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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꽤 오래 전 일이 되어버린 2013년 7월의 홍콩 여행. 한창 두 번째 홍콩 여행기를 쓸 때였기도 했고, 파리에 북규슈까지 겹쳐서 이건 포스팅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도 올해 건 올해 다 정리해 버리는 게 깔끔한 법. 길고 긴 여행기로 쓸 게 아니니까 사진이라도 들추어 보자.







  비가 오는 7월이었다. 9월에 갔을 때도 아주 더웠던 기억 때문에 사실 날짜를 정하고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서도 많이 망설였었다. 도대체 7월엔 홍콩이 얼마나 더울까? 한국엔 비가 왔었다. 그리고 지독한 더위가 아직 마수를 뻗치기 전이었다고 기억한다. 결국 제대로 각오하고 더위를 즐기자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숙취 때문에 엄청 고생했던 두 번째 홍콩 여행의 아픈 추억을 되새김질 하며 전날에 술 한 모금 안 마셨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도 함께 하는 D와 저번 여행의 동반자였지만 이번엔 빠지는 Y, 그리고 K 등과 함께 여행 기념 술자리는 전전날에 가졌다. 그만큼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말끔한 기분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두 번째 여행 때도 비가 왔었지. 그땐 숙취 탓에 영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오늘은 운치가 있다.







  약국에서 비싼 약을 사 먹었던 저번 여행을 떠올리며. 오늘은 들어갈 일이 없어 다행이다. 게다가 한적한 분위기까지 덤으로.







  여행사에서 보는 여행 성수기는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다. 한국이 가장 더운 시기이며, 아이들 방학 수업이나 숙제가 끝나고 회사도 한숨 돌리는 그 시기. 우리는 7월 초였기 때문에 여름에 이 정도 인파는 애교다. 체크인하고 짐을 맡기는 데도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기줄을 향해 캐리어를 끌고 가자 진에어 직원이 바로 카운터로 안내해 줬을 정도다. 좋아요, 느낌이 좋습니다.







  면세품을 찾는 코너에도 사람은 별로 없었다. 거의 대기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에도 다른 사람이 부탁한 걸 찾았을 뿐이지만, 그래도 면세점을 이용하는 기분을 대리로 만끽하는 건 나쁘지 않다. 잘 봉인해 주는 비닐봉지 안에 무엇이 있든, 그 양이 얼마나 되든. 이번엔 D가 부탁받은 물건이 많아서 고생을 좀 했다.







  외항기 취급(?)을 받는 진에어는 탑승동에 게이트가 있다. 아, 이 한가로움이라니. 몸과 마음을 말짱하게 유지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인 덕분인지 공항조차 우리가 딱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아니, 누군들 이런 인적 드문 공항을 싫어할 수 있으랴. 여행을 떠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 고립되어 보인다. 서로의 빈자리가 서로 안고 가는 고독의 부피만큼 넓어진다.







  가야금을 타는 손길. 탑승동 흡연실에 걸려있던 사진이다. 여기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이나 외국으로 떠나는 한국인이다. 한국인은 차치하고, 외국인에게 이 사진은 한국에 대한 마지막 인상으로 남을 수 있을까? 나조차도 잊고 사는 저 곡선, 고운 색이 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 중 하나로 새겨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일들로 잊고 살기 일쑤지만, 우리나라는 저렇게 아름다운 인상이 가득한 곳이다. 문득, 한국을 좀 더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번 홍콩 여행이 올해만 네 번째 해외여행이다. 예감 상으로도 그랬고, 연말이 된 지금은 그게 현실이 되기도 했지만, 이때 한동안 외국 나가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걸 알게 됐다.







  터미널에서 본 에어 프랑스. 이 녀석을 보자 흡연실에서 했던 생각은 갑자기 뒤로 밀려나고, 프랑스에 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비행기 하나가 여행을 충돌질하기도 한다. 저 여객기에 타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셔터를 두 번 정도 누르고 나서 갑자기 모든 게 괜찮아 졌다. 그래, 괜찮다. 난 파리가 부럽지 않은 홍콩으로 가고 있으니까. 괜히 세 번씩이나 가는 게 아니니까.







  둘 다 아침을 안 먹었기 때문에 던킨 도너츠에서 치아바타인가 뭔가를 먹었다. 조리 시간이 15분이나 걸린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래도 좋다고 했다. 그만큼 시간이 많이 남았다. 정말 많았다. 공항에서 이렇게 여유로워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쭉 빨며, 사진도 찍으며, 이번 여행은 어떨지 상상의 나래도 펼치며, 회사에 있는 Y와 K에게 자랑 문자도 보내며 그렇게 치아바타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도 탑승할 시간이 왔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게 분명한 공항 상주 직원의 모습이 보인다. 시적으로 이야기 했을 때, 공항은 그 나라의 가장 변두리, 국경의 끄트머리에 있는 셈이다. 한 나라의 끝과 세계의 시작이 만나는 보이지 않는 통로가 여기엔 있다.







  세 번에 걸친 홍콩 여행을 계속 함께한 D. 우리는 멀쩡한 정신으로 비행기를 타고, 뜨거운 여름과 혼란스러움의 한가운데 있는 도시를 향해 날아가려는 찰나였다.




Leica Minilux

portra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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