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시간 정도를 달려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뭐, 이제는 너무 익숙한 일이지만, 비엔티안 시내는 전혀 가깝지 않았다. 우리는 또 툭툭이를 타야 할 운명이었다. 도대체 왜 터미널이 시내에서 가깝지 않은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럴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툭툭이나 승합 차량을 위해 일부러 터미널이 멀리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은 공생 관계인 것이다. 방비엥에서 비엔티안까지 오는 VIP 버스가 한 사람에 4만 낍이었는데, 비엔티안 버스 터미널에서 시내로 가는 벽도 없는 승합차량은 한 사람에 2만 낍이었다. 한화로 하면 큰 돈이 아닌 게 분명하지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요금 체계가 아닌가. 툭툭이가 모든 시내 교통 수단의 먹이사슬 최상층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오..
우리가 오전에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았다. 일어나 방갈로에서 제공하는 네스카페 믹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차례대로 샤워를 한 후 차례대로 짐을 꾸렸다. 이제 내 45리터짜리 배낭에 짐을 쑤셔넣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무언갈 버리지도 않았는데 배낭은 점점 홀쭉해지고 있었다. 나중에 가서야 그 무언갈 잃어버렸음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기념적인 날이다. 우리의 여행이 이십 일째를 맞았고, 일주일만에 방비엥을 떠나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으로 향한다. 우린 일부러 버스 시간도 느즈막히 잡았다. 짐을 다 싸고도 시간이 남아 어제 사둔 컵라면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다. 그리고는 커피와 와이파이를 할 수 있는 오두막에 앉아 한 시간을 정오..
모든 것을 종합해 봤을 때, 나는 혼자 여행해야 하는 사람임을 알았다. 나는 속박을 원하고, 또 원한다. 그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았을 때, 나는 진정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최고의 여행 친구와 함께하기 때문에 나는 더 성장할 수가 없다. 그것이 정답이다. 나는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그냥 갈림길에 주저 앉는다. 아마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또 조금은 바뀌어있겠지만, 끝없이 조급해 했던 이유는 그 폭의 미미함 때문이다. 나를 극으로 몰아붙이고, 떠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보며 그리워할 때, 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는 과정은 당신의 예상보다 훨씬 슬펐다. 왜냐하면, 내가 또 이런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시간과 수없이 많은 노력..
방비엥의 마지막 날, 무엇을 했을까. 아침에 옮겨 둔 방갈로에서 샤워를 했다. 해먹에 누워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소떼가 지나가는 걸 보았다. 사람들이 여전히 강변에서 물놀이를 하며 카약킹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을 퍼붓는 걸 보았다. 이곳이 이전에 이 박을 했던 방갈로보다 훨씬 싸고 좋다는 걸 알았다. 방갈로가 둘러싼 정원에 서면 보이는 절벽이 새삼 웅장하다는 것과, 가끔 염소 몇 마리가 이곳으로 와 풀을 뜯고 간다는 걸 알았다. 아고다에서 예약하면 직접 예약하는 것보다 좋은 방을 줄 때가 있다는 걸 알았다. 하늘을 보았다. 열기구를 보았다. 오른쪽 저 멀리에선 여전히 음악 소리가 울리고 누군가 쉬지 않고 마이크로 뭔가를 소리쳤다. 바람이 불었다. 글을 썼다. 방비엥에서의 마지막 날임을 실감했다. 그..
종종 그런 날이 있다. 아침부터 바쁜 그런 날. 방비엥에 하루 더 있기로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묵던 아더 사이드 방갈로를 떠나 바로 옆에 있는 바나나 방갈로로 이동해야 했다. 게다가 열 시엔 약속도 잡혀 있었다. 어제 잠깐 사쿠라 바에 갔을 때 만난 한국분들이 함께 블루라군에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블루라군으로 가는 툭툭이는 보통 15만 낍이 넘는 모양이라 인원을 모아서 함께 가는 게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갈 생각은 못 하고 있던 우리였길래 얼떨결에 승락을 했고, 출발 시간이 열 시가 되었다. 우리를 포함해 모두 아홉 명의 한국인이 모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바쁘지만 뭔가 재빨리 해결하는 데 우린 일가견이 생겼다. 일어나 씻고 짐을 싸고 체크 아웃과 체크 인을 하고, D는 컵라면..
