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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서의 첫날, 의외의 일들로 반나절을 보낸 우리는 즉석에서 나머지 반나절을 위한 계획을 세워보았다. 벨베데레 궁전 방문, 호텔에서 휴식, 저녁을 먹고 시끄러운 술집에서 맥주 한 잔. 굵직굵직하게 자른 고깃덩어리처럼 넉넉한 일정표였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한다는 세목조차 없었다. 어딘가에 적어두거나 외워둘 필요도 없이 간단하고, 본능대로 움직이면 그만이니 실행에 옮기는 것도 쉬웠다. 마음에 쏙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 행선지인 벨베데레 궁전은 내가 가자고 고집한 곳이었다. 첫째 이유는 물론 클림트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였다. 파리에서 좋아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놓쳤던 기억이 떠오르며, 이번만큼은 그런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았다. 또한 두 번째 이유도 있었는데, 그곳 말고는 달리 갈 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다가 트램 D번으로 갈아타 Schloß Belvedere에서 내렸다. 한번 말한 건 반드시 지키는 사람처럼 정말 벨베데레 궁전 바로 앞에 있는 정거장이었다. 이름은 '어디 앞'인데 실상 한참을 더 걸어가야 하는 한국의 정류장에 익숙해진 탓인지 내리고 나서도 얼떨떨했다. 입구는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평범한 동네 골목 같은 곳에 궁전이자 빈에서 가장 유명한 갤러리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이곳에 벨베데레 궁전이 있다.

  입구 바로 옆엔 유료 화장실이 있었다. 친척 동생은 마침내 때를 만났다는 듯 용무를 보러 들어갔다. 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두루마리 휴지와, 약간의 돈을 받고 사람들이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남자 사이에 앉아 일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는 휴대폰 두 대를 가지고 끊임없이 무언갈 시도하는 중이었다. 그 외에는 간간히 물소리만 들릴 뿐 너무나 조용했다. 어쩐지 면회자 대기실 같기도 했고, 국경 중에서도 변두리에 있는 출입국 관리소 같기도 했다. 기계에 몰두한 남자완 달리 난 태연한 척하면서 그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화장실 앞에서 생판 모르는 남자와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상황이 생소하면서도 한편으론 흥미로웠다. 때마다 변기실의 빈 휴지심을 휴지 더미에서 새 걸로 교체하는 그의 일과를 상상해 보았다. 작은 LCD 화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보단 훨씬 무료한 일일 테지만, 반대로 누군가에게 있어선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물론 그가 깜빡하고 휴지의 교체 주기를 잊었다 하더라도 방문자들은 조급해 할 필요가 없었다. 점잖으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휴지가 떨어졌다고 외치면 이렇게 들어줄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다.


  덮인 벨베데레 정원은 쇤부른 만큼이나 황량해 보였다. 회색 하늘과 눈바다가 하나처럼 이어져 온 세상에 무채색의 커튼을 드리운 것 같았다. 하지만 벨베데레 상궁으로 시선을 돌리자 흰잿빛은 놀랍게도 캔버스로 변했다. 정면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클림트의 그림이 펄럭이고 있었던 것이다. 농담만 달리할 뿐 온통 회색만 가득하던 시야 안에 갑자기 화려한 색채가 떠올랐고, 이런 경향은 상궁 안으로 들어가자 극에 달했다. 자연이 잠시 붓 칠을 멈춘다 해도 인간이 짜낸 물감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 벨베데레 하궁이 보인다.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갤러리엔 마카르트, 쉴레, 발트뮬러, 코코슈카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골고루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홍보의 축이자 벨베데레의 아이콘은 단연 구스타프 클림트와 그의 작품 '키스'였다. 팜플릿과 입장권엔 상궁의 전경과 키스가 나란히 인쇄돼 있는데 두 이미지는 아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오후 2시의 박물관'의 저자인 성혜영은 한 기고에서 "클림트가 이끄는 빈 유겐트스틸이 19세기 후반 빈의 신바로크 양식과 미술 아카데미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일종의 저항적인 예술 운동이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정통 바로크인 벨베데레 상궁이 클림트의 작품을 전시하는 가장 유명한 박물관이 되었다는 점은 상당한 아이러니"라고 하였다. 그 말대로 전쟁 영웅의 별궁 태생인 건축물과 권력·전통에 반기를 든 화가의 만남은, 서로 반목할 수 있는 가치가 세월의 흐름에 힘입어 화합하게 되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셈이다. 게다가 복잡한 뒷이야기야 어쨌든, 이곳의 작품들이 많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벨베데레 상궁.

