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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이번 우리 일정 중 가장 글로 옮기기 힘든 시간이 아닐까 한다. 토요일 밤, 란콰이퐁에서의 축제. 그저 맥주와 칵테일에 취해 춤추고 놀았을 따름인데 거기에 코멘트 붙일 게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자세를 고쳐잡는다. 사라진 징검다리처럼 밤 시간을 뛰어넘을 순 없지 않겠느냐고.





  여행 둘째 날 밤의 우리 일정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 완차이 어느 골목길에서 아주 싸고 맛있는 초밥집을 발견한 우리는 저녁으로 초밥을 먹었다. 그리고 진 토닉을 한 잔 만들어 마신 후, 곧바로 침사추이의 너츠포드 테라스로 향했다. 저번 여행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올 나잇 롱'이란 바에 가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영 흥이 나지 않았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스테이지에서 볼룸댄스를 추고 계셨는데 처음 한 시간 정도는 즐거웠지만, 그분들과 함께 올 나잇 롱하기엔 좀 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란콰이퐁으로 향했다.







  그런데 맙소사! 평소보다 사람이 훨씬, 정말 훨씬 많았던 것이다. 마침 란콰이퐁은 축제 중이었다. 세계 각국의 맥주 브랜드가 참여해 부스를 세우고, 꽤 저렴한 가격에 생맥주를 파는 맥주 축제였다. 순전히 운으로 얻어걸린 우리는 완전히 도취했다. 길거리 축제라니! 옥토버페스트 기간에 독일을 여행했었던 D는 차라리 이곳 축제가 훨씬 재미있다며 탄성을 금하지 못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맥주는 무엇인가? 사실 난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맥주 매니아라면 삼십 개가 넘는 부스에서 한 잔씩 다 마셔보았을 테지. 맥주를 파는 사람, 맥주를 사는 사람, 맥주를 마시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으로 이 좁은 골목이 꽉 찼다. 웃긴 건 맥주 부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일본의 콘돔 회사도 부스 하나를 차렸더라. 수백 명이 흥청망청 취하는 축제가 아닌가?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축제의 백미는 사진 속 남자가 들고 있는 저 긴 맥주잔이다. 플라스틱 재질에 목 끈이 달려있어서 굳이 들지 않고 목에 걸고 다니며 심심할 때마다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병목이 좁아서 흘릴 염려도 거의 없었다. 또 한 가지 웃긴 건 다음 날 홍콩 이곳저곳에서 여전히 저걸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을 봤다는 것이다. 아, 우리가 마신 맥주는 산 미구엘이었다. D도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딱 한 잔이 다였다.







  미리니름하자면, 몇 시간 후 사람이 좀 빠져 한가해졌을 때, 취한 나와 D가 이 자리에서 춤을 추었다. 캘빈 해리스의 「Feel So Close」에 맞춰서였다.







  맥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우리는 어느 골목길에 있는 바에서 술을 마시기로 했다. 가격이 그렇게 저렴한 편은 아니었는데 "맥주론 부족해!"를 한참 외치고 있었기 때문에 예거밤 세트에 눈이 갔다. 예거 마이스터 병을 주는 건 아니었고, 예거밤 6잔을 시키면 1+1으로 6잔을 더 주는 행사였다. 가격을 계산해 보니 12잔 가격으로 그리 나쁘지 않아 바로 주문 들어갔다. 알바생이 깜짝 놀라더라. 이걸 둘이서 다 마실 거냐고.

  "No problem. We sure. You'll see."

  그게 우리의 대답이었다.







  한 사람당 6잔은 가뿐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에너지 드링크 과용이 걱정될 뿐이지. 첫 잔은 가볍게 원샷을 하고 다음 잔부터는 각자 페이스대로 마시기 시작했다. 반쯤 바깥과 걸쳐있는 우리 자리에선 다른 술집에서 여름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아주 잘 보였다. 느낌이 좋았다. 바 안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거리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머리 위 어딘가에서 엉키는 혼란스러움이 좋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 네 잔을 넘어가면서 취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그러니까 길거리에서 춤을 췄지.







  바 안에도 사람이 꽤 있었다. 다들 즐거워 보였다. 우리도 즐거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마시는 사람은 없었다. 취하니까 그게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아주 귀여운 콘셉트로 마실을 나온 D. 다른 멋진 표정이 실린 사진도 많지만, 여기까지만 하자. 우리 둘 다 취했으니까.







  그렇게 예거밤을 각각 6잔씩 끝장내고, 거리에서 잠깐 춤도 추다가 편의점에서 또 맥주를 사 마시고, 잔뜩 취해 걸어서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사실 택시가 너무 안 잡혔다.) 저번 여행 때 센트럴과 붙어 있는 애드미럴티라는 동네가 어떤 곳인가 굉장히 궁금했었는데, 새벽녘에 그 소원을 풀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이 잔뜩 있는, 무슨 거대한 터미널 같은 이미지였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신 나게 걷던 우리는 결국 술이 좀 깨어 걸어가는 게 무리라는 데 동의했다. 둘째 날의 축제는 곧 우리 앞에서 멈춘 빨간 택시와 함께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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