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비엥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매우 다양한 타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 태국, 중국, 한국과 소수의 일본인을 비롯한 아시아계와 남미와 북미, 유럽, 호주에서 온 서양인들을 골고루 본다. 대체로 반쯤은 축제에 미쳐있고, 반쯤은 삼삼오오 얌전하게 돌아다니며 길거리 음식을 사 먹거나 잡화점에서 옷과 모자 따위를 둘러본다. 여행이 반을 훌쩍 넘어 삼분의 이 지점에 다다르자 어떤 부드러운 결핍이 느껴졌는데, D도 정확히 지적했듯이 긴 여정에선 두 사람도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건, 뭐랄까, 활기와 웃음이었다. 오두막이나 펍에 여럿이 둘러 앉아 맥주를 마시며 뭔가를 이야기하는 이들은 때때로 세상이 떠내려 갈 만큼 웃어대기도 했다. 나와 D는 워낙 얌전한(?)이..
오늘부터 라오스의 설날, 삐 마이가 시작된다. 간밤에 딴 것도 아니고 한국의 새우탕면을 먹었다가 새우 알레르기에 시달린 D는 매우 수척해 보였다. 우리는 오후 늦게 일어났다. 방갈로 발코니에 서서 바라보기만 해도 세상의 햇빛이 얼마나 뜨거울지 가늠이 됐다. 그러나 우리의 시야가 닿지 않는 강 건너편에선 분명 물 축제가 한창일 것이다. 둘 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우리는 나가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방비엥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기 때문에 비엔티안으로 가는 버스 시간을 바꿔야 했고, 숙소도 연장을 하든 다른 곳으로 찾든 해야했다. 우리는 두 시가 넘어서야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걸었다. 강변에서 중심지로 올라가는 작은 골목부터 술집에서 양동이에 물을 담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뿌리는 직..
카약킹을 마치고 우리는 방갈로 앞 오두막에 다시 누웠다. 오두막에서 마실 음료나 술을 파는 매점에선 여전히 듣기 좋은, 신나는 팝과 클럽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비엥에서 가장 최고의 장소는 이곳이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강에서 물장구를 치고, 지붕이 있는 오두막에는 햇빛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지붕이 없는 판자 위에서는 선탠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눕는다. 모두 맥주나 과일 쉐이크를 한 잔 씩 들고 있다. 저물녘이라 바람은 시원하다. 강 건너 호텔 뒤에 공사장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하늘 높이 크레인 한 대가 솟아 있었다. 발레를 하듯 거대한 팔이 회전하는 걸 보는 것도 좋았다. 그것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야자수와 오래된 프랑스 식민지 풍의 호텔, 카약을 타고 열심히 노를 젓..
오늘은 방갈로로 숙소를 옮긴다. 늦게 일어나진 않았지만, 숙취가 있다. 머리는 무겁고 속은 더부룩하다. 소주를 마신 것까진 좋았는데 그 이후로 여러 술을 섞어 마시다 보니 이 꼴이 된 모양이다. D의 상태는 더 안 좋아서 그는 방갈로로 옮겨 침대에 눕자마자 오늘 하루 종일 여기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난 몸은 힘들면서도 까닭없이 조급해져 있었다. 그래도 밥은 먹었어야 했으므로 우리는 작열하는 태양을 뚫고 거리로 나왔다. 먼저 여행사에 가서 내일 할 카약킹을 예약하려고 했는데, 그냥 우리는 충동적으로 오늘 하기로 했다. 그것도 바로 한 시간 후에. 오후 세 시 시작이니까 햇살도 좀 덜 할 것 같았고, 이왕 숙취로 몸이 힘든 거 그냥 하루에 몰아서 힘을 쓰고 내일은 쉬자는 취지였다. 한 사람당 무..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바빴다. 씻지도 않고 옷만 걸친 채 강가로 간 우리는 어제 미리 봐둔 방갈로 숙소 리셉션에 방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오늘은 없지만, 내일은 방이 있다고 한다. 방 상태를 확인한 후 이 박을 예약했다. 첫날 삼십 만 낍도 미리 지불했다. (그런데 바우처도, 영수증도 받지 못했고, 심지어 우리 이름을 적지도 않았다. 좋다, 내일 어떻게 나오나 보자.) 그리고 다시 우리 호텔로 돌아와 카드로 일 박 비용을 계산했다. 이렇게 하여 방비엥에서 무려 5박을 하게 됐다. 방콕이나 루앙 프라방보다 긴 일정이지만, 아직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강가 오두막에 늘어지게 누워 푹 쉬는 상상에 잔뜩 가슴이 부풀었다. 루앙 프라방 한인 마트에서 사온 북경 짜장으로 뽀글이를 해서 아침 겸 점심을 떼운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늘어지게 낮잠을 잔 후, 오랜만에 저녁 산책을 나섰다. 손님이 아주 많은 식당에서 그저 그런 식사를 비싼 값에 먹고 나오는데, 꽝시 폭포에서 만났던 홍콩 친구 데이지가 팬 케이크를 먹으며 걸어오는 걸 보았다. 우린 즉시 서로를 알아보았고, 반갑게 인사했다. 오늘 루앙 프라방을 떠나 방비엥에 도착한 그녀는 스위스 친구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고 한다. 그녀가 자는 숙소보다 훨씬 비싼 우리의 숙소 때문에 그녀는 항상 우리를 '리치 가이'라 부른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고,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이다. 그녀는 아베크롬비 앤드 피치 매장에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벌었고, 우리 역시 각자의 직장에서 경비를 마련했다. 하지만 학생인 그녀와 직장인인 우리 사이엔 차이가 있을 ..
