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스카이의 짧은 유럽 여행기 (5) - 파리, 셋 그리고 하나 더] 보기 딸깍. 전화가 끊겼다. 그녀에게 이제 곧 베네치아행 비행기를 탄다고 말한 참이었다. 샤를 드 골 국제공항 터미널 2-F. 나는 12시 35분 출발 예정인 에어프랑스 1726편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지금껏 심술 맞게 굴었던 태도가 미안했던지 격자형의 철골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파리에서 본 것 중 가장 밝고 힘이 넘쳤다. 터미널은 거의 만원이었다. 게이트 앞 좌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자신이 왔던 곳으로,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떠날 준비에 한창이었다. 수면 부족을 만회하거나, 인터넷 존에서 노트북을 이용하거나, 잡지를 보거나, 또는 무언가를 쓰면서 말이다. 사실 탑승을 기다리는 승객이 터미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
[바닐라 스카이의 짧은 유럽 여행기 (4) - 파리, 셋] 보기 Saint-Michel 역 앞에 다시 섰을 때 나는 차라리 울고 싶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오르내리느라 배가 무지막지하게 고팠고, 비에 젖어 축 가라앉은 옷 때문에 몸은 으슬으슬했기 때문이다. 일단 뭣 좀 먹자는 심정으로 정처 없이 남서쪽으로 걸었다. Saint-Michel 역에서 Saint Germain des prés 역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좁은 골목길엔 정말 수 없이 많은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곳도 많았는데 한쪽 테라스에 앉은 사람이 반대편 테라스의 손님에게 말을 걸 수도 있을 정도였다. 카페의 조명은 습기에 찬 대기 속에서 차분하고 농도가 짙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을 오랫동안 쬐며 걷고..
바닐라 스카이의 짧은 유럽 여행기 (3) - 파리, 둘 그리고 하나 더] 보기 겨울이 되면 프랑스는 우기에 접어든다. 특히 북부 지방에 비가 자주 내리는데 파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파리 사람들은 가벼운 비 정도는 그냥 맞고 다닌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흐린 하늘을 보게 되면 이곳 사람들은 우산을 챙겨 나갈까 아님 곧 세탁을 해야 할 두터운 코트를 입고 나갈까. 파리에 머물렀던 나흘 내내 날씨가 맑은 적이 없지만, 우산을 들고 나온 이들을 본 적도 없다. 그런 걸 보면 우산은 그들의 가방 안에 숨어있거나 집안 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아침부터 비가 올 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의 우산도 그랬다. 정확히 말하면 동행인의 우산은 그의 배낭 안에 있었고, 내 것은 한국에 있는 내 방 내 책..
(공장들과 열 지은 소규모 주택들이 들어선 현대의 건축을 이야기 하며 고립된 가정을 돌아본다) 먼저, 단독 주택이든 집단 건물에 세들어 살든 노동 계급 가정의 가사가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제도에서 파생되는 불필요한 손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제일 큰 해악은 아이들에게 미친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린아이들은 햇빛과 공기를 너무 적게 접한다. 아이들이 먹는 음식은 가난하고, 무지하고, 바싸서, 어른과 아이를 구분해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없는 어머니에 의해 제공된다. 아이들이란 어머니가 요리하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방해가 되게 마련이다. 때문에 결국 어머니의 신경을 건드려 가혹한 처벌을 받곤 한다. 물론 이따금 귀여워해 줄 때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이들다운 행동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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