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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의 밤 일정은 예상했던대로 조용했다. 친절한 가이드는 우리에게 삼십 여 분의 샤워할 시간을 줬다. 그리고 스피링롤을 직접 만들어 먹고 저녁을 먹은 후 원하는 사람은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나와 D는 번갈아 씻고 몸 상태를 점검했다. 바닷바람은 차가웠다. 더운 것보단 훨씬 낫지만, 바람을 많이 맞다보니 훨씬 더 피로해지는 것 같았다. 샤워를 일찍 끝내고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맨 위 갑판 선 베드에 잠시 누워있었다. 엄청난 수의 별을 기대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미리 올라와 있던 사람들은 이 순간이 아주 좋다는 대화를 나눴다. 다들 친절했고 친화적이었으며 서로에게 너무 많이 간섭하지도 않았다. 배는 한 군데 닻을 내리고 정박해 바람에 따라 천천히 제자리에서 돌았다. 멀미는 나지 않았고 파도는 잔잔했다. 배 위에서 자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곧, 승객과 주방 모두 준비가 되자 스피링롤을 만들기 시작했다. 와인도 한 잔씩 무료로 내어주었다. 가이드가 먼저 스피링롤을 만드는 시범을 보여줬는데 역시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리가 한국에서 월남쌈을 먹을 때 나오는 얇고 동그란 쌀판을 물수건에 적셔 부드럽게 만든 후, 쌀국수와 계란, 오이, 당근, 삶은 돼지고기와 야채 등을 넣어 말기만 하면 된다. 말다가 양쪽 가를 접어 전체적으로 네모낳게 만들면 그걸로 끝. 내가 김밥을 잘 마는 건 아니지만, 김밥을 워낙 많이 먹어 본 경험에 의거해 아주 쉬웠다. 게다가 이게 내 입맛에 제일 잘 맞는 거 같아 쌀국수를 두 번이나 넣어 두껍게 말아 먹었다. 그냥 스피링롤로 배를 채워도 무방할 것 같았다. 물론 야채 소에 고수가 들어있어 그건 단 한 줄도 넣지 않았다. 빈속에 와인도 마시니 기분도 좋아졌다. 다음 여행에선 와인을 좀 많이 마셔봐야겠다.
스피링롤 이후에는 저녁 식사가 나왔는데 튀김 위주였다. 심지어 고수가 들어간 돈까스를 포함해 생선살, 오징어 따위가 튀겨져 나왔다. 아무래도 주방 시설이 협소한 배 안에서 가장 요리하기 쉬운 음식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다양한 문화, 다양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두루두루 만족시키는 데도 튀김만 한 게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 뭐든지 튀기면 맛있어진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런 선상 식사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튀김 하나에 간장을 잔뜩 묻힌 후 밥에다 문질러 먹는 것이다. 원래 밥에 간장 비벼 먹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튀김의 달달한 맛이 얹어진 이 맛을 끊을 수가 없었다. 여행 중간 체중이 2kg 정도 줄었는데 이러다가 도로 회복되는 건 아닌가 무서울 정도였다. 그만큼 활동량이 많다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식사까지 끝나자 모두 뿔뿔히 흩어졌다. 베트남 아주머니들은 선원들과 노래를 불렀고, 나와 D는 갑판에 앉아 낚시대를 드리우고 오지 않는 오징어를 기다렸다. 선원들이 이미 몇 마리 잡은 모양이었지만, 우리는 단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그저 바닷속을 떠다니는 작은 물고기들과 해파리만 보았을 뿐이다. 나는 십오 분 정도 시도를 하다가 포기하고 객실로 돌아왔다. D는 내가 들고 있던 낚시대까지 두 개를 양손에 쥐고 있었으나 그래도 수확은 없었다. 하긴 잡는다고 그걸 회로 쳐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기대했던 파티는 없었지만, 소소한 일들로 밤을 보낸다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저 우리의 운을 탓하다가 이내 수긍할 수밖에. 침대는 편안했고 느리게 움직이는 선체는 요람 같았다. 할것도 없는데 글이라도 많이 쓰려고 했지만, 나는 금세 잠이 들었다. 어느덧 샘내지 않는 법을 배우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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