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놀랍던 시절이 있었다. 또한, 그건 두려움이기도 했다. 의지해야만 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그것들을 헤쳐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호기심은 망망대해처럼 고갈되지 않는 무엇은 아니었다. 고백하건대 터를 잡고 메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채워지고 줄어드는 희소 자원에 가까웠다. 아니, 차라리 호기심을 느끼는 대상이 몇 가지로 집중되었다 말하고 싶다. 나는 수원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 우물 몇 개를 파는 일로 세월을 보냈다. 그마저도 서툰 솜씨였지만, 지층이 바뀔 때마다 놀랍고 두려운 순간이 있었기에 견딜 만은 했다. 다만 의지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맞잡은 손은 그때만큼 어지럽게 얽혀있지 않다. 샘 솟을 기약 없는 구덩이 안을 들여볼 때마다 이 속으로는 혼자서 들어갈 도리 외엔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내가 묵은 호텔은 다누키코지 6쵸메에 위치한 도미 인 삿포로 아넥스(Dormy Inn Sapporo Annex)였다. 해산물이 포함된 뷔페식 아침 식사에 대중탕까지 딸려있는 곳인데 가격은 부담 없이 저렴했다. 십 층에 있는 싱글룸은 예상했던 대로 작았지만, 냉난방 시설도 완벽했고 공기 청정기 또한 갖춰져 있었다. 게다가 건물 안에서 입기 좋은 실내복을 제공하고 로비엔 공용 제빙기까지 있으니 숙박비를 낸 건 내 쪽인데 오히려 내가 고마워지는 역설이 일어났다. 이런 곳에서 한 달만 딱 살아보는 건 어떨까. 평소 욕탕이나 사우나를 좋아하진 않지만, 매일 들어가 줄 수도 있는데. 책상에 만년필과 공책을 배치하고 그 공백을 매일 같이 채워나갈 수 있을 텐데. 마침 장기 투숙자를 위한 가격 안내표가 붙어 있었다. ..
삿포로 역부터 내가 묵을 호텔에서 가까운 스스키노 역까지는 지하철 난보쿠선(南北線)으로 두 정거장이다. 무거운 가방을 끌고 이제 막 낯선 도시에 도착했다면 택시나 지하철로 숙소까지 이동하는 게 상식이겠다. 나 역시 비행기를 탈 때까지만 해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러나 혼잡한 대기실로 내려와 출구를 찾아 헤매다 북쪽 입구 앞에 섰을 때, 유리문 밖으로 새카만 하늘과 어둑어둑하게 꺼져가는 빌딩의 불빛을 보았을 때, 생각이 달라졌다. 저 어둠 속으로 당장 사라지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걸어서 이 도시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지하철 두 정거장 정도는 걸어가도 된다는 것 역시 여행자의 상식 중 하나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막상 밖으로 나가려니까 너무 추운 것이다. 그래서 삿포로 역부터 스스키노 역을 잇..
어쩌면 이번 우리 일정 중 가장 글로 옮기기 힘든 시간이 아닐까 한다. 토요일 밤, 란콰이퐁에서의 축제. 그저 맥주와 칵테일에 취해 춤추고 놀았을 따름인데 거기에 코멘트 붙일 게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자세를 고쳐잡는다. 사라진 징검다리처럼 밤 시간을 뛰어넘을 순 없지 않겠느냐고. 여행 둘째 날 밤의 우리 일정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 완차이 어느 골목길에서 아주 싸고 맛있는 초밥집을 발견한 우리는 저녁으로 초밥을 먹었다. 그리고 진 토닉을 한 잔 만들어 마신 후, 곧바로 침사추이의 너츠포드 테라스로 향했다. 저번 여행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올 나잇 롱'이란 바에 가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영 흥이 나지 않았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스테이지에서 볼룸댄스를 추고 계셨는데 처음 한 시간 정도는 즐거웠지만..
파리에 있는 미술관 중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할 곳을 꼽으라면 역시 오르세 미술관일 것이다.인상파 화가를 향한 근원 모를 선호는 오르세를 기차역을 개조한 미술관 그 이상으로 만들었다.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내린다. 2월의 눈이다.파리에 있었던 육 일 중 유일하게 흐렸던 날이었으며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날이기도 했다."파리는 흐려야 제맛이죠." 건너편으로 루브르 궁전이 보인다.잔뜩 낀 눈구름이 풍경을 몇 십 년 정도 뒤로 돌려놓았다.평일이라 거리엔 사람도 별로 없었다.사람 없는 풍경을 사진 찍기가 퍽 힘들지만,마음 속에 남기기엔 텅 빈 화면이 더 낫다. A는 개인 관람객을 위한 줄.B는 단체 관람객을 위한 줄. C가 있었던가? 예약자를 위한 줄이었을까? 아주 발랄한 소녀가 거의 텅 비다시피한 대기열을 걸어왔다..
[지난글] :: 파리 여행 노트 - 루아르 고성 #1 쉬농소 성 가는 길 [지난글] :: 파리 여행 노트 - 루아르 고성 #2 쉬농소 성 아주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듯한 슈농소 성의 분위기와는 달리주차장을 가로질러 철로만 건너면 작은 프랑스 마을이 나타난다. 앙부아즈 숲을 등지고 있는 마을은 아주 조용한, 마치 숲처럼 고요한 오후를 보내는 중이었다.이곳엔 높은 건물 하나 없었다.학창 시절 공책 앞 표지를 장식하던 어딘지 모를 유럽의 전원 풍경과 닮아 보였다.그런 류의 공책들은 대한민국의 답답한 교실 안에 있던 수많은 학생들을바다 건너 미지의 땅, 낭만과 사랑이 흐르는 코 높은 사람들의 땅으로 퍼나르곤 했다. 그리고 난 그 공책이 인도하던 곳,그 공책이 상징하던 곳에 와 있다. 이 부근에도 열차가 멈춘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외국에서 생일을 맞이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파리에서라니. 반은 그것 참 느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나머지 반은 혼자 생일을 보내야 한다니 쓸쓸하겠다고 했다. 막상 내게 어느 쪽이었느냐고 묻는다면 고민이 되긴 하지만 나 역시 반반이었다고 답하고 싶다. 너무 정신 없던 하루라 그 어느 쪽도 온전히 느끼질 못했으니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에선 어디에 있든 온전히 혼자로 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침에 날아오던 페이스북과 메신저의 메시지로 생일 축하는 충분히 받았으니 새삼 놀랍고도 감사한 일이었다. 물론 메시지는 메시지일 뿐,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직접 축하 인사를 받아보진 못했다. 그래서 하루가 다 가기 전에 내가 대신 축하해 주기로 했다. 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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