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각자 침대에 들기 전, D가 한 가지 제안했다.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호텔이 있는 골목길 건너,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오자는 거였다. 대체로 집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여행 중에 하려고 하지만, 나와 D는 평소 하던 일들을 타지에서도 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 봤자 거창한 건 없고, 맥도널드에 간다거나 스타벅스에 간다거나 하는 일들이 - 음주를 포함하여 - 그렇다. 국가별 물가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주는 코카콜라 지수라던가 맥도널드 지수 따위를 실제로 체험해 보려는 것이다. 한국과 몇백 원 단위로 미묘하게 가격이 다른 메뉴판을 올려다 보면 그 반사작용으로 이곳이 고향과는 다른 땅이라는 실감이 나곤 한다. 동시에 맛만은 기가 막힐 정도로 똑같다는 데 놀라면서 말이다. 앞으로 태..
공항에 누가 배웅을 나온 건 처음이었다. 공항철도 개찰구에서 친구 Y가 전날 과음으로 인한 수척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나는 그도 우리와 함께 떠나는 줄로만 알았다. 나와 나의 동행자 D는 친구의 등장에 감격한 나머지 진심으로 같이 떠나자고, 비행기 삯은 우리가 댈 테니까 당장 출국 준비를 하라고 부추겼다. 좀 더 강하고 달콤하게 밀어 붙였다면 거의(?) 설득할 수도 있었겠지만, 신혼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부인의 존재감을 넘어설 순 없었다. (아니, 넘어설 수 있었다고 해도 Y에겐 일단 여권부터 없었다.) 꼭 오지 않아도 될 배웅길을 한 시간 반 씩이나 걸려 와준 그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공항 내 바에서 파는 모히또와 퀘사디아를 대접했다. 남국의 정취가 그대로 담긴 대나뭇살 의자..
서울에 봄이 오고 있다. 강변에 잠들었던 가지에선 아주 천천히 하품을 하는 사람처럼 꽃이 핀다. 이 도시는 이제 한해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시민들을 매혹할 것이다. 사람들은 한결 가벼워진 외투를 입고 사랑하는 누군가와 강으로, 산으로, 공원으로 나아갈 것이다. 기상 캐스터는 스크린에 펼쳐질 봄꽃에 지지 않으려고 밝은 원색의 옷을 입을 것이고, 그 어떤 정치적 쟁점이나 끔찍한 사고 소식보다도 중요하다는 듯 벚꽃의 개화 시기를 점칠 것이다. 이 도시의 봄이 아름답다는 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점점 짧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 봄은 더 강렬하다. 그 봄을 만나지 못하고 나는 이제 우기가 시작되는 도시로 떠난다. 한낮의 기온은 이십 도나 더 높고, 습기에 묶여 열기가 빠지지 않는 도시로 이동한다. 그곳..
그렇다. 여행 카테고리가 또 생겼다. 맺음 하지 못한 이야기가 수두룩한데 또 꾸역꾸역 판을 벌여놓았다. 무책임한 처사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내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도 비슷한 짓을 반복하고 있으니까 사실 개의치도 않을 것이다. 스스로 지적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 목소리를 무시한다. 그게 나의 일이다. 28일간의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그랬다. 거의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세 나라(그마저도 확실하진 않다)를 가는데도 알아본 건 비자 문제뿐이었고, 대충 무비자로 다닐 수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 나서는 나 몰라라 했다. 오히려 가서 읽을 책(M이 사준 책이다), 가서 글을 쓸 노트(이것도 M이 사줬다), 가서 들을 노래를 고르는 게 더 고민스러웠다. 아니,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졌다. 아니면 가기 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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