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이 난 게 분명했다. 오늘은 방콕을 떠나는 날이니까, 이 마시고 또 마시고 싶은 도시를 벗어나 치앙마이에 도착하면 술을 좀 줄이자고 다짐했다. 몸에 힘이 없으니 글도 잘 써지지 않는다. 비단 여행에서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뭐라도 계속 쓰려면 몸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평소에도 되도록 술을 안 마시려 하는 거고, 담배도 피우지 않으려고 (헛된) 노력을 하는 것이다. - 신기하게도 담배를 피우면 글이 잘 써지긴 하는데 노후에 있을 병이 걱정된다. - 맑은 정신과 건강한 몸은 책상 앞에 앉아있는 데 꼭 필요한 특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그렇게 열심히 뛰는지 알 것 같고, 그 점을 굉장히 존경스럽게 생각한다. 아마 앞으로 이 이야기를 다양한 버전으로 계속할 것도 같지만, 여행..
얼마 전 나는 택시를 타고 파리 시내를 가로질렀는데 운전사가 무척이나 말이 많았다. 그는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만성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중략) "제 뒤에는 당신보다 삼 분의 일은 더 긴 인생이 있습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더 가진 그 삼 분의 일로 뭘 할 겁니까?" "글을 쓰지요." 나는 그가 쓰는 게 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자기 인생에 대해 쓰고 있었다. 바다에서 사흘 동안 헤엄을 치며 죽음에 맞서 싸웠고, 잠은 잃어버렸으나 여전히 살고자 하는 힘은 간직한 남자의 이야기. "자식들을 위해 쓰는 겁니까? 가족 연대기처럼?"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제 자식들이오? 그런 데 관심 없을 겁니다. 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택시 운전사와 나눈 이 대화는 내게 불현..
처음으로 유럽을 다녀왔을 때 왜 여행기를 쓰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대답했을 거야. 그때의 기억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려는 마음도 있다고 덧붙였을 테고. 아마추어 사진가는 자기 작품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하는 법이거든. 다른 사람도 나의 시선에 동감을 해 줄까? 사진이 그들에게 아주 미세한 변화라도 일으킬 수 있을까? 가끔이라도 오, 하는 감탄사를 끄집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복권 번호를 맞추는 것처럼 주체할 수 없는 기대 때문에 몇 번씩 사진첩을 들추며 괜찮은 놈들을 추렸어. 그리고 세세한 부분까지 쓸어담은 글에다가 붙여 넣은 거지.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여행기. 팔라우와 두 번째 유럽 여행 - 출장 - 을 다녀오자 여행만큼 글로 쓰기 좋은 소재가 없다고 대답이 달..
핑계 사람들은 떠나고 싶어 한다. 떠난 후 잃을 것들을 걱정하느라 주저하면서. 일단 여기를 벗어나기만 하면 모든 희망과 열정의 조각이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질 거라 기대한다. 사회적 지위와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의 십 순위 후보에도 올려놓지 않을 거면서. 멀리, 오래 떠나면 충분히 책 한 권은 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결국 문제는 돈, 사람, 시간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완벽한 나의 핑계. 그리고 착각. 두려움 길 위에서 산다고 가정했을 때, 세월의 일부를 뭉텅이로 잘라 쓸 만큼 먼 길을 떠난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두 가지가 두렵다. 나에겐 길 위에서 주워담은 생각, 감정, 경험을 제대로 표현할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운이 좋게 그런 재주를 발휘한다 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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