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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인플레를 싫어한다고 하고 연인들도 그럴지 모르지만, 적절하게 기능하는 연애 경제를 위해서는 인플레가 유용한 때도 있을 것이다. "아니, 저기요. 미안하지만 두통이 나서/남자 친구가 있어서/여자 친구가 있어서/속이 불편해서 오늘 밤은 여기서 헤어져야겠네요."라고 말하는 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면 상대는 진정한 사랑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고 아쉬워할 것이다. 한쪽에서 '내가 부족해. 저이는 과분한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게 된다면 상황은 유리할 것이다. 그제야 유혹하는 쪽에서 초콜릿을 사고, 깊이 한숨지으며 '세상이 허락된다면, 시간이 허락된다면, 그대여, 이 아늑함은 죄가 아닐지니…' 하는 시를 쓰는 것이다.

  사랑을 사랑하는 연인은 단순히 X가 멋지다고 여기지 않고, 'X처럼 멋진 사람을 찾아냈다니 대단하지 않아?' 하는 생각을 먼저 한다. 에릭이 배터시 다리 중간에서 걸음을 멈추고 구두끈을 맬 때, 앨리스는 '구두끈을 매는 모습이 귀엽잖아?" 라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귀엽게 구두끈을 매는 사람을 찾아내다니 이게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내 눈은 맘에 안 들어'는 그다지 좋은 예가 아니다. 육체와 자아 관념의 불일치는 단순히 눈이 마음에 안 드는 정도를 넘어서니까. 그것은 좀더 심리적이고 존재론적인 문제다. '이 눈은 내가 아니야' 라는.

  앨리스도 거대한 기계를 타고 런던에서 바베이도스까지 한나절 만에 날아갈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인정했지만, 밑도 끝도 없이 열광하지는 않았다. 정밀 공학이 근본적인 것을 바꾸지는 못했다. 워싱턴 주 시애틀 시에서 보잉기의 날개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집단이며, 그들은 배우자를 속이고, 까탈을 부리고, 질투하고, 경쟁을 벌이고, 불안정하고, 매일 화장실을 가고, 결국 죽는, 고도로 진화한 유인원 집단일 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잊지 않았다.

  왜 실제 여행 경험은 그토록 기대와 다른지, 섬과 호텔이 훌륭함에도 왜 계속 혼란스러운지 의아한 까닭은, 그녀가 짐을 꾸릴 때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두고 오는 걸 잊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탠로션이며 자기계발 책, 비키니 수영복과 선글라스를 싸면서, 자기 자신까지 챙겨왔기 때문이었다.

  앨리스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있으면 흥미로운 인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스스로 아주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결론지었다. 에릭과 같이 앉아 저녁을 먹을 때면, 적당한 상대만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리라는 자신감을 잃고,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ㅡ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 말하고 싶어할 수 있는 것까지 타인이 결정한다는 증거다.

우리는 사랑일까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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