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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단지 이런저런 영상들이나 보려고 했어." 내가 말했다. "주유소, 노란 택시, 자동차 영화관, 광고판, 고속도로, 그레이하운드 버스, 국도에 있는 버스 정류장 표지판, 산타페 철도, 사막. 무미건조한 의식에 젖어 있던 나는 그것들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꼈지.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영상들에 싫증이 나서 뭔가 다른 것을 보고 싶어. 게다가 이곳 사람들이 내게는 여전히 낯설어서 전처럼 행복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경우가 드물어졌어."

  "그렇지만 지금 이순간만큼은 행복하지 않아?" 클레어가 물어왔다.

  "행복해." 내가 대답했다.

  순간 나는 다시 우리가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호텔로 가서 『녹색의 하인리히』를 읽어줘도 되겠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지나 되돌아왔다. 별들이 어느새 자리를 잡았다. 달빛이 워낙 밝아서 커다란 그림자를 단 자동차들이 먼커브길에서 질주해 오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그러다 모텔과 레스토랑의 불빛 사이까지 다가오면 자동차들은 그림자를 잃어버린 채 형체가 줄어들었다. 우리는 한동안 육교 아래쪽을 내려다보다가 긴 뜰을 -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뜰에서 느껴지는 적막감은 점점 커져갔다 -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중.



  밤에 꿈을 자주 꾸었다. 꿈들은 대부분 몹시 격정적이어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꿈속에서 느꼈던 고통뿐이었다.


-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중.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양장)

저자
페터 한트케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02-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찬사와 비판을 넘나드는 우리 시대 가장 전위적인 문제 작가 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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