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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기차역에서 내렸을 때, 잠깐 방콕과는 다른 나라로 온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느꼈다. 어떤 색다른 풍경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열차에 있다가 밖으로 빠져나와서 그런 모양이었다. 하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조용하고 한적하다는 건 사실이었다.
플랫폼으로 쏟아져 나온 각국의 여행자들은 무거운 배낭을 흔들며 인포메이션 부스에서 지도를 얻고 자기가 가야 할 곳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특히 서양인들의 60, 70리터 짜리 배낭은 압도적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여행을 하길래, 도대체 무엇을 그리 챙겨다니길래 저 큰 가방이 꽉 차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을 먹고 다니길래 저 큰 가방을 초등학생 책가방 메듯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이번 여행에 45리터 배낭을 선택했는데, 내 체격엔 그 정도가 딱인 것 같았다. 기념품은 하나도 못 샀지만 말이다.
우리는 치앙마이 숙소를 미리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구시가지로 이동해 론리플래닛에서 추천한 호텔의 방을 알아보자고 결정했다. 역 바로 앞에서 우리의 행선지를 들은 툭툭이 운전사는 둘이 합쳐 200밧을 불렀다. 지체없이 그를 지나쳤다. 땡볕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이번엔 어떤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와서 둘이 합쳐 100밧을 불렀다. 그것도 비싼 감이 있었지만, 일단 아까보단 절반이나 싸니까 오케이를 외쳤다. 아저씨는 자신의 툭툭이로 우리를 데려가더니 담배까지 한 개비씩 권했다. 오, 이런 친절을 봤나!? 우리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소도시(?)의 인심은 후하다며 구도시로 향하면서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너무 시끄러워서 서로 알아들으면서 말을 하는 건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치앙마이는 방콕보단 훨씬 차가 적었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길을 막기 일쑤인 오토바이도 드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시가지에 도착한 우리는 아저씨와 작별한 후 책에서 본 호텔을 찾아갔다. 그런데 맙소사, 책에 적혀있던 가격의 거의 두 배였다. 그 값이면 방콕에서 처음으로 묵은 레지던스보다도 비싼 셈이었다. 우리는 호텔을 나와 아까 툭툭이에서 광고지로 봤던 란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에어컨이 달린 트윈룸이 하루에 500밧. 한화로 이만 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우리는 바로 방을 잡았다.
방은 사방이 나무로 되어있었고, 자물쇠로 문을 잠가야 하며, 화장실 수압은 턱없이 약하고, 그 안에 작은 도마뱀도 한 마리 살고 있었다. D는 예전에 유럽 게스트하우스에서 베드벅에 물린 경험을 떠올리며 침대를 의심스럽게 쳐다보았지만, 결과적으로 벌레가 득실거리는 침대는 아니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에어컨이 좀 시원찮긴 했으나 종일 켜두니 밤에는 추울 정도였다. 차례대로 샤워를 했는데, 물이 미지근하고 수압이 약해서 D의 표현을 빌리자면 "샤워를 하면서 땀이 나는" 기분이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할 일은 없어 보였지만, 일단 온수기도 작동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전원 스위치가 따로 있다는 걸 발견하고 가동해보았는데 이놈 성능 하나는 끝내줘서 엄청나게 뜨거운 물이 졸졸대며 나왔다.) 그리고 오후 세 시가 넘어서야 점심을 먹기 위해 산책을 나섰다.
치앙마이 구시가지의 거리는 한산했다. 여행자들은 다 액티비티나 시외 사원에 가기 위해 도시를 뜬 모양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음료수를 들고 다녔고, 곳곳에 위치한 여행사 벽엔 온통 들뜬 표정의 모델들이 집라인을 타거나 호랑이를 만지고 있었다. 나는 그다지 활동적인 사람이 아닌지 그 모델들처럼 밀림 속으로 뛰어들거나 며칠에 걸쳐 트래킹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차라리 그런 광고 사진을 구경하며 한적한 마을을 걷는 편이 훨씬 좋았다. 방콕과 마찬가지로 덥긴 했지만, 습도는 낮아서 견딜 만했다.
