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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라오스에선 한국차는 물론, 한국 중고차도 자주 볼 수 있다. 연식이 오래된 중고를 싸게 수입해 오는 모양이었다. 중고임을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차 이곳저곳에 붙은 한글 스티커나 코팅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처음에 난 왜 그런 것을 뜯지 않았는지, 왜 '자동문'을 그대로 남겨두었는지 궁금했다. 어떤 동경일까, 그저 무신경일까. 그러다가 내가 만약 외국에서 건너온 중고차를 한 대 샀는데 거기에 전 소유주가 붙인 스티커가 남아있다면 그걸 어떻게 할까 상상해 보게 됐다. 그러자 조심스레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건엔 역사가 있다. 표면의 흠집이나 삐걱거리는 구동 기관의 한숨, 또는 주인이 남겨 놓은 이런저런 표식 따위가 그것이 사용돼 온 세월을 가늠케 한다. 원래 중고품을 애용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내게 오기까지 거친 일생을 인정해 주고 싶어하는 편이다. (당장 지금 들고 다니는 카메라와 렌즈도 중고로 산 것들이다. 여기서 보다 오래 전에 산 필름 카메라용 수동초점 렌즈에 더 많은 애착을 느낀다.) 전혀 알아볼 수 없는 문자가 쓰여있어도 그것을 지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엔 전소유주의 특성이나 성격이 묻어있을 테고, 물건이 어디서부터 왔는지에 관한 미약한 힌트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라오스나 베트남 사람들도 먼 나라에서 실어온 기계에 나와 비슷한 존중을 표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무리 중고라 해도 필요가 있는 물건은 소중하다. 오로지 실용적인 관점으로만 볼 땐 그것에 붙은 스티커나 코팅지 따위가 상관있을 리 없겠지만, 감정이 들어가면, 그러니까 애정을 가지게 되면, 사소한 부분 하나까지 그대로 보관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 나는 고국에서의 삶을 마치고 이 먼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한 기계들이 새로운 주인에게 감정 어린 취급을 받길 바랐다. 낡고 저렴해서 더 유용한 사물. 나름의 역사가 깃든 사물. 그리고 지나간 시절을 환기시키는 사물. 그것들은 우리를 둘러싼 채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를 기만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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