  어디선가 자꾸 고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했다. 2층의 붉은 대리석 홀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가자 거대한 샹들리에가 인상적인 마블홀이 나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홀 한쪽에 서있는 표지판이 '정숙'하라고 요구하는 대신 '할 수 있는 만큼 소리를 지르라'고 부추기고 있었던 것이다. 옆방에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한 가득인데, 있는 힘을 다해 그들을 방해하라고? 하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내가 망설이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한 여자 안내원이 어서 해보라고 손짓했다. 웬지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 짧게 외마디 소리만 내질렀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내원이 지휘자처럼 좀 더 크게 외쳐보라는 제스처를 취할 때마다 나는 열심히 그에 따랐다. 그러나 난 형편없는 연주자였다. 보다 못한 그녀가 직접 입을 열어 더 크고 높게 소리치라고 말했다. 너무 많이 시범을 보여준 탓인지 잔뜩 쉰 목소리였다. 그래도 내가 해내지 못하자 그녀는 포기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 때 내 뒤로 들어온 한 남자가 마치 산꼭대기에 올라온 것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아-'하고 외쳤다. 그러자 홀 전체에 숨소리가 울려 퍼지고, 샹들리에의 불빛도 그에 맞춰 깜빡이기 시작했다. 아하! 그냥 소리만 커서 되는 게 아니라 일종의 '낮은' 주파수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몇 년 동안 그렇게 연습했던 대로, 배에 힘을 주고 발성을 사용하여 우렁차게 포효(?)했다. 그러자 나의 고함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듯 홀은 또 한 번 거친 숨을 쉬었다. 나의 지휘자는 이제야 제대로 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어가면 우리는 자연스레 목소리를 낮추게 되고 몸짓을 정돈하게 된다. 전시물이 얼마나 깊은 감명을 주느냐와 상관없이 그런 곳들엔 사람을 내리 누르는 무거운 공기가 가득하다. 그러니 절대로 정숙해야 할 것 같은 왕가의 궁전에서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를 수 있을 때, 강렬한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하에 처박힌 노래방이나 높은 산 정상이 아니면 어디 우리가 소리 지를 만한 곳이 있던가. 막힌 숨을 트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거대한 체험형 설치 예술의 이름도 'breathe'였다.

  소리를 지른 덕분인지 작품을 감상하는 나의 자세가 훨씬 말랑말랑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것도 감상에만 몰두하는데 도움이 됐다. (그래서 이번 편엔 사진이 거의 없다.) 전시된 회화들은 다양했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사랑 받고 있는 빈 분리파의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중세부터 바로크, 18~19세기의 고전, 낭만, 인상주의 등 다양한 시대의 미술사조가 모여 있었다. 거의 대부분 처음 보는 작품들이었지만 광고에도 차용되곤 하는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나 모네와 마네, 르누아르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낯익은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나 같은 문외한도 거의 퇴화되다시피 한 미적 감성을 되살리는 기쁨에 빠져들 수 있었다.
  사실 미술 감상은 그리 요원한 취향이 아니다. 알면 알수록 더 많이 보이거나, 또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별다른 지식이 없더라도 우리는 그림 앞에서 모종의 자극을 받곤 한다. 그것은 충격일 수도 있고 감동일 수도 있으며 기쁨이나 슬픔, 공포나 혼란같이 세세한 감정일 때도 있다.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 그림에 매혹돼 한참 동안 그 앞에 서 있을 수도 있다. 미술은 지식이기 이전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모아 놓은 선과 면, 색과 명암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선과 색을 받아들이는 덴 눈과 마음이면 충분하다. 앎은 그런 것들을 보는데 있어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것이 왜 그렇게 그려졌는지 몰라도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순 있다. 아름다워 보이는 걸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무엇이 어렵겠는가!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 길'. 1902. Claude Monet.


