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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은 유통기한이 십 년이나 지나 있었다. 그걸로 오키나와를 찍자 그곳은 십 년 전,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시절로 돌아가
버렸다. 십 년, 이십 년, 또는 삼십 년 전으로. 내가 오키나와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앳된 시절로. 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그저 크기만 줄여주면 그만이었다. 더는 손댈 곳이 없었고 손을 댈 수도 없었다. 그 간편함이 좋았다. 간편하다고 가벼운 건
아니었다. 왜 하필 황토색으로 물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처음 오키나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하늘은 파랗고 또 파랬는데 말이다.
나와 M은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쨍한 사진도 수백 장이지만, 벌써 그 시간이 아련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필름 사진이 더 사실적이었다. 사람이 기억하는 방식은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의 결과물과 비슷할지 모른다. 색은 바래고 몇몇 부분만
또렷하게 남는다는 점에서. 뿌예서 되레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행의 기록을 남기기 전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은
여행이었다. 너는 어디 가기만 하면 좋았다고 해서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변명을 하노라니, 나는 십
년이 지난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어떤 퀴퀴한 현상 과정을 내내 간직하고 다녔던 것이다.
Leica Minil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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