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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갑작스럽게 돌아갈 시간이 됐다. 정리하다 보니까 셋째 날 낮 이후로는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어느새 출국을 위한 터미널에 있었고, 멍한 기분으로 게이트를 찾아 떠돌아다녔다. 어쩌면 이번이 진짜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허전함을 느꼈다. 어디든 만족했던 곳이라면 "언제 또 오겠어?" 따위의 맥빠지는 소리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었다. 인연이 닿으면 다시 오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다. "한동안 다시 오지 않을 거야." 전등에 매혹된 여름 벌레처럼, 피할 곳이 절실한 도망자처럼 홍콩에 또 오진 말자고, 여행 횟수가 줄어들 테니 여력이 된다면 그 기회를 다른 도시에 주자고 다짐한다. 여행을 떠나서 꼭 다시 오겠다는 의지를 불태워 본 적은 있어도 꼭 다시 오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워 본 건 처음이다. 이 정신 없는 도시가 그만큼 좋았던 모양이다.





  드문드문 홍콩 여행기를 올리고 있을 때, 누군가 그랬다. 무슨 홍콩을 몇 년 씩이나 여행하는 사람 같다고. 어쩌면 바득바득 여행기로 옮기려고 했기 때문에 세 번의 여행이 더 길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이었지만, 그래, 작업이 항상 즐거웠던 건 아니다. 내가 나한테 걸어놓은 의무가 더 컸다. 이상한 일이다. 정작 여행 동안엔 멋대로 돌아다녀 놓고선 돌아오고 나니까 여행을 가면 꼭 뭘 봐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일정을 진행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니 말이다. 나는 여행 중에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여행 후에 (여행기를 쓰며) 여행을 하는 사람 같다.







  전날 밤, 홍콩엔 비가 많이 왔다. 홍콩에서 이렇게 많은 비는 처음 봤다. 타임 스퀘어에서 삼십 분 동안 폭우가 쏟아지는 걸 지켜봤다. 우리뿐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건물 안에 모여 다 함께 비가 내리는 걸 봤다. 누군가는 음악을 연주했다. 나와 D는 어찌할까 어찌할까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어찌하지 못하고 빗줄기가 약해지기만 기다렸다. 그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우리는 남은 잔돈을 다 털어 초밥을 사고, 컵라면을 사고, 드라이 진과 섞어 마실 음료수를 산 다음 호텔로 돌아왔다. 드라이 진을 끝장내는 동안 밤에는 잠시 천둥번개도 쳤다. 색다른 기분이었다. 잊기 어려운 마지막 밤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찍은 마지막 홍콩 도심의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면 홍콩섬을 기준으로 공항보다 더 멀리 있는 '아시아 월드 엑스포란 전시회장'도 가본 적 없다. 관광객이 저길 갈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이상한 일은, 한동안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으면서도 새로운 장소를 볼 때 마다 "다음엔 저길?"이란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정을 떼기 어려운 도시다, 이곳은.







  대체로 한가한 2 터미널. 출국 심사 이후로 중립 지역에 들어간다고 한다면, 이곳이 우리가 홍콩 땅에서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우는 장소가 되었다.







  진에어는 본 터미널에서 떨어진 위성 터미널에서 탑승한다. 스타벅스가 하나 있고, 작은 면세점도 하나 있으며, 남자 화장실 옆으로 흡연실도 하나 숨어있다. 정확히 말하면 흡연실이 아니라 베란다인데 에이프런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진에어 출발 시간 즈음엔 뜨거운 햇살과 비행기 엔진에 달궈져 소용돌이 치는 바람을 그대로 맞게 된다. 또한 가장 복잡한 심경에 빠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 열 달 동안 홍콩에 세 번 왔다. 하늘에서 창밖을 보고 있자 꼭 열 달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있는 장소와 상관없이 홍콩과 함께 했던 길고 긴 여행은 여기서 막을 내린다. 집으로의 완벽한 귀환. 더 이상 뭣 모르고 짓까부는 내가 아닐 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바로 그때, 다시 홍콩으로 귀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 여행의 동반자 D에게 세 번째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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