  시물을 배치한 사람이 의도하고 그것을 보러 온 사람이 기대하는 바대로, 빈 분리파의 작품을 감상할 차례가 되자 마치 영화의 클라이맥스 지점에 온 것 같았다. 어쩐지 음울하면서 어딘가 아파보이는 (그래서 매력적인) 에곤 쉴레의 작품을 지나 클림트를 만났다. '물뱀 I', '유디트 I', '온 세계에 보내는 입맞춤', 그리고 '키스'. 전시실 한 가운데 황금색을 두른 두 남녀가 서 있었다. 인터넷의 작은 사진이나 책자에서 보던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거의 나만한 크기의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인쇄물보다 생생했다. 유화 물감과 금박이 만들어 낸 이 아름다운 회화는 차라리 살아 숨 쉬고 있다고 표현하는 편이 어울렸다. 오랫동안 그림 앞을 떠나지 못했다. 키스가 가장 유명한 클림트의 작품이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제로 가장 아름다웠다.
  이런 감동은 단순히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진짜로 봤기 때문에 일어난 것만은 아니다. 머나먼 이국땅에 와 있다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낯선 곳에선 자기 자신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익숙한 것 투성이 속에 있다가 익숙한 거라곤 자기밖에 없는 국면으로 넘어 온 까닭이다. 그럴 때 낭만적인 기분에 휩싸이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주변의 모든 걸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립감 속에서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왔나하는 의문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모순된 상태는 서로 번갈아가며 찾아오면서 큰돈을 들이고 몇 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온 짓이 과연 잘한 일인가 못한 일인가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런데 이런 고민 속에서 평소 좋아하던 작품이나 사람을 감동시키고도 남을 엄청난 건축물을 보게 된다면, 그 강렬한 힘은 잠시나마 혼란을 종식시켜 준다. 대상에게 매혹당하는 건 물론 내심 '내가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이 먼 길을 왔구나'하는 깨달음(또는 착각)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손바닥 만한 그림을 보고 마치 성지 순례를 온 것 같다며 감격한다 해도,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있다. 여행이라는 패키지 안엔 이런 진실(또는 과장)이 주는 성취감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아쉬운 대로 붙여 보는 클림트의 '키스'

  클림트의 세상 앞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낸 다음 관람을 마무리했다. 친척동생은 바깥 풍경을 찍겠다며 궁전을 나섰고, 나는 1층의 기념품 판매점에 들어갔다. 도록부터 시작해 거울, 컵, 가방, 열쇠고리, 필기도구 등 모든 것이 클림트의 그림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자개를 발라놓은 듯한 거울이 마음에 들었지만 너무 작아서 포기하고 대신 엽서를 골랐다. 실물만큼은 못해도 나름 색이 선명하게 잘 드러난 '키스'의 엽서였다. 비록 복제품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보았던 그 찬란한 황금빛을 기억하는 한,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리라. 그런 기대와 함께 계산대로 향했다.


  베데레 궁전에서 나오자 엄청난 피로가 몰려들었다. 남들은 몇 번씩 잘도 타고 다니는 야간열차라는데, 우리는 후폭풍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체크인 시간도 지났겠다 숙소로 귀환했다. 어쩐지 도시 변두리의 베드타운 같은 느낌이 드는 Matzleinsdorf 역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마땅히 흥미를 끌만한 것이 식당 겸 주점과 고가도로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호텔로 들어갔다. 짐을 내팽겨 치고 침대에 쓰러지자 표백제 냄새가 묻어있는 하얀 시트가 온통 내 세상 같이 느껴지며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오랫동안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원할 때마다 며칠씩 한 곳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곤 하겠지. 차마 그럴 용기는 내지 못하고 그들을 부러워하기만 했다.

Matzleinsdorf 역에 그려진 평화의 벽.

  피로도 풀 겸 번갈아 씻기로 했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 먼저 들어간 친척 동생을 기다리며 녀석이 나오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눈을 뜨면 바로 욕실로 들어가야 하는데 가족 중 누군가가 세면대를 사용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와 눈 뜨길 유예 받을 수 있는 아침과 비견할 만한 순간이었다. 클림트의 작품도 보았겠다 오늘 빈에서 할 일은 끝났다고, 이제 낮잠을 자도 된다고 자신을 속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며칠만 지나면 집에 돌아가 마음껏 쉴 수 있다는 막연한 위안 때문에라도 지금은 일어나야 했다. 남은 일정이 전혀 힘들 일 없다는 것도 도움이 됐다.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술집 한 군데를 찾아가는 것, 그게 전부였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며 재출격할 준비를 마쳤다. 겨울, 눈, 궁전과 미술. 몇 가지 단어를 손에 쥐었지만 아직 빈의 이미지는 모호하기만 했다. 이제 사람들 속에 파묻혀 맥주 한 잔을 기울이다보면 나머지 퍼즐 조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PS.
점점 길어집니다, 점점. 하루가 세 편으로 나눠 올라가다니...
어쨌든 다음은 빈의 첫 날, 저녁 편입니다 :D


핑크색 캡션 사진은 fujifilm F50fd으로
푸른색 캡션 사진은 Canon A-1 + superia 200으로 촬영했습니다.
F50fd 사진은 필름과 느낌을 맞추기 위해 크롭 및 보정을 했습니다.
초록색 캡션은 제가 찍지 않은 기타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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