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는 데 특별한 목적이 있을 필요는 없다. 그냥 걷고 싶은 길을 걷고 싶은 만큼 걸으면 그만이다. 그 와중에 생각을 정리한다거나 추억을 되짚는다거나 풍경을 마음에 기록한다거나 하는 게 가능하다면 덤처럼 누리면 그만이고. 그러니 꼭 가야할 곳도 없었고 꼭 해야할 할 일도 없었던 나는 산책이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주 긴 산책을, 그냥 무작정 걷다 쉬다 하는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어디서 시작할까 하다가 몇년 만에 노틀담 성당에 다시 가볼까 하여 지하철에 올랐다. 출근 시간도 아닌 것 같은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아침 햇살이 임시로 짠 나무벽에 부딪히는 질감이 좋았다. 그러나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그 위에 붙은 픽토그램은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좋아, 산책의..
파리에 갔는데 에펠탑을 못 보고 왔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이 좁은 도시 안에선 어디를 가든 기어코 고개를 내밀어 자신을 드러낸 에펠탑을 볼 수 있으니까.사실 한국에서도 너무 쉽게 에펠탑의 모형이나 사진, 그림을 볼 수 있으니이만큼 친숙한 파리의 상징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파리를 다녀온 여행담에서 에펠탑은 그리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일단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봤을 게 분명한데다가가까이 가면 너무 커서 제대로 보이지 않고,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전경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으며,매 정각 깜빡이는 조명도 몇 번 보다 보면 질리게 마련이니까."에펠탑 진짜 크고 예쁘더라."그 이상의 감상을 우리는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인정해야겠다.사진만큼은 정말 많이 찍게 된다고.굳이 에펠탑이 ..
고흐의 그림을 통해 가보지도 않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가 친숙해졌지만 정작 캔버스에 그려진 인상적인 외관 때문에 교회 내부는 어떤 곳일까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불안한 길을 따라 걷고 있는 한 여인에 대해 더 궁금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곳은 아직도 마을의 종교적인 성소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고,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며 익숙한 방식으로 인식되던 어떤 대상에게서 전혀 다른 면을 발견한 듯한 신선함을 느꼈다. 강압적이고 깐깐한 상사가 가정에서 다정한 태도로 아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나 매일 지나치던 골목길 안쪽에 관리가 잘 된 작은 공원이 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의 느낌처럼 말이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며 작은 소리 하나 내지 않으..
아침 햇살이 비껴 반짝이는 우아즈 강변엔 어떤 특별한 장면이 있는 게 아니었다. 조깅을 하는 마을 사람들을 한둘 지나쳐 보내고 나면 다시 찬 바람과 정적이 그 자리를 채웠다. 너무나 한가해서 이대로 마을 어딘가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 늦잠을 청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천박한 간판도 없고 지나친 도태도 없이 오랜 세월 이대로 쭉 이어져 왔을 모습은 우리네 시외 작은 고장이 배웠음직한 미덕이었다. 만약 이곳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마지막 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공동묘지에 동생과 함께 눕지 않았다면, 이 작은 마을은 이토록 널리 알려지지 못했으리라. 고흐의 엄청난 팬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의 수많은 그림과 그 만큼 수많은 편지를 보고 읽은 사람으로서 그가 걸었던 길 중 하나를 걷기로 했다. 작은..
그림은 실제로 눈앞에서 볼 때가 제일 좋지만 사진에 담아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 가지 각도로 고정되고 색온도에 따라 색감이 틀어져 원본과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림을 잘 못 그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그림을 찍음으로써 위안을 삼자는 심산이기도 하지만. 피그말리온 효과까진 아니어도 가까이에서 찍은 그림은 그 자체로 한 장의 사진을 그림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액자 주변의 실사조차도 누군가 붓으로 그려낸 듯한 결과물로 바뀐다. 그 비현실적인 느낌이 좋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노력에 비하면 셔터를 누르는 건 턱없이 쉬운 일이라 무임승차를 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몽마르트 언덕에선 건물의 벽이 유화 물감을 바른듯 진득한 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거리 전체가 거대한 회화로 보이기도 했다. 그림 ..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제외하고 파리에서 그림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몽마르트 언덕의 테르트르 광장일 것이다. 마침 늦겨울의 햇살이 광장 안으로 곧장 떨어지는 시간이었다. 자연광과 어우러진 화폭의 색채에 눈이 부셨다. 만물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주광의 영역에 있었음에도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 있는 느낌이었다. 하긴 이렇게 많은 화가들이 이렇게 좁은 공간에 모여있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긴 하다. 화가들의 실력이 어떻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뭐라 대답할 말이 없다. 테르트르 광장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념품 매장이니까. 그림의 주제는 대체로 관광객인 당신이거나 사진으로 미처 담지 못한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 그 두 가지로 한정돼 있다. 여기에선 뛰어난 예술 작품보단 파리를 기념할 수 있는 뭔가를 얻어가기..
혼자서 뭘 하는 걸 좋아한다. 엄밀히 말하면 혼자 하는 게 더 잘 어울리는 일을 좋아한다. 글쓰기가 그렇고, 사진 찍기가 그렇다. 여행은 아직 잘 모르겠다. 여행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제일 중요한 만큼 죽이 잘 맞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 편이 낫겠지. 하지만 난 나를 꽤 좋아하니까 혼자, 나와 함께 여행하는 것도 좋다. 그러면 글과 사진은 절로 따라오니까. 예전엔 그러지 못했는데 언젠가부터 식당에서 혼자 밥먹는 게 어색하지 않다. 죽이 잘 맞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가 아니라면 식사도 여행만큼이나 고역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회성이 아주 좋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마저도 다 깎여나간 모양이다. 툭하면 몸도 마음도 체한 것처럼 무거워지기에 십상이니까. 어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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