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저녁 무렵의 카오산 로드. 우리는 마카로니 클럽에 가서 버킷으로 술을 마시며 흥을 돋우다가 로띠와 마타바를 먹으러 길을 나섰다. 그러다가 방향을 잘못 틀어 멀리까지 흘러갔다가 돌아와 결국 유명한 곳에서 태국의 간식을 먹어 보았다. 굉장히 지쳐있었고,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어디에 들어갈지도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일단 더 허브라는 펍에서 가볍게 한 잔을 더 한 후, 카오산 로드 한 가운데에서 가장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마주보고 있는 두 술집 중 한곳에 들어갔다. 음악 소리가 얼마나 큰지 테라스 쪽에 앉은 이들 중 흥을 못 이기는 이들은 물론 그 사이를 지나다니는 행인들도 잠깐씩이라도 춤을 추다가 지나갈 정도였다. 사람들은 카메라로 춤을 추거나 새카맣게 앉아있는 취객들을 찍기도 했다. 내심 카오산 로드에서 홍콩 란콰이퐁의 광란(?)을 기대했었는데 그보단 얌전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평일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두 곳만큼은 그에 못지 않은 즐거움이 있었다. 술은 빠르게 줄어들고, 다른 테이블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키가 크고 마른 어떤 남자는 친구가 보는 앞에서 풍선에 든 약을 마시고 있었다. 풍선을 불진 않고 숨을 들이키고 있으니 그 모습 또한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점점 정신줄을 놓고 세상에서 이탈하는 그의 표정과 붉어진 피부를 보니 웃을 수만도 없었다. 그리고 놀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여인과 심드렁하기만 한 그녀의 애인이 우리 옆에 앉았다. 남자는 이 사람 저 사람 다 어울리려는 여자 - 어쩌면 애인이 아니라 그냥 여기서 만난 일행일지도 몰랐다. - 때문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듯 보였다. 게다가 건너편 술집에서는 완연히 한국인들로 보이는 너댓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쉬지 않고 춤을 추고 있었다... 역시 음주가무의 민족이 아닐 수 없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자정이 되자마자 음악 소리를 줄이더니 인도에 깔아둔 탁자와 의자를 모두 치웠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안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그냥 그 자리에 서서 하던 일들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와 D는 인도가 아니라 '가게에 포함된 영역'에 앉아 있어서 자리를 옮길 필요는 없었다. 이윽고 순찰차가 지나갔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 또는 그냥 관례적으로 자정이 되면 파한다는 시늉을 하려고 - 음악을 끄고 인도를 비워준 것이다. 그러나 웬걸. 순찰차가 카오산 로드를 완전히 빠져나가자 다시 음악 소리가 커지고 자리를 깔기 시작했다. 그랬다. 그냥 눈속임이 맞았던 것이다. 그러다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건물 바깥 자리까지 모두 치우고 실내로 이동해야 했다.
술에 취한 사람, 약에 취한 사람, 사람에 취한 사람, 그들을 구경하기 위해 온 사람,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여기에 존재하러 나타난 사람. 가없는 자유보단 시작도 끝도 없는 혼란이 카오산 로드의 모두를 집어삼켰다.

'여행 > 2015 태국,라오스,베트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방콕 시암 파라곤  (0) 2015.04.03
:: 여행 중 글을 쓴다는 것  (4) 2015.04.03
:: 방콕 iSanook  (0) 2015.04.02
:: 방콕 수다 레스토랑  (0) 2015.04.02
:: 방콕 스쿰빗 소이 12  (0) 2015.04.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