이 숲을 이루는 골목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지날 때마다 강한 취두부 냄새가 풍겨 와 코를 막아야 했던 어느 식당조차 반가울 정도였다. 나와 D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Y 역시 마지막 밤에 조용히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곳을 찾는다는 이야기에 화색이 돌았다.

  호텔 브라이덜 티 하우스 앞엔 이름도 모르는 작은 이자카야가 있었다. 나와 D는 그곳에서 사케를 마시며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눴었다. 첫 번째 여행으로 말미암은 이미지 중 그 작고 조용한 이자카야가 가장 강렬하게 남았다. 이제 그곳이 점점 가까워진다. 모퉁이만 돌면 우리가 묵었던 호텔이 보일 것이다. 그 반대편에는 작은 홍등을 하나 단 이자카야가-

  없었다.

  이자카야는 문을 닫았다. 일찍 영업을 마친 게 아니라 폐업을 했다는 의미에서의 그 을 닫았다. 간판도, 홍등도 없었다. 그저 자세히 봐야 호텔처럼 보이는 브라이덜 티 하우스만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D가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여기에 쉽게 쓸 수가 없다. 나도 아쉽긴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도 왠지 그곳이 없어졌을 것 같다는 예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이렇게 외진 곳에 있는 이자카야가 오래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침사추이에서 여기까지 미뤄뒀던 답을 찾으려는 계획이 결국 무산되었음을 깨달았다. 맡겨둔 피로까지 덤으로 몰려왔다. 괴로움에 나는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고 했다.




 

  더 걸을 힘이 없었던 우리는 택시를 타고 침사추이로 내려왔다. 아까 혼자 돌아다니며 봐 둔 술집을 찾아갔으나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다. 다른 곳도 이곳저곳 쑤셔 보았지만, 이해가 힘들 정도로 이른 마감 시간 때문에 전부 실패였다. 마지막 날을 마무리하는 장소를 찾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상황조차 어찌 이리도 작년과 똑같을 수 있을까.

  결국, 피하고 싶었던 답을 다시 선택해야 했다. 삼십 분이나 걸어서 찾아갔으나 흔적을 찾을 수 없던 작년의 이자카야는, 당시엔 내가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던 곳이었다. 마지막 날을 호텔 바로 앞에서 보낸다는 건 제대로 된 맺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은 보란 듯이 우리를 사로잡았고, 오늘 우리를 불러들여 늦은 이별을 고했다. 그러면 오늘은 어떨까? 사실 이번에 우리가 묵은 호텔 바로 앞에도 가게가 하나 있었다. 꼬치 집이었는데 앉을 자리조차 너무 협소해 보여 지금껏 피해왔었지만, 결국 그곳밖에 남은 곳이 없었다.

  ,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이번에도 피하고 싶었던 답이 정답이었다니. 꼬치 집을 운영하는 젊은 청년들은 우리가 기웃거리자 길거리에 플라스틱 테이블을 깔아 줬다. 거기에 앉아 처음 보는 저렴하고 시원한 병맥주와 함께 베이컨 아스파라거스 꼬치와 양 꼬치를 시켜 먹는다. 맥주도 꼬치도 감동적이다. 힘들게 헤매다 왔기 때문에 더 맛이 좋다. 이자카야가 망한 걸 알았을 때 바로 왔다면 힘도 덜 빼고 보다 오랜 시간을 여기서 보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실망의 행군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맥주와 지금의 분위기가 우릴 매혹하는 거라고 믿었다.

  우리는 귀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꼬치 집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곳엔 밖에서 볼 땐 몰랐던 가볍고 흥겨운 분위기가 있었다. 주인은 친절했다. 그의 친구들이 놀러 와 함께 꼬치를 구우며 뭔 이야기에 크게 웃기도 했다. 질 수는 없었다. 여행 중 있었던 에피소드가 끝없이 회자됐다. 우리도 크게 웃었고, 맥주에 취기를 느끼며 희희낙락거렸다. 하지만 돌아가고 나서의 일상, 그 끝없는 반복과 나선형 침몰을 피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피했던 걸까? 한 번쯤 홍콩에서 나누고 싶었던 화제는 끝내 침묵을 지켰다. 그것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상실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사흘 동안 너무 정신이 없어서 아직도 여행을 온 건지 꿈을 꾸는 건지 모르겠다는 Y의 말을 듣는다. 잘못된 흐름으로 여행을 끌고 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기회는 지나갔다. 그냥 병을 부딪치며 건배를 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가볍게 배를 채운 후 삼십 초 거리도 안 되는 호텔로 돌아와 마지막 진토닉을 마신다. 실수로 이 리터나 사 온 드라이 진이 참 많이도 남았다. 마지막 날이란 걸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게 우린 마지막 밤을 보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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