일어나도 가라앉지 않은 알레르기 때문에 속이 상했다. 오늘도 일찍 일어났지만, 꾸물거리고 미적거렸다. 드럽게 느린 와이파이로 여행기를 올린 후, 몇 번이나 팔의 상태를 확인했다. 본다고 나아지진 않는다.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한 다음 정오를 조금 넘겨 강가로 향했다. 강가에는 우리가 그토록 그리던 방갈로가 여러군데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강변에 작은 오두막이 지어져 있어서 거기 드러누워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있었다. 방갈로가 어떤 상태인지 둘러보고 맥주 한 병을 겨드랑이에 낀 채 오두막에 앉자, 아, 드디어 평화가 나에게 찾아왔다. 강에는 백인 아이와 라오인 아이가 나란히 발가벗고 수영을 하고 있다. 국적, 아니 인종조차 알 수 없는 한 부부는 수영복을 입은 채 태양 아래 늘어져 책을 읽고..
방비엥에 도착하자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총 8시간 30분의 곡예비행을 마치고 땅에 착륙한 비행사가 된 기분이었다. 방비엥의 첫인상 역시 루앙 프라방의 그것과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구역이 그리 넓지 않다는 게 좋았다. 우리는 흥정할 것도 없이 (아저씨에게도 흥정할 마음이 전혀 없기도 했지만) 툭툭이를 타고 미리 예약한 숙소 옆에 내렸다. 구활주로에서 들려오는 현지인들의 축제 소리에 시끄럽긴 했지만, 숙소 상태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찬물로 샤워하자 기분도 풀렸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음악도 우리를 힘 나게 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듣던 대로 방비엥엔 한국인이 정말 많았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젊은 친구들과 대여섯 명은 되는 것 같은 중년 남녀의 무리를 지나쳤다. 강가 주변에는 K..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 무지막지하게 기니까 여행의 절반에 다다른 이 시점에서 뭔가를 돌아봐야 할 것 같다.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은 아무리 신비 절정의 외국에 있다고 하더라도 자주 찾아오는 건 아니니까. 내가 굳이 일주일을 넘는, 그러니까 최소 한 달 이상의 여행을 떠나려 했던 건 그 긴 시간 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내가 어떻게 그 환경을 받아들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꽁한 마음이 풀릴까? 자연스럽게 아무하고나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향수라는 걸 느낄까? 글은 잘 써질까? 동행자와 싸우진 않을까? 뭔가 더 배우는 게 있을까? 꽤 무난하다고 생각했던 성격이 드디어 무너지고 본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 마지막 질문에서 멈춰 보자. 평소 난 정말 무난한 성격이다. 사회생활을 예로 들자면, 위로는 그럭저럭..
여행의 딱 반이 되는 오늘, 루앙 프라방을 떠나 방비벵으로 향한다. 이젠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이곳에서의 생활은 한국에서의 그것보다 규칙적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몸은 제일 안 좋았다. 한 차례 감기가 몰려들고 체기도 스쳐 지나가더니 이제는 햇빛 알레르기가 남았다. 오히려 밤늦게까지 놀고 오후 늦게 일어나는 패턴이 더 잘 맞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밤부터 새벽까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렸다. 배를 타는 것보단 낫겠지만, 하필 버스를 타는 날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린다니. 그러고 보면 이번 여행에선 타볼 수 있는 교통수단은 다 타보는 것 같다. 비행기, 열차, 배에다가 버스까지. 처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씻고 짐을 정리하고 앉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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