멀리 가지 않아서 눈에 띄는 곳을 발견했다. 미스 코너리란 곳이었다. 파스타를 팔길래 마음이 혹해 D와 함께 들어갔다. 방콕 iSanook에서 태국식 스파게티에 당황했던 기억을 무시하고 기대에 부풀었다. 크림, 이탈리안(토마토), 스파이시(굴 소스) 등등 구색이 잘 갖춰져 있었다. 나는 닭고기가 들어간 스파이시 소스 파스타를, D는 볶음밥을 주문했다. 먼저 나온 건 내 파스타였다. 스파게티 면보단 통통하고 우동보다는 얇은 파스타에 굴 소스와 후추, 그리고 태국의 매운 고추가 듬뿍 얹어져 있었다. 파스타 하나에 이렇게 긴 설명을 쓰는 건 정말 맛있게 먹었기 때문이었다. 태국 고추도 곧잘 먹는 나는 입안이 얼얼한 것도 무시하고 D의 볶음밥이 나오기도 전에 한 접시를 다 비워버렸다. 양이 많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먹어도 허기가 졌다. 그래서 D와 나눠 먹기로 하고 토마토소스가 들어간 새우 파스타를 한 접시 더 시키고 말았다. 나이가 들고 보니 사실 파스타 매니아(?)였던 나는 언제 또 이런 맛을 만날지 모른다면서 후회를 남기지 않기로 했다. 접시당 75~85밧(한화로 약 삼천 원)이니 부담도 없었다. 한국에선 이 돈에 라면도 못 먹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토마토소스 파스타 역시 다소 달기는 했지만, 훌륭한 요리였다. 우리는 - 아니 나는 - 잔뜩 기분이 좋아져 매일 아침을 이곳에서 먹어도 되겠다고 선언하고 말았다. (물론 그러지 않았다. 아침을 먹은 적도 없다.)
치앙마이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땀은 적당히 솟았고, 사람도 적당히 거리를 오갔다. 밤에 갈 펍도 미리 봐 둔 우리는 구시가지를 둘러싼 해자 동쪽 가운데에 위치한 타페문까지 걸어갔다. 시가지엔 방콕보다 나무가 많았고 그들의 잎사귀도 더 크고 풍부했다.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없는 건물도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주황색과 분홍색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빛깔로 낙조가 깔리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을 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사람과 차는 많지는 않을지언정 끊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들 치앙마이에 오래 머물며 해가 지는 풍경을 많이 본 탓인지 누구도 그 아름다움에 시선을 던지거나 걸음을 멈추는 이가 없었다. 나는 그 무심함조차 좋았다. 그것은 자연과 시간이 부리는 조화가 이곳에선 일상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고고한 석양조차 삶의 일부일지어니. 풍부한 오렌지빛을 반사하는 진한 녹색 이파리들이 바람에 사각거렸다.
아마도 치앙마이 안에선 가장 클 왓 쩨디 루앙 사원에서는 이방인을 친숙하게 여기는 어린 승려들도 만났다. 기꺼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 주는 아이 중에는 깜짝 놀랄 미모를 지닌 녀석도 있었는데 본인 스스로도 저가 사진발을 잘 받는다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사진을 찍고 화면을 보여주자 만족한 표정이었다. 잘 생긴 아이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들을 지나친 우리는 잠시 벤치에 앉아 거대한 석재 구조물을 바라보며 한가로운 휴식을 취했다.
해가 완전히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을 즈음, 반대편 서쪽 해자까지 제법 적지 않은 길을 걸었다. 물론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모기향과 면봉, 휴지 따위를 사서 들어왔다. 생필품을 사는 횟수가 늘었고, 나날이 여행에 길이 든다는 게 느껴졌다. 모기 걱정에 시달리면서도 나 역시 해가 지는 치앙마이의 풍경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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