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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식당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어 기쁘다. 터미널 21 건너편 쪽 골목길 안에 자리 잡은 이곳은 태국 음식을 저렴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이름 높다고 한다. 시설은 낡고 그리 위생적으로 보이지도 않지만, 종업원들이 친절했고 영어도 곧잘 했다. 이곳 역시 현지인보다 외국인이 훨씬 많은 장소이기도 했다.
거의 빈자리가 없었지만, 운 좋게 안쪽으로 안내를 받았다. 팟타이와 푸 팟 퐁커리, 그리고 태국 위스키인 쌩쏨과 소다수를 주문했다. 물론 고수는 넣지 않았다. 고수만 빼면 나는 태국 음식이 꽤 잘 맞는 편이다. 특히 특유의 길쭉하고 찰기 없는 쌀이 좋다. 진밥보단 된밥을 좋아해서 그럴까. 팟타이는 달지 않고 오히려 시큼한 편이었고, 푸 팟 퐁커리는 입맛에 잘 맞았다. 오히려 D가 태국 음식이 잘 안 맞는 편이다. 여행 전, 우리는 논현동에 있는 반피차이라는 태국 요리 전문점에서 회합을 했는데, 그때 적응(?)한 게 도움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서울에 비하면 정말 싸게 먹는 셈이고.
어쨌든 쌩쏨 한 병에 시원하게 취해가고 있는 와중에 한 서양 여성이 자리가 없어 우리 테이블 옆자리에 합석했다. 헝가리 출신으로 지금은 런던에서 데이터 아날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 그러고 보니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다. - 그린 커리를 주문했다. 나로서는 딱 질색인 바로 그 메뉴였다. 무려 6주 동안 태국과 캄보디아를 여행하다가 내일 런던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친구들과는 조금 일찍 헤어지고 혼자 여행을 계속한 모양이었는데 마지막 저녁을 이 맛있는 식당에서 먹고 싶었다고 한다. 6주! 나와 D의 일정은 4주에 불과하건만! 역시 유럽의 휴가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 것인가.
이 도시에 온 많은 여행자들이 그렇듯, 그녀도 세상 이곳저곳을 천천히 돌아다니는 게 인생의 목표라고 했다. 한국에 가봤느냐고 묻자 아직 가보지 못했으며 잘 모르기도 한다고 대답했다. - 약간 슬펐다. 한국 관광 공사가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 - 언젠가 한국으로 여행을 오라고 권하면서 속으로는 내가 외국인이라면 우리나라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으며 무엇을 할지 상상해 보았다. 서울이라면 멋지고 아름다운 젊은이들을 구경하며 밤새도록 술을 마시겠지. 뭐,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었든 고즈넉한 고궁은 좋아했을 것이다. 반면 도시는 더럽게 크고 지하철 노선도는 끔찍하게 복잡하다며 툴툴거렸을지도 모르겠다. 산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도시를 벗어난다면 바다로, 남해로 내려갈 것이다. 외국의 흥청망청한 해변과는 다른 조용한 바다를 바라보며, 부두와 선창에 다닥다닥 정박한 낡은 배를 카메라에 담으며, 나와 같은 이방인을 거의 찾을 수 없는 세상을 돌아다닐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먼저 일어난 그녀에게 조심히 집으로 돌아가라고 인사했다. 그녀는 지갑에 남은 40밧을 보여주면서 이걸로 내일 아침까지 지내야 한다고, 그러니까 이걸로 코코넛 주스를 사 마시겠다고 웃는다. 아, 내가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지갑에 남은 약간의 지폐로 무엇을 먹겠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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