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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D가 홍콩에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숙소 주변의 편의점을 찾는 것이다. 마트가 싸서 좋긴 하지만, 조금 위험하다. 한밤중엔 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 음료수나 얼음, 간식거리가 필요할지 모르는 게 우리의 여행이다. 하긴 쇼핑센터에 입점한 곳을 제외하면 홍콩에서 마트를 본 적도 별로 없다.

  편의점을 찾는 산책은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이 세 번째라 적응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긴 했지만, 의례적으로 행하는 의식이라고나 할까. 지독한 여름 날씨를 몸으로 받아낼 각오가 절로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행자는 걸어야 한다. 여행은 도보에서 시작하고, 도보로 맺음 해야 한다. 시속 4.5km는 생각의 속도와 알맞은 보조를 이룬다.







  홍콩섬과 주룽반도의 풍경은 확실히 달랐다. 그나마 하늘에 여유가 있었다.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고, 보이는 건 끊임없이 꼬리를 무는 자동차뿐이었다. 도로의 열기는 자동차를 당장 폭발할 것 같은 포탄처럼 달궈 놓았다. 차 안은 닭살이 돋을 만큼 차가운 에어컨 바람으로 꽉 차 있겠지만, 옆에서 걷는 사람은 이중고에 시달려야 한다. 다시 한 번 홍콩에서 사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즐겨 찾은 도시에서 막상 살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으니까 말이다. 여행을 위한 장소, 도피를 위한 장소, 스스로 망가지길 바라는 장소.







  오른쪽이 사원이고, 그 옆으로 호텔이 줄지어 서 있다. 이 주변에 홍콩섬 북부에서 남부로 이어지는 터널이 있다. 사진에도 찍혔듯 고가도로도 보인다. 심지어 그 흔한 쇼핑센터조차 여기엔 없다. 주택가의 의무에서도 관광지의 의무에서도 벗어난, 오로지 도시를 움직이기 위해 조성된 구역이다.







  이곳은 시크교 사원이다. 힌두와 이슬람을 융합한 인도의 종교라고 하는데 이번에 처음 알았다. 또, 나중에 지도를 보고 안 사실이지만 호텔 뒤에 있던 공동묘지엔 무슬림 묘지와 가톨릭 묘지가 붙어 있기도 했다. 흔히 미국을 인종의 전시장이라고 하는데 홍콩 역시 작은 갤러리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이질적인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서로 뒤섞여 있다.







  호텔 건너편 언덕의 계단을 내려가 병원을 지나고, 다시 골목을 걸어나가다 보면 홍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높은 빌딩과 좁은 차도, 그리고 양쪽으로 줄지은 상점 거리가 나온다. 그중 제법 이름이 낯익은 게 완차이 로드고, 이곳은 완차이 로드의 한 상가에 있던 일본식 테이크아웃 매장이다. 하나 무스비란 이름처럼 초밥과 삼각김밥을 팔고, 샐러드도 있다. 연어 샐러드 같은 것들! 간식으로 삼각김밥 하나를 샀는데 아주 맛있었다. 홍콩은 항구 도시라 해산물이 풍부하고, 일본 식문화를 아주 잘 흡수했다. 이 도시에서 일식은 정말 최고다. 나중에 하나 무스비보다 더 싸고 맛있는 서민적인 가게도 하나 찾았다.







  그러나 간식은 간식. 우리의 홍콩 첫 끼니는 맥도널드 햄버거로 정해졌다. 다른 메뉴는 거들떠보지 않고, 그냥 빅맥 세트를 두 개 시켜 자리에 앉았다. "파노라믹"하고 "서라운드"하게 들려오는 광둥어의 성조는 여전히 시끌시끌했지만,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됐다. 누구도 먹은 자리를 치우지 않고 그냥 떠나는 것에도 이제는 익숙해질 때가 됐다.






photo by D


  D가 찍은 사진이다. 의도한 건지 아닌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절묘하게 한국 홍보 간판이 보인다. 단어 하나일 뿐인데 갑자기 풍경이 달라 보인다. 정서적으로 가까워진다. 그냥 조금 독특한 나의 도시에 온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면, 홍콩에 너무 자주 와서 그런 걸까.







  마침내 찾은 편의점은 호텔에서 꽤 먼 거리에 있었다. 대략 5분 정도라 한 번에 많이 사는 게 귀찮아지지 않는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얼음이 애매했다. 드라이 진을 칵테일로 만들어 마시려면 아무래도 얼음이 필요한데 냉동고가 없으니 대량 구매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나중엔 얼음 없이 술을 타 마시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미적지근한 진 토닉은 목넘김이 아주 좋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잠이 확 깨는 매운 캔디 안졸리나는 한국에서도 팔까? 잘 보면 곰돌이 푸드라는 곳에서 만든다고 한다. 물론 처음 들어보는 회사다.







  보는 사람에겐 경이로우면서 동시에 내 것으로 하고 싶지는 않은 건축술이지만, 누군가에겐 소중한 터전일 테지. 몽콕의 아파트보단 훨씬 깨끗해 보인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패턴의 에어컨 실외기와 시멘트벽에 사람 냄새를 배게 하는 빨래는 여기도 다르지 않다. 빨래가 있기에 이 젱가나 레고 블록 같은 건물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







  홍콩 하면 분식집(?)에서 먹는 길거리 음식도 빼놓을 수 없겠다. 한 아이가 우리처럼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직각으로 놓인 양발의 안정감은 아이가 얼마나 익숙한 자세로 음식을 먹는지, 이게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토막인지 가늠하게 한다. 신기한 일이다. 나도 포장마차 앞에 서서 떡볶이를 먹을 땐 이에 못지않은 편안한 자세를 취할 텐데, 낯선 곳에선 한 번도 그래 보지 않은 사람처럼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저 자연스러움을 취하고 싶다는 이상한 욕구를 느낀다. 자신이 하는 행동 중 많은 부분이 이미 의식할 수 없을 지경까지 굳어졌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걸 깨부수기 위해 여행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고.







  호텔에서 완차이 로드까지 가는 길에서 이 계단이 제일 좋았다. 반쯤 햇살에 걸치고 반쯤 그늘에 젖은 풍경에서 헤아릴 길 없는 먹먹함을 느꼈다. 여기엔 여름이 있다. 그것은 내가 매년 느끼던 여름과는 조금 다르다. 땀이 나도 불쾌하지 않은 아량이 나의 미덕이 되고, 한동안 잊고 살았던 한낮 산책의 묘미가 되살아난다. 여름이 정말 싫다고 넌더리 치던 내가 이 순간만큼은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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