방비엥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매우 다양한 타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 태국, 중국, 한국과 소수의 일본인을 비롯한 아시아계와 남미와 북미, 유럽, 호주에서 온 서양인들을 골고루 본다. 대체로 반쯤은 축제에 미쳐있고, 반쯤은 삼삼오오 얌전하게 돌아다니며 길거리 음식을 사 먹거나 잡화점에서 옷과 모자 따위를 둘러본다. 여행이 반을 훌쩍 넘어 삼분의 이 지점에 다다르자 어떤 부드러운 결핍이 느껴졌는데, D도 정확히 지적했듯이 긴 여정에선 두 사람도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건, 뭐랄까, 활기와 웃음이었다. 오두막이나 펍에 여럿이 둘러 앉아 맥주를 마시며 뭔가를 이야기하는 이들은 때때로 세상이 떠내려 갈 만큼 웃어대기도 했다. 나와 D는 워낙 얌전한(?)이..
오늘부터 라오스의 설날, 삐 마이가 시작된다. 간밤에 딴 것도 아니고 한국의 새우탕면을 먹었다가 새우 알레르기에 시달린 D는 매우 수척해 보였다. 우리는 오후 늦게 일어났다. 방갈로 발코니에 서서 바라보기만 해도 세상의 햇빛이 얼마나 뜨거울지 가늠이 됐다. 그러나 우리의 시야가 닿지 않는 강 건너편에선 분명 물 축제가 한창일 것이다. 둘 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우리는 나가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방비엥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기 때문에 비엔티안으로 가는 버스 시간을 바꿔야 했고, 숙소도 연장을 하든 다른 곳으로 찾든 해야했다. 우리는 두 시가 넘어서야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걸었다. 강변에서 중심지로 올라가는 작은 골목부터 술집에서 양동이에 물을 담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뿌리는 직..
카약킹을 마치고 우리는 방갈로 앞 오두막에 다시 누웠다. 오두막에서 마실 음료나 술을 파는 매점에선 여전히 듣기 좋은, 신나는 팝과 클럽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비엥에서 가장 최고의 장소는 이곳이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강에서 물장구를 치고, 지붕이 있는 오두막에는 햇빛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지붕이 없는 판자 위에서는 선탠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눕는다. 모두 맥주나 과일 쉐이크를 한 잔 씩 들고 있다. 저물녘이라 바람은 시원하다. 강 건너 호텔 뒤에 공사장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하늘 높이 크레인 한 대가 솟아 있었다. 발레를 하듯 거대한 팔이 회전하는 걸 보는 것도 좋았다. 그것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야자수와 오래된 프랑스 식민지 풍의 호텔, 카약을 타고 열심히 노를 젓..
오늘은 방갈로로 숙소를 옮긴다. 늦게 일어나진 않았지만, 숙취가 있다. 머리는 무겁고 속은 더부룩하다. 소주를 마신 것까진 좋았는데 그 이후로 여러 술을 섞어 마시다 보니 이 꼴이 된 모양이다. D의 상태는 더 안 좋아서 그는 방갈로로 옮겨 침대에 눕자마자 오늘 하루 종일 여기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난 몸은 힘들면서도 까닭없이 조급해져 있었다. 그래도 밥은 먹었어야 했으므로 우리는 작열하는 태양을 뚫고 거리로 나왔다. 먼저 여행사에 가서 내일 할 카약킹을 예약하려고 했는데, 그냥 우리는 충동적으로 오늘 하기로 했다. 그것도 바로 한 시간 후에. 오후 세 시 시작이니까 햇살도 좀 덜 할 것 같았고, 이왕 숙취로 몸이 힘든 거 그냥 하루에 몰아서 힘을 쓰고 내일은 쉬자는 취지였다. 한 사람당 무..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바빴다. 씻지도 않고 옷만 걸친 채 강가로 간 우리는 어제 미리 봐둔 방갈로 숙소 리셉션에 방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오늘은 없지만, 내일은 방이 있다고 한다. 방 상태를 확인한 후 이 박을 예약했다. 첫날 삼십 만 낍도 미리 지불했다. (그런데 바우처도, 영수증도 받지 못했고, 심지어 우리 이름을 적지도 않았다. 좋다, 내일 어떻게 나오나 보자.) 그리고 다시 우리 호텔로 돌아와 카드로 일 박 비용을 계산했다. 이렇게 하여 방비엥에서 무려 5박을 하게 됐다. 방콕이나 루앙 프라방보다 긴 일정이지만, 아직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강가 오두막에 늘어지게 누워 푹 쉬는 상상에 잔뜩 가슴이 부풀었다. 루앙 프라방 한인 마트에서 사온 북경 짜장으로 뽀글이를 해서 아침 겸 점심을 떼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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