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여행의 기쁨은 누군가 공항에 마중 나온 이가 있어 그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줄 때에 있지 않을까? 이 문장이 의문형인 이유는 단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기술적으로 보면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일이나 의무에 의한 마중이었기 때문에 기쁨을 느낄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나를 반가워하지도 않았다. 물론 나와 D가 홍콩에 가던 세 번의 여행 첫머리에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나는 까닭 없이 서운해지고는 했다. 어쩌면 일부러 서운해져 우리끼리 더 잘 놀아보자고 다짐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슬픈 처지가 아니다. 마닐라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줄 친구, B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착하면 자정이 넘는 시각이었던 탓에 혹시나 그가 곯아떨어져 나오지 못할까..
공항 사진을 올리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항 사진만 올리고 싶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이렇게 사진 정리하기 귀찮았던 적이 또 있나 싶다. 어느 정도 보정을 해줘야 조금이라도 성에 찬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점에서 필름 카메라는 참 편했다. 스캔 받은 파일을 크기만 줄여서 올리면 됐으니까. 올릴 사진을 고르는 데 애를 좀 먹긴 했지만, 대부분 어떤 글을 써야 하나 그 고민만 했으면 됐으니까. 마지막 홍콩 여행기의 첫 편에 유난히 공항 사진이 많았는데, 그걸 올리며 매우 신이 났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이유 없이 공항 사진을 만지는 기분이 좋아서 그랬다. 한없이 창백한 구조물에 불과한데 어떤 장면이든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공항 사진엔 있다.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
벌써 꽤 오래 전 일이 되어버린 2013년 7월의 홍콩 여행. 한창 두 번째 홍콩 여행기를 쓸 때였기도 했고, 파리에 북규슈까지 겹쳐서 이건 포스팅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도 올해 건 올해 다 정리해 버리는 게 깔끔한 법. 길고 긴 여행기로 쓸 게 아니니까 사진이라도 들추어 보자. 비가 오는 7월이었다. 9월에 갔을 때도 아주 더웠던 기억 때문에 사실 날짜를 정하고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서도 많이 망설였었다. 도대체 7월엔 홍콩이 얼마나 더울까? 한국엔 비가 왔었다. 그리고 지독한 더위가 아직 마수를 뻗치기 전이었다고 기억한다. 결국 제대로 각오하고 더위를 즐기자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숙취 때문에 엄청 고생했던 두 번째 홍콩 여행의 아픈 추억을 되새김질 하며 전날에 술 한 모금..
:: 네 시간도 채 자질 못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남부터미널에서 6시 30분경에 출발하는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달렸다. 버스를 타러 가며 전날 홍콩행을 기념한답시고 들이부은 술의 양을 가늠해 보았다. 다행히 두통이 아니라 속 쓰림의 형태로 찾아온 숙취는 기념주로 테킬라를 마셨던 선택이 탁월했음을 증명했다. 부족한 잠은 공항으로 가면서 보충하면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버스에 올라도 잠이 오지 않았다. 텅 빈 새벽 도시는 잠들기보단 저를 봐주길 원했다. 푸른색 필터를 끼운 것처럼 선명한 날 빛을 등진 건물들이 감은 눈 저편에서 끝없이 아른거렸다. 그나마 풍경이 단조로워지는 올림픽대로에 진입하고 나서야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D는 이번 여행의 동반자다. 누군가와 둘이 여행을 하는 게 참 오랜만인데